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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일터. 기획 기사 추천. 한겨레. 사람과 재산을 구하다 부상과 질병에 고통받는 소방관들. 누가 소방관들을 치유해야 하는가?

by 원시 2024. 2. 5.

일터 공간에 대한 취재 기사 추천함. 화인. -몸에 새겨진 재난

일터에서 노동과정과 노동소외,아픔, 희로애락을 취재하다.

그리고 대책을 제출해야 한다. 소방관들의 '영웅적 직업 정신'만 강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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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몸에 새겨진 재난- 

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산다.

한겨레는 평생 재난이 남긴 부상과 질병을 안고 늙어간 소방관 15명과 이들의 가족 및 동료 12명을 전국을 오가며 만나 2달 동안 심층 인터뷰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늙은 소방관들의 평균 나이는 58살, 평균 근무 경력은 29.1년이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국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봤다.

 

 

 

사회사회일반
잔해 더미서 “너무너무 힘들어요” 말했던 그 목소리 [인터랙티브]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②
기자김지은
수정 2023-09-20 14:00등록 2023-09-20 14:00


경광숙 소방관의 삼풍백화점 구조현장 이야기가 담긴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2회 ‘늙은 소방관의 질병과 트라우마’의 한 장면


66살인 퇴직 소방관 경광숙은 그 목소리를 28년째 잊지 못한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지 이레째 되던 날, 잔해 더미 아래에서 “아저씨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제가 묻는 말 빼고는 말하는 거랑 숨쉬는 거 최소화하고 견디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너무너무 힘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결국, 그 여성은 숨진 채 발견됐다. 경광숙은 죄책감에 시신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고, 여성의 목소리는 환청으로 남았다.

한겨레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세 명의 퇴직 소방관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의 2회차인 ‘늙은 소방관의 질병과 트라우마’로 재구성했다. 세 명의 퇴직 소방관은 삼풍 이후에도 현장을 누비며 질병과 트라우마를 안게 됐다. 또한 반복된 사이렌 소리로 인해 난청 장애도 가지게 됐다. 한겨레는 경기 가평소방서에서 직접 소방차에 달린 사이렌 소리의 소음 수준도 측정해봤다.

경광숙 소방관의 삼풍백화점 구조현장 이야기가 담긴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2회 ‘늙은 소방관의 질병과 트라우마’의 한 장면

 


경광숙 소방관의 삼풍백화점 구조현장 이야기가 담긴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2회 ‘늙은 소방관의 질병과 트라우마’의 한 장면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312.html

 

잔해 더미서 “너무너무 힘들어요” 말했던 그 목소리 [인터랙티브]

66살인 퇴직 소방관 경광숙은 그 목소리를 28년째 잊지 못한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지 이레째 되던 날, 잔해 더미 아래에서 “아저씨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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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28년째 환청…트라우마 안고 사는 영웅들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②참사가 남긴 질병과 트라우마


1995년 ‘삼풍’ 현장에 갔던 
경광숙·박태선·장남일씨
여전히 참사에 짓눌려 살아
기자김지은,박준용
수정 2023-09-20 06:00등록 2023-09-20 06:00

 


경광숙 전 서울 도봉소방서 검사지도팀장이 지난 7월26일 오후 도봉소방서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목소리를 듣고도 구조하지 못한 시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95년 7월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85-3번지. 이곳에서 백화점이 붕괴한 지 이레째가 됐다. 소방본부 인명구조반은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내려앉은 철근 콘크리트 더미를 수십톤씩 걷어내며 생존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붕괴 이후 닷새째까지는 생존 신호가 종종 포착돼 구조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엿새째부터 그런 신호가 뚝 끊겼다. 구조반원들이 잔해 더미 속에서 작은 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전등을 비추며 “사람이 있으면 대답하세요”라고 외쳤지만, 응답이 없었다. 현장은 화재로 인한 열기와 유독가스가 가득했다. 분진과 석면가루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날렸다. 압사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주검들이 부패하면서 나오는 악취도 숨을 틀어막았다. 구조반원들은 악취를 이기기 위해 독한 냄새가 나는 소독약을 코밑에 발랐다. 소독약은 악취를 이기지 못했다.


몇시쯤 되었을까. 잔해 더미 아래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아저씨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7년차 소방관인 도봉소방서 구조대장 경광숙 소방위의 귀가 쫑긋 섰다. “어디세요?”라고 물으니 “여기 아래에서 연기가 계속 올라와요”라고 했다.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 화재로 인해 불타오른 연기가 올라와 생존자가 버티고 있는 잔해 더미 틈새를 거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경광숙이 “저녁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제가 묻는 말 빼고는 말하는 거랑 숨쉬는 거 최소화하고 견디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너무너무 힘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광숙은 생존자가 묻혀 있는 방향 확인을 위해 “제가 제자리에서 돌면서 시계 방향으로 12시, 3시, 6시를 부를 테니 제일 가까이 들리는 숫자가 몇시인지 확인해주세요”라고 요청했고, 잠시 뒤 “3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3시 방향에 있는 잔해 더미를, 70~80명의 구조반원들이 파고 들어갔다. 한참을 파다가 경광숙은 한번 더 생존 확인을 했다. 그런데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 곳은 3시 방향이 아니었다. 붕괴된 구조물과 공간들 사이에서 소리가 굴절된 것이었다. 구조반원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옮겨 건물 잔해를 치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경광숙이 다시 한번 “괜찮으신가요?”라고 물었는데,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그 자리에서 세 구의 여성 주검이 발견됐다. 한 구는 이미 부패가 시작됐고, 다른 한 구는 사망한 지 한참이 지나 보였지만,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마지막 한 구는 막 숨진 것으로 보였다. 백화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을 정도였는데, 조금 더 빨리 구조했더라면….” 경광숙은 죄책감에 시신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5년차 소방관인 경기도소방본부 항공대 소속 소방교 장남일은 붕괴 1시간쯤 뒤인 6월29일 저녁 7시께 소방헬기에서 현장을 처음 목격했다. 삼풍백화점 에이(A)동은 한쪽 벽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지상의 상황을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정말 처참했습니다.”

현장은 통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체계적으로 수색하지 못하는 정부에 반발한 유가족들은 직접 증거를 남기겠다며 구조 과정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자원봉사를 핑계로 백화점 물건을 절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남일은 그런 와중에 부상자 4명을 헬기로 병원에 이송했다. 2명은 치명상이었다.


4년차 소방관인 인천소방서 구조대원 박태선 소방교도 현장에 투입됐다. 붕괴 현장은 지옥이었다. 콘크리트 철근들이 언제 머리 위를 덮칠지 모르는 현장을 헤집고 다니는데, 살과 근육이 썩어 뭉개졌거나 퉁퉁 부어 있는 주검들이 발견됐다. 포클레인이 현장을 파내다가 형체 없는 시신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속옷만 입은 시신이었는데, 결국 일부는 찾지 못했지요.”

구조대원들은 잠원소방파출소 마당에 합판을 깔고 70명씩 모여서 잤다. 대원들의 옷과 몸에 묻은 썩은내가 진동했다. 무엇보다 계속 죽어가는 사람들을 봐야 했던 압도적 재난의 규모에 짓눌렸다. “부패된 시신들을 만지다가 왔으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현장에 특전사 선후배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함께 근처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라도 한잔 마셔야 잠시라도 눈

을 붙일 수 없다.


29일 구조 기간 현장에 투입된 구조 인력은 연인원 6만8천여명이었다. 소방관들 다수는 피부염을 앓았다.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용수를 계속 뿌려야 했는데, 이 물이 주검에서 나온 진물, 붕괴 현장의 오염물과 섞여서 고인 채 오염됐다. 소방관들이 주검을 수습하려면 이 물에 들어가야 했다. 며칠 동안 철근 콘크리트에 긁힌 상처가 오염된 물과 접촉하니 감염이 잦았다. 처음에는 가려움증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상태가 심각해진 대원들은 이후 한동안 현장 활동을 하지 못했다. 소방관의 사명감에 모든 걸 맡긴 국가가 정작 이들의 보호는 외면하던 시절이었다.

셋의 기억이 교차하는 그날 이후, 경광숙(66)은 19년, 박태선(60)은 28년, 장남일(61)은 26년 동안 소방관 생활을 더 했다. 경광숙은 2014년 소방령으로, 박태선은 지난 6월 소방정으로, 장남일은 2021년 소방경으로 은퇴했다. 이들은 삼풍백화점 이후에도 수많은 화재와 재난 현장을 오가며 몸에는 각종 부상과 질병을, 마음에는 트라우마를 쌓아갔다.

왼쪽부터 퇴직 소방관 경광숙, 박태선, 장남일씨. 김정효 김혜윤 기자 hyopd@hani.co.kr
경광숙과 박태선에게 끈질기게 고통을 안긴 질환은 소음성 난청이다. 소방관들은 소방차와 구급차에 달린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를 일상처럼 듣고 산다. 전국 소방공무원 특수건강검진 자료를 보면, 난청을 겪는 소방관은 2020년 7608명, 2021년 7702명, 지난해 8931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소방관들의 공상 신청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감천도 올해 초부터 소방공무원들로부터 들어온 공무상 재해 신청 관련 상담 건수 가운데 40%가 소음성 난청 질환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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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7월21일 한겨레가 경기도 가평소방서에서 소방차 사이렌의 소음 수준을 측정해보니 사이렌의 최대 음량은 115.7데시벨(㏈)에 달했다. 소방펌프차와 사다리차의 전자 사이렌을 울린 상태에서 차량 바로 앞 범퍼에 소음측정기를 두고 측정한 결과다. 보호장치 없이 100데시벨에서 15분 이상, 110데시벨 이상에서 1분 이상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청력 손실 위험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10데시벨 이상의 소음 노출은 주당 2분30초 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출동이 잦은 소방관들이 따르기 어려운 권고다. 소방관들에게 귀마개 등 청력보호장비를 지급하고, 소방차 내에 방음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인 소방 전문가 이건씨는 “각 소방서가 보건안전담당관을 중심으로 귀마개 지급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가평소방서에서 지난 7월21일 펌프차와 물탱크차, 고가사다리차 등 3대가 출동하는 상황을 가정해 소음 측정을 해보니 사이렌의 최대 음량은 115.7데시벨(㏈)을 기록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기도 가평소방서에서 지난 7월21일 펌프차와 물탱크차, 고가사다리차 등 3대가 출동하는 상황을 가정해 소음 측정을 해보니 사이렌의 최대 음량은 115.7데시벨(㏈)을 기록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제는 대부분의 소방관들이 난청 질환을 그냥 삭이고 만다는 점이다. “사이렌 소리를 늘 듣다 보니 주위에도 난청을 겪는 동료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으레 익숙한 상황이고 안 해줄 것 같기도 해서 굳이 공상 신청을 하지 않았지요.” 경광숙의 말이다.

경광숙과 달리 박태선은 최근 난청 공상 승인을 받았다. 구조대에서 오래 근무한 박태선은 사이렌 소리에 더해 다른 소음에도 자주 노출된 특이한 경우다. 소방항공대에서 경비행기 조종 업무를 하고 헬기를 탔다. 수난구조훈련에서 깊은 물에 온종일 잠수하는 업무도 더해지면서 고막이 혹사당했다. “구조용 헬기는 기체 진동과 소음이 굉장히 심하지만 방음이 안 되죠. 옛날 구조대 차량도 귀가 아플 정도로 따가운 사이렌 소리가 났어요. 이명이 생긴 건 15년 가까이 됐죠. 이제 보청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박태선도 끝내 공상 신청을 하지 못한 질병이 있다. 구조대원이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근골격계 질환과 화상이다. 박태선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와 쪽방촌에서 구조자들을 들것에 싣고 나오다 허리를 다치고, 고공낙하를 하다가 로프에 손바닥 살이 떨어져 나가는 화상을 입거나 다리를 접질려 퉁퉁 부은 상황에서도 그대로 출근했다. 구조대 생활 초기 7층에서 추락해 3일 동안 의식불명에 빠졌던 경광숙도 오랜 후유증에 시달린다. 눈 양쪽의 시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경광숙은, 이를 맞추기 위한 안경을 쓰면 어지럼증이 재발해 구토 증세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공상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까요. 다 자비로 침 맞고 하면서 버텼어요. 발을 다쳐서 병원에서 깁스하고 있는데 ‘왜 안 나오냐’는 전화를 받고 목발 짚고 사무실에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박태선이 말했다.

늙은 소방관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병증을 입증할 방법도 없다. 이들이 젊은 시절 다녔던 병원 기록들은 이미 폐기됐다. “누적돼서 몸이 아파도 입증이 안 되는 거죠. 선배들 중에는 퇴직하고 귀나 근골격계에 문제가 생겨도 인정 못 받는 분들이 많아요. ‘네가 나이 들어서 아픈 거 아니냐’고 하면 입증하기가 힘들죠.” 박태선의 말이다.

경광숙 전 서울 도봉소방서 검사지도팀장이 지난 7월26일 오후 도봉소방서에서 인명구조교육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광숙 전 서울 도봉소방서 검사지도팀장이 지난 7월26일 오후 도봉소방서에서 인명구조교육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트라우마도 소방관들을 괴롭히는 마음의 병이다. 경광숙은 삼풍백화점에서 구조하지 못한 그 여성의 “아저씨 살려주세요”라는 목소리가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애써 얼굴을 보지 않았던 그 여성의 실루엣이 보인다거나 꿈속에서 다가와 살려달라고 손을 잡는 상황이 이어졌다. “구조대원을 하면서 제 손을 잡고 돌아가신 분도 계셨어요. 그런 죽음을 수없이 봤기에 저 목소리도 곧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단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도 고통이 너무 커요.”

경광숙은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했다. 그럼에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아 극단적인 생각도 두 차례나 했다. 사건사고 뉴스를 보지 않고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복용량을 조절하며 마음을 살폈다. “다른 사건들까지 겹쳐서 20년 정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요.”

지난달 1일 경광숙은 서초구 양재동 매헌 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비를 찾았다. 그는 평소에도 이 위령비를 자주 찾는다. 희생자 502명의 이름이 기록된 위령비를 한 바퀴 돈 경광숙은 어느덧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정신적인 고통이 심해지니까 그냥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누구에게 힘들다고 호소하면 ‘소방관이 의지력이 없다’, ‘나약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요.” 경광숙의 고통은 28년이 지난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소방관의 무사한 오늘을 위해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소방 사이렌 캠페인 참여하고 굿즈받기] https://campaign.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264.html

 

“살려주세요” 28년째 환청…트라우마 안고 사는 영웅들

1995년 7월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85-3번지. 이곳에서 백화점이 붕괴한 지 이레째가 됐다. 소방본부 인명구조반은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내려앉은 철근 콘크리트 더미를 수십톤씩 걷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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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028.html

 

소방관은 악몽을 꾼다…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악몽을 [인터랙티브]

늙은 소방관들은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화재와 구조, 재난 현장에서 입은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외상은 경력이 쌓여갈수록 질병이 되어 소방관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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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악몽을 꾼다…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악몽을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유튜브 영상은 오는 25일 공개

 


기자김지은
수정 2023-09-18 16:35등록 2023-09-18 16:35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는 김범진 소방관 이야기를 다룬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1회 ‘유독가스에 잠식된 몸, 파킨슨병’의 한 장면


늙은 소방관들은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화재와 구조, 재난 현장에서 입은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외상은 경력이 쌓여갈수록 질병이 되어 소방관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며 질병과 함께 은퇴하는 소방관들은 국가가 앞장서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만난 평균 나이 58살, 평균 근무 경력 29.1년인 소방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고통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요구하는 일이 어렵고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들은 소방관이라는 업이 주는 책무에는 진심을 다 하고 있지만, 정작 권리를 챙기는 것에는 미숙할 따름이다. 애써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다. 과거 기록을 확보하는 일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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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터랙티브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페이지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 https://www.hani.co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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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전체 기사를 볼 수 있는 웹페이지는 여기 있습니다 : https://www.hani.co.kr/arti/SERIES/1885/

한겨레는 몸에 새겨진 고통, 그리고 이들이 겪은 가장 치명적인 재난의 기록을 묶어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이라는 제목으로 5회에 걸친 내러티브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선보인다. 각각의 소방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이라는 제목으로 5회에 걸쳐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로 제작해 회차별로 하나씩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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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소방관들의 영상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한 유튜브 영상도 오는 25일 공개한다. 영상에는 이 소방관들의 가족과 동료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화재의 진행 단계인 발화, 성장, 플래시오버, 최성기, 쇠퇴 등을 소방관들의 삶과 연결시켜 그들의 몸에 새겨진 재난의 기록을 재구성했다.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는 김범진 소방관 이야기를 다룬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1회 ‘유독가스에 잠식된 몸, 파킨슨병’의 한 장면

소방관의 무사한 오늘을 위해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고개 흔들어 양치질…57살 소방관 검은 콧물부터 뇌 질환까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8925.html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① 유독가스에 잠식된 몸, 파킨슨병

 

고개 흔들어 양치질…57살 소방관 검은 콧물부터 뇌 질환까지

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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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 찌꺼기·유해물질, 온몸에 습자지처럼 층층이 쌓여
악몽 꾸면 브레이크 없는 기차 운전사 되어 발버둥친다
기자김지은,박준용
수정 2023-09-18 05:00등록 2023-09-18 05:00

 

김범진 세종 조치원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이 7월3일 오후 현장 근무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중형 펌프차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32년간 소방관으로 일하다 파킨슨병을 얻은 김씨는 지난달 2일 인사혁신처에 파킨슨병에 대한 공무상 요양 신청을 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산다.

한겨레는 재난이 남긴 부상과 질병을 안고 늙어간 소방관 15명과 이들의 가족 및 동료 12명을 전국을 오가며 만나 두달 동안 심층 인터뷰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늙은 소방관들의 평균 나이는 58살, 평균 근무 경력은 29.1년이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국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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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57살 김범진의 뇌 속에 생존해 있는 도파민계 신경세포의 비율이다. 신경세포가 소멸한 만큼 활동에 장애가 생겼다. 걸음걸이가 둔해지고, 보폭이 줄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다. 숟가락질을 하기 어려워 밥을 자꾸 흘린다. 양치도 맘대로 되지 않아 팔이 아니라 고개를 흔들어 이를 닦는다. 인지장애가 와서 판단력 지수는 10% 이하가 됐다.

지난 7월3일과 19일 세종시에서 두차례 인터뷰를 하면서도 김범진은 과거를 되짚는 질문을 버거워했다. 더욱 문제는 이미 손상된 세포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수치가 줄어들어 몇년 뒤 20~30%가 되면 김범진은 휠체어에 의존해야 한다.

화염과 연기에 휩싸인 건물을 헤집고, 물살에 휩쓸린 사람을 건져내고, 등산객을 둘러업고 계룡산을 뛰어다닐 만큼 다부진 몸이었다. “튼튼 체질이어서 버틴 것 같다”고 했다. 마음도 굳건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늘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상황과 마주해도 “나는 괜찮다”를 되뇌었다. 24시간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과로하는 김범진에게 걱정을 건네면 “세상에 아프고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한테 그런 걸 묻냐”며 웃어넘겼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올해 초부터였다. 오른쪽 몸부터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졌다. 우울증과 변비, 소화불량도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거겠지’ 생각하며 애써 증상을 외면한 건 곧 큰딸 김한나(31)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큰일을 치르는 딸에게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버텼다.

하지만 지난 3월 딸의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봇물 터지듯 무너졌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으며, 불면증도 악화했다. 몇군데 병원을 오가며 진단을 받다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까지 하고 나서야 진단명을 알 수 있었다. 파킨슨병이라고 했다.

[%%IMAGE3%%][%%IMAGE4%%] ‘연기’
1991년 10월17일 밤 9시50분께 대구 서구 비산4동 농춘빌딩 지하 거성관 나이트클럽. 한 30살 청년이 인근 주유소에서 사 온 휘발유를 클럽 무대 위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클럽 종업원이 “촌놈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말해 화가 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불은 순식간에 무대 위 가연성 카펫과 무대 주변 장식물, 의자와 탁자 등에 옮겨붙었다. 방염 처리가 안 되어 건물 안팎이 온통 가연성 유해물질로 뒤범벅이던 시절이었다. 유해물질이 타면서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는 883㎡(267평) 넓이의 클럽 내부를 잡아먹듯 뒤덮었다.

25살 김범진은 이날 동료 소방관 54명과 함께 현장에 투입됐다. 방화복이 없어 방수복을 입어야 했고, 방열장화가 없어 고무장화를 신어야 했을 만큼 장비가 열악했다. 공기호흡기도 몇개 없었다.

사수는 임용 2개월 된 초보 소방관 김범진에게 “나를 놓치면 죽는 거다”라고 외쳤다. 주불이 잡힐 때까지 지원 업무를 하던 김범진은 화재 발생 14분 만에 진화가 완료된 뒤 클럽 내부에 들어가 수색 작업을 했다.

불이 날 때 클럽에는 150여명의 손님이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발생 초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착각한 클럽 종업원이 전기 스위치를 내리면서 조명이 모두 꺼졌다. 출구를 찾던 사람들은 어두운 지하에서 소리치며 뒤엉켰다.

발화 지점인 무대 쪽에서 3명, 무대 반대편 화장실에서 10명이 쓰러져 숨졌다. 출구 옆 화장실을 출구로 착각한 이들이 탈출하지 못한 것이 컸다. “사람은 밝은 곳을 지향하는 본능이 있어요. 위기 상황에서 조명이 켜진 화장실을 보고 출구라고 생각하고 간 거죠.”

김범진은 질식해 숨진 사람들과 불에 타 숨진 사람들을 한명씩 수습했다. 그러면서 계속 연기와 불이 꺼진 뒤에 나오는 2차 유독가스를 마셨다.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어요. 계속 샤워만 했죠. 목구멍에 때를 벗긴다고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셨는데도 매캐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어요. 침을 뱉으면 새까만 침이 계속 나오고, 코를 풀어도 새까만 콧물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6380건’

이 화재 출동이 세종시 조치원소방서 현장대응단 단장인 소방령 김범진의 시작점이었다. 김범진은 이후 32년 동안 본인 스스로 기록으로 확인한 것만 화재 출동 1531건, 구급 출동 4849건을 소화했다. 1년 평균 199건이 넘는 수치다.

그 수많은 현장들에서, 화염 찌꺼기와 연기 속 유해물질들은 얇고 질긴 습자지처럼 층층이 김범진의 온몸에 쌓여갔다. “소방관한테 연기는 숙명이죠. 공기호흡기가 있어도 안 마실 수 없어요. 무전 소통을 하고 카메라를 찍고 그러면서 유해인자 노출이 더 많아지는 경향도 있어요.”

김범진의 몸을 무너뜨린 건 유해물질만이 아니다. 김범진은 10년째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참혹한 현장을 본 기억, 화재나 재난 현장에서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울부짖음이 그를 괴롭힌다.

“1992년 5월 대구 계명대 학생회관에서 불이 나 4명이 숨지고 9명이 중화상을 입었어요. 불을 피해 계단을 올라가던 주검이 참혹하게 무너져 있었던 장면을 봤지요. 한 신경정신과 3층에서 난 화재도 기억이 납니다. 입원실이 창살로 막혀 있었어요. 검은 매연 속에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하는데, 제가 슈퍼맨도 아니니까 다 구출할 수가 없죠. 죄책감이 큽니다.”

지휘관이 되면서 생사를 좌우하는 순간적인 판단에 대한 중압감도 그를 짓눌렀다. 지휘관이 격앙된 현장에서 목격자의 진술에 담긴 과장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면 더 많은 시민과 소방관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 부담도 병의 원인이 됐다고, 김범진은 생각한다. “재난은 살아 있는 거거든요. 100년을 출동해도 똑같은 현장은 하나도 없어요. 시시각각 변하니까요.”

[%%IMAGE5%%]
‘악몽’

그래서일까. 김범진은 자주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주로 브레이크가 없는 기차의 운전사가 된다. 수많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선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워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놓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발버둥치는 것이다.

아내 권소희(52)는 김범진이 밤새 허공에 발길질을 하거나 벽을 주먹으로 치곤 한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욕도 하더라고요. 왜 하필 저 사람에게 병이 왔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결국은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아요.”

딸 김한나는 아버지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5년 전이 떠올랐다고 했다. 5년 전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머뭇거리며 “명예퇴직을 생각해봤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이 모두 웃으며 “정년까지 부탁드려요”라고 답했던 것이다.

“그때 이미 한계가 와서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은 거죠. 그때 그냥 그만두시라고 할걸, 제가 힘내시라고 화분까지 보냈어요. 지금은 그 화분을 깨버리고 싶어요.” 김한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년이 3년5개월 정도 남은 김범진은 그러나, 지난 7월 중순부터 병가를 써야 했다. 퇴직 때까지 현장을 뛰어다니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달 2일에는 법무법인 감천을 통해 인사혁신처에 파킨슨병에 대한 공무상 요양(공상) 신청을 냈다. 투병 비용 부담을 가족에게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근무 이력을 증명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전에 근무했던 충남 공주소방서 등을 찾아가 출동 기록들을 받았다. 그나마도 옛날 기록은 폐기된 것도 많았다. 화재와 구급 출동 6380건은 그렇게 확인한 32년 동안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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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

소방관에게 생기는 파킨슨병은 업무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화재 현장에서 철제나 나무, 플라스틱, 섬유 등이 연소하며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다량의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일산화탄소, 모직 등이 탈 때 나오는 황화수소·시안화수소·질소산화물, 플라스틱이 타면 나오는 염화수소·아크롤레인과 기타 유해 중금속(납·카드뮴) 등이 분출한다.

연기 속에는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트라이클로로에틸렌, 포름알데하이드, 벤조피렌도 포함돼 있다. 이런 유해물질들은 폐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방광암, 신장암, 중피종 등의 암 발생 위험을 키운다.

“과거 유럽의 많은 ‘굴뚝청소부’ 아이들이 암에 걸렸던 일이 증명된 것이 인류 최초의 직업병 산업재해 사례라고들 합니다. 이는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함유된 검댕 때문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소방관에게 재현될 가능성이 큰 겁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의 말이다.

특히 일산화탄소는 저산소증에 의한 뇌 손상을 부르고, 이런 손상이 누적되면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서서히 소실되는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계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일산화탄소 급성 중독으로 실신을 하거나 기억을 잃었던 경우에 파킨슨병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소방관의 경우에도 저산소증이 누적되면 퇴행성 신경계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경숙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의 설명이다.

지난 8일 인사혁신처는 파킨슨병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며 김범진의 공상을 인정했다. 김범진의 경우 과거 무릎 연골이 찢어져 공상 신청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드물게 인정된 케이스다.

경남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 소방관은 김범진과 달리 2017년 파킨슨병 공상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상추정법(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에도 파킨슨병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공상추정법은 공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아도 특정 직무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법이다. 미국 인디애나주와 뉴욕주 등의 주정부에서는 소방관의 파킨슨병이 공상추정법 대상이다.

퇴직 이후 평생 투병할 김범진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파킨슨병은 시간이 갈수록 몸의 부담과 불편함이 심해지는 병이어서 장기적으로 훨씬 더 힘들어집니다.” 김범진의 주치의인 신채원 세종충남대병원 교수(신경과)의 말이다.

이 때문에 김범진에겐 공상 인정 외에 치료되기 어려운 질병이나 부상을 안고 퇴직했을 때 지급되는 장해연금이나 국가유공자 인정이 절실하다. “원래는 퇴직하고도 70살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손을 덜덜 떠는 파킨슨병 환자를 누가 쓸까요.”

김범진은 사회를 위해 헌신하다 붕괴한 몸을 국가가 돌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뇌가 굳지 않기를 가장 바란다. 가족들에게도 “팔 한쪽, 다리 한쪽은 잃어도, 못 써도 좋으니 정신만 온전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하는 까닭이다.

“치매가 오는 게 가장 걱정이에요. 내 주위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게 슬픈 거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좀….” 김범진이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독] 56살 소방관 진료기록만 27쪽인데, 치료 지원은 1건뿐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①공상 신청된 소방관 부상·질병 분석
최근 1년간 소방관 639명, 근골격계 손상·외상으로 공상 신청
기자박준용,김지은
수정 2023-09-18 05:00등록 2023-09-18 05:00

 


28년차 소방관 김분순씨가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로 마포소방서 구급차 안에서 응급 상황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산다. 한겨레는 재난이 남긴 부상과 질병을 안고 늙어간 소방관 15명과 이들의 가족 및 동료 12명을 전국을 오가며 만나 두달 동안 심층 인터뷰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늙은 소방관들의 평균 나이는 58살, 평균 근무 경력은 29.1년이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국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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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차 소방관 김분순(56)이 지금껏 받은 병원 진료 기록은 27쪽에 이른다. 경력 대부분을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위급한 상황에 처한 시민들을 구호하고 이송한 김분순은 근골관절염, 연골파열, 척추협착 등의 근골격계 통증과 갑상선암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김분순은 지난 7월 ‘근골관절염’ 하나에 대해서만 정부에서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공무상 요양(공상)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복잡한 절차와 더불어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소방관이 지난해 인사혁신처에 공상을 신청해 승인된 건수는 1075건에 이른다. 하루 평균 3건에 육박한다. 3년 전부터 해마다 1천건을 넘나든다.

한겨레가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전국에서 소방관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부상이나 질병을 입고 공상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경위조사서 761건(제출된 조사서 전수)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84%(639명)에 이르는 소방공무원이 디스크나 골절상 등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으로 공상을 신청했다. 경위조사서는 공상 신청 때 해당 직원의 소속 기관이 작성하는 확인 서류다.

경위조사서(두가지 이상 부상 땐 중복 계산)의 내용을 보면, 지난 1년 동안 뼈가 부러지는 골절상이 99명, 근육·인대·아킬레스건 등 파열이 107명, 목과 허리 디스크(경추·요추추간판탈출증) 58명, 목·팔목·무릎·발목 등 염좌가 94명이었다. 2도 이상 화상을 입은 이도 25명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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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부상하게 된 유형으로는 수관이나 들것 등 중량물을 옮기는 작업 등에서 발생한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223명, 다리가 접질리는 등의 넘어짐 110명, 교통사고 81명 순이었다. 떨어짐(35명)이나 부딪힘(34명), 출동 현장에서 폭행 피해(33명)도 적지 않았다.

직무별로 나눠서 보면,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들것으로 들거나 이송하는 과정에서 허리·무릎·어깨 등이 손상되는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관련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이 잦았다. 구급대원들의 사고 경위조사서에서 ‘들것’이 언급된 사례가 43건이나 됐다. 김분순은 주로 산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환자를 이송해야 할 때 이런 부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마을에는 계단으로 모든 환자를 움직여야 해요. 들것을 끌고 메고 다니다 보니까 무릎, 발목, 손목, 어깨, 허리가 다 무너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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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은 교통사고도 잦다. 교통사고 81건 가운데 구급차로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거나 응급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하다 사고가 난 일이 46.9%(38건)나 됐다. 출동 현장에서 폭행을 당해 부상하는 경우도 대부분의 구급대원(33명 가운데 32명)에게 발생했다. “신호 조작을 하고 가도 급하게 이동하다 보니 교통사고가 많이 나지요. 저도 교통사고를 세번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려고 누우면 차량 소음이 크게 들리는 등 트라우마가 생긴 적이 있어요. 게다가 구급출동을 했을 때 주취자를 상대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폭행당하는 일도 잦아요. 저도 어르신 환자에게 지팡이로 맞은 일이 있었어요.” 김분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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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진압·구조대원도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진압대 87명, 구조대 44명) 사례가 가장 많았는데, 특히 화재진압·구조대원들은 소방호스 작업 과정에서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이 많이 생긴다. 넘어짐(32명)과 미끄러짐(35명)도 많았다. 부산 기장군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이아무개(56)씨는 수관을 들다 극심한 허리 통증이 생겨 진단을 받아보니 허리 디스크인 요추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는 “화재 진압 때 소방호스는 1.5~4M㎩(메가파스칼)의 기압을 견뎌야 한다”며 “소방관 1명은 0.3M㎩의 압력을 받아 분당 0.5톤의 소방호스 압력을 버텨야 하므로 무릎과 허리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화재진압·구조대원의 경우 현장에서 구조물이 무너지거나 예측하지 못한 지형으로 빠지는 등 추락 사고를 겪는 일도 많았다. 추락으로 인한 근골격계 손상 35명 가운데 20명이 화재진압·구조대원이었다. 소방관 최아무개(50)씨는 서울의 한 지역 소방서에서 화재 출동을 갔는데, 지붕이 무너지면서 진압대원 4명과 동시에 추락해 허리 염좌와 타박상을 입었다.

더욱 문제는 외상에 더해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무리한 교대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축적돼 발생하는 질병이다. 오영환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 6월까지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질병으로 공상이 인정된 소방관 547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40.6%로 가장 많고, 40대(27.4%)와 30대(24.1%)가 뒤를 이었다.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공상을 인정받은 소방관은 30대가 41.7%로 가장 많은 점과 대조된다. 재난과 구급 현장을 뛰어다니는 20~30대 대원들은 사고를 겪을 위험이 높고, 이런 일이 축적되면서 건강이 악화한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질병을 얻게 되는 경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2020년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3년 동안 공상을 신청한 질병 경위조사서 264건을 분석해보니, 암 환자가 20.1%(53명)나 됐고, 암 환자 중에선 화재진압대원이 75.5%(40명)나 됐다. 암은 유형별로 신장암 8명, 폐암 6명, 전립선암 5명, 방광암 2명 등이었다. 김인아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일반적으로 소방관은 폐암, 백혈병 같은 혈액암, 방광암의 발병 위험이 큰 걸로 알려져 있다”며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방관이라는 직업 자체를 암 발현 가능성이 높은 1그룹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근경색·뇌출혈 등 심뇌혈관 질환을 앓는 소방관도 19.3%(51명)나 됐다. 소방관의 업무는 심뇌혈관 질환 발생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윤진하 연세대 교수(예방의학)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경찰관 및 소방관의 뇌심혈관 질환의 위험: 전국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보면, 전체 공무원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도를 1로 놓을 때 경찰관과 소방관의 발생 위험도는 각각 1.74, 1.22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일을 시작할 나이인 20대에는 일반인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소방관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40대가 넘을수록 건강 위험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진다”며 “교대근무와 출동, 수면장애와 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인해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목·허리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은 63명이었는데, 이는 앞선 근골격계 손상들이 축적돼 질병으로 이어진 경우들이었다. 김 교수는 “근골격계 질환은 아주 작은 손상들이 겹치면서 나중에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손상이 된 것”이라며 “소방관처럼 중량물 작업이 많은 경우는 퇴행성 변화가 연령에 비해 빨리 진행되거나 끊어지지 않아야 될 인대가 끊어지는 등의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32명이었다. 이 가운데 75%(24명)가 구급활동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이 장애는 구급대원에게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 밖에 사이렌 소음으로 인한 난청은 22명, 신경계 질환은 12명이었다. 김범진 소방관처럼 파킨슨병을 겪은 이는 5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4명은 화재 진압 및 조사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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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8926.html

 

[단독] 56살 소방관 진료기록만 27쪽인데, 치료 지원은 1건뿐

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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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공상 승인, 전담 TF 출범했지만…담당자 3명뿐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⑤
소방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
TF, 전담팀으로 정식 출범
공상 처리속도 빨라지고
보완요구 반으로 줄었지만
1명이 연 783건 처리
기자박준용,김지은
수정 2023-09-27 08:00등록 2023-09-27 08:00
2019년 2월 방광암 진단을 받은 김성제 소방관이 지난 7월25일 인천 중구 인천119특수대응단 소방헬기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19년 2월 방광암 진단을 받은 김성제 소방관이 지난 7월25일 인천 중구 인천119특수대응단 소방헬기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소방관 김성제(56)는 2019년 2월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암을 진단하며 “소방관님처럼 유해물질 취급을 많이 하시는 분이 직업병으로 걸릴 수 있는 암”이라고 말했다. 김성제는 21년째 화재 진압과 구조 업무를 하던 순간들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할 때는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했는데, 이제와서야 그때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특히 암 진단 10개월 전 있었던 대형 화재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18년 4월13일 인천 서구 가좌동 일대 화학물질처리공장에서 큰 불이 났다. 공장은 폐유기용제와 폐유, 알코올 등을 재활용 처리하는 곳이었다. 불이 커지면서 황산 등 위험한 화학물질이 도로에 흘렀고, 그 위에 불이 붙기도 했다. 5시간 동안 공장 건물 2개 동과 도금·목재 공장 6개 동을 태웠다. 일반차량 20여대와 출동한 소방차도 불에 탔다.

5시간 동안의 진화 작업은 김성제를 비롯한 소방관들에게 큰 후유증을 남겼다. 김성제는 다음날부터 사타구니에 심한 열이 났고, 한달 넘게 기침에 시달렸다. 김성제와 함께 출동한 소방관 30여명도 호흡 곤란, 하체 가려움증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산소호흡기를 쓰고 무전하면 업무에 많은 방해를 받기 때문에 간단한 마스크를 썼어요. 알게 모르게 유해물질이 호흡기와 피부에 노출됐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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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16일 인천시 서구 가좌동 화학물질 처리공장 화재사고 현장. 연합뉴스
2018년 4월16일 인천시 서구 가좌동 화학물질 처리공장 화재사고 현장. 연합뉴스
이런 상황들이 쌓여서 발병한 걸까. 김성제는 방광암을 수술하고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김성제는 수술에 든 치료비를 먼저 부담하고, 이후 공무상 요양(공상) 신청을 하고자 했다. 문제는 다른 많은 소방관들처럼, 김성제도 공상 신청을 하려면 직접 구체적인 출동기록과 의학적 근거, 질병과 관련있는 구체적인 업무내역 등을 수집해야 한다는 점이다. 암 수술 이틀 뒤부터 출근해 화재진압을 할 정도로 정신 없었던 김성제에게 이 모든 일들은 가욋일이었다.

난감해하던 김성제가 소방청 재해보상태스크포스(TF·티에프)팀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20년이었다. 소방청이 티에프팀을 신설해 공상 신청을 하려는 소방공무원에게 도움을 주려한다는 공문을 각 소방서에 보냈고, 이를 본 김성제가 티에프팀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 티에프팀이 김성제의 방광암과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직접 취합해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이하 심의회)에 제출할 수 있게 했다. 김성제는 지난해 11월 공상 인정을 받았다. “방광암과 업무의 의료적인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부분이 자신 없었어요. 그런데 티에프팀에서 소방관들에게 방광암이 흔히 있는 질병이라는 연구 결과를 취합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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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프팀은 지난해 11월 소방청 내 직제를 얻어 ‘재해보상전담팀’으로 정식 출범했다. 각 소방관서로 흩어져 있던 공상 신청 등 재해보상과 보훈 업무를 이 팀이 전담해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각 소방관서에 업무가 흩어져 있을 때는 다른 업무 담당자가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전문성도 떨어져 서류 미비가 발견되는 등 문제점이 노출됐다. 재해보상전담팀에서 재해보상 총괄을 맡는 김수근 보건안전담당관은 “서류를 일관성 있게 제출할 수 있게 되면서 입증 서류가 부족해 불승인됐던 건도 개선되고 있다”며 “소방청 차원에서 의료 전문가를 통한 역학조사서를 만들어 근거 자료로 제출하는 일도 한다”고 말했다.

전담팀이 생긴 뒤 공상 업무 처리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소방관에게 사고가 발생한 뒤 40일 이내 공상을 신청한 비율이 23.7%였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17.4%)보다 6.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공상 신청 접수를 받아 심의회에 심의를 의뢰하는 공무원연금공단이 공상 관련 서류를 보완하라고 요구해 온 비율도 올 상반기 31.1%에 그쳐 지난해 상반기(60%)의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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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적은 인력이다. 전담팀은 현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1명은 국가보훈부에 소방관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신청하는 업무를 맡는 보훈 담당자다. 재해보상 담당자는 3명에 불과한데, 이들이 올해 상반기에 맡은 재해보상 사건만 2349건이다. 1명당 783건에 이른다.

게다가 담당자 3명 가운데 2명은 소방청 소속이 아니라 지역 소방본부에서 파견받은 인력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역 소방본부로 복귀해야 한다. 공무원연금법상 재해보상업무가 각 지역 소방본부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전담팀의 기형적인 인력 파견 구조를 바꾸려면 법 개정도 필요하다. 채진 목원대 교수(소방안전학)는 “행정안전부 등에서 소방청에 관련 인력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전담팀에 공식 인력을 둘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직업병 관련 연구 인력도 충원해서 소방관의 질병에 대한 추적 관찰까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지난 6월부터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공무원이 특정 질병에 걸리면 별도 심의를 거치지 않고 공상으로 인정하는 제도인 ‘공상추정법’(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공상추정법은 혈관육종암 진단을 받고 공상 인정을 위한 소송과 치료를 병행하다 2014년 순직한 고 김범석 소방관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가 지난해 5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예규에 담긴 공무상 질병 추정 기준을 보면, ‘화재진압·구조가 주 직무’인 소방관의 경우 △5년 이상 근무하고, 첫 노출 후 10년 이상 경과하여 발생한 중피종(노출 기간 5년 미만이라도 석면 관련 흉막판이나 석면폐증은 인정) △10년 이상 근무 후 발생한 방광암 또는 폐암 △5년 이상 근무 후 발생한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또는 다발성골수종과 같은 직업성 암과 급성 스트레스 장애 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에 대해 공상추정법이 적용된다. 화재 현장에서 노출이 잦아 희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큰 소방관들 다수가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법무법인 감천의 이영만 노무사는 “인정되는 질병의 종류가 너무 적다”며 “폐암이지만 노출 기간이 맞지 않거나 노출 기간은 충족하는데 공상추정법이 인정하는 암이 아닌 경우에 대해서도 인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형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도 “추정 범위가 좁은 현재의 공상추정법은 공상 업무 처리 속도를 빠르게 하는 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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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선 한국보다 넓은 범위의 소방관 공상 추정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소방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인 소방 전문가 이건씨는 “미국은 1982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소방관의 암 추정법이 처음 도입됐고, 지금은 50개 주에서 공상추정법이 자리를 잡은 상태”라며 “보통 5~10년 이상 근무자가 폐암·뇌종양·피부암·신장암·방광암·백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바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도 주별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시 뇌종양(10년 근무), 신장암(20년 근무), 각종 림프종(20년 근무)의 공상을 인정하고 있고, 호주에서도 뇌종양·백혈병(5년 근무), 유방암·고환암(10년 근무), 신장암·비호지킨림프종·방광암·대장암(15년 근무) 등의 공상을 인정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은 “선진국의 사례들을 더 꼼꼼하게 보고 인정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며 “국내 공상추정법 추정 대상에서 빠진 질병 가운데 뇌종양과 유방암은 미국 여러 주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상추정법을 발의한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제적으로 소방관 직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받는 특이암 중에 들어가지 않는 암들이 많다”며 “화재조사요원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문제다. 화재조사에는 소방만이 아니라 경찰도 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있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재해보상심의회에 퇴직 소방관도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에서 소방관의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를 주도하거나 연구 기관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심의회 등에서 일하는 의료진 등의 전문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공상 인정 등을 판정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대장암이나 전립선암, 신장암 등 인정할 수 있는 질병이 더 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노력해야 하고, 소방관도 적극 참여해 자료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진하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사회가 지식을 쌓지 않은 책임이 소방관에게 있는 게 아닌데, 소방관이 그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0266.html

 

소방관 공상 승인, 전담 TF 출범했지만…담당자 3명뿐

소방관 김성제(56)는 2019년 2월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암을 진단하며 “소방관님처럼 유해물질 취급을 많이 하시는 분이 직업병으로 걸릴 수 있는 암”이라고 말했다. 김성제는 21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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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희귀질환 걸려도 ‘공무 연관성 모른다’…소방관 외면하는 국가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④
지켜주지 않는 국가 ‘공상 불승인’
기자김지은,박준용
수정 2023-09-25 05:00등록 2023-09-25 05:00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진료 차례를 기다리며 영상의학과 검사 보고서 내용 중 의학 용어를 검색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진료 차례를 기다리며 영상의학과 검사 보고서 내용 중 의학 용어를 검색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6월21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진료대기실. 조호수(52)는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의학 용어로 가득한 보고서를 이해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검색까지 해봤지만, 독해가 쉽지 않았다. 곧 간호사가 조호수의 이름을 불렀다. 의사는 “일단 눈에 보이는 암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조호수가 “항암제를 매일 먹으니까 몸이 너무 힘들어서 네알씩 먹다가 하나로 줄였다”고 하니 “미세암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항암제 용량을 줄이면 안 된다. 다시 네알 드셔야 한다”고 말했다.


조호수가 암을 인지한 건 2021년 2월이다. 요가를 하고 있는데 배에서 뭐가 만져지는 느낌을 받았다. 뻐근하면서 통증도 느껴졌다. 통증이 사나흘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소장암이라고 했다. 벌써 4기였고, 복막과 간에 전이가 됐다. 같은해 3월 1차 수술로 소장 일부를 절제했다. 9월에는 2차 수술로 간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빈혈이 심하게 왔고 피부도 벗겨졌다. 몸무게는 15㎏이 빠졌다. “암은 완치가 없어요. 재발하면 끝이다 싶은 절박한 마음이 생기죠. 병원 오기 일주일 전부터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조호수는 경북 봉화소방서 소속 소방위다. 22년차 소방관으로, 화재진압대원으로만 12년 정도 일했다. 같은 소방서에서 1년 정도 함께 근무한 곽영오 봉화소방서 명호119안전센터장은 조호수가 “평소 공사관계가 분명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런 조호수가 어쩌다 말기 소장암을 앓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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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소방관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호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유로 꼽았다. “119 상황실에서 오래 근무했어요. 한 번은 119 신고전화가 와서는 대뜸 ‘저희 어머니 잘 부탁한다’고 해서 ‘아, 이 사람 자살하려고 하는구나’ 싶어 안심시키려는데 갑자기 어머니 집 주소를 부르더니 ‘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했죠. 본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내겠다는 주취자들에게도 엄청 시달렸어요.”

또 다른 이유는 출동한 화재 현장에서 노출된 유독물질들이다. 조호수는 경북 영주소방서에서 오래 근무하며 시멘트와 석면을 섞어 만든 슬레이트로 지은 주택 화재에 자주 출동했다. “시골에는 석면 지붕들이 많아요. 그게 타면 1급 발암물질을 그대로 흡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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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가스가 가득한 공장이나 농약 창고 화재 현장도 수없이 오갔다. 조호수에게 유독 기억나는 건 2007년 6월 경북 봉화군에서 발생한 농약창고 화재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코끝이 찡해올만큼 악취가 퍼져 있었다. 역한 냄새를 견디기 어려웠지만, 외부에서 초기 진화를 하는 20분 동안에는 공기호흡기를 쓰지 못했다. 당시 공기호흡기는 용기 교체 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최대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창고 내부를 진압할 때를 위해 남겨둬야 했다.

새벽 6시께 화재진압을 시작해 잔불 처리까지 1시간 남짓 걸렸는데, 곧 피부가 따갑고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며칠 동안 가래가 끓고 호흡이 쉽지 않았다. “영풍 석포제련소 등 여러 공장 화재에 출동했었어요. 금속 화재는 물을 뿌리면 더 강렬하게 반응하니 모래로 덮어야 하는데, 황산도 다량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지역에 큰 공장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하지만, 그 지역 소방관들에게는 위험 요소지요.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위협을 가할만한 규모의 공장 화재가 발생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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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박사는 2021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한국 대도시 소방관들의 유해물질 직접, 간접 노출과 질병유병률’에서 소방관들이 접하는 현장 환경을 시뮬레이션한 뒤 소방 방호복에 축적된 유해물질을 분석했다. 여기서 니켈·아크릴로니트릴·나프탈렌·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 등이 검출됐는데, 이들은 모두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발암물질이다. 아울러 소량이라도 인체에 흡수되면 치명적인 바륨, 한국 산업안전보건기준에서 규정한 발암성 물질인 안티몬, 폐수배출시설 적용 기준을 초과하는 물질인 구리 등도 검출됐다.

문제는 소방관들이 하루 평균 99.4건(소방청 통계연보, 2021년 기준)의 화재 현장에 뛰어들고 있으면서도, 정작 어떤 유해물질에 노출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조호수도 마찬가지다.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연기가 생각났어요. 공장에서 불이 날 때 가열되어 날아다니던 병과 깡통들도요. 석면뿐만 아니라 이산화황 같은 유독물질이 시커면 연기로 배출되는데, 연기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숨이 확 막히고, 두 모금 마시면 쓰러질 정도로 독성이 강해요.”

하지만 조호수는 소장암에 대한 공무상 요양(공상)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인사혁신처는 소장암과 조호수의 업무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투병 비용에 짓눌리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치료비와 요양을 위한 비용에 8천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야 했다. “아무리 자료 준비를 많이 해도 희귀질환은 인정을 받기가 힘들대요. 공무살 질병 판정 기준에 직업상 암 발병 요건이 있는데, 거기 폐암이나 백혈병은 나와 있는데 소장암은 없는 거죠.”

경기도 가평소방서 차고에 소방대원들의 장비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기도 가평소방서 차고에 소방대원들의 장비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4일 한겨레가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보니,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질병으로 공상 신청한 소방관 779명 가운데 41.1%(320명)가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질병으로 인한 공상 승인율은 2019년 57.6%, 2020년 53.7%, 2021년 58.8%, 지난해 64.4%로 매년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승인율에 견줘 크게 적다. 이 기간 전체 공상 승인율은 89%였고, 사고로 인한 공상 승인율은 95.7%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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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공상 승인율을 질환별로 보면, 중증 질환인 암의 경우 승인율이 51%, 심혈관질환은 58%, 이비인후과·안과 질환은 42.7%에 불과했다. 근골격계 질환(64.7%)과 뇌출혈 등 뇌혈관 질환(70%), 정신질환(78.2%)은 상대적으로 높다.

정부가 소방관들의 공상 신청을 거부하며 밝힌 이유는 뭘까. 오 의원실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공상 불승인 판정서 79건을 입수해 주요 이유를 분석해보니, ‘인과성’이나 ‘공무 연관성’을 언급하며 불승인한 게 35.4%(28건)였고, 질병의 종류가 근골격계·신경계인 환자를 두고 ‘퇴행성 질환’이라며 노화에 따른 것이라는 언급이 19%(15건)였다.

특히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지난 5월에도 파킨슨 병을 앓는 이아무개씨에 대해 ‘퇴행성 질환’을 이유로 불승인 판정을 했다. 이 밖에 ‘개인 질환’ 등 개인의 체질에 따른 질병이라는 언급이 16.4%(13건)였고, 현장 업무 경력이 적다(3건)거나 자료 부족(3건), 퇴직 후 시간이 지났다(3건) 등의 이유도 있었다. “공무상 질병 심의는 주로 의사들이 하게 되는데, 불승인 내용을 보면 ‘그런 질병이 공무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바 없다’는 이유가 많아요. 한마디로 ‘모른다’는 건데, 심의에서 ‘모른다’는 곧 ‘아니다’로 판단이 되는 거지요.” 윤진하 연세대 교수(예방의학)의 말이다.

소방관 조호수씨가 건강하던 시절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찍은 사진. 조호수 제공
소방관 조호수씨가 건강하던 시절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찍은 사진. 조호수 제공
전문가들은 소방공무원의 경우 희귀질환에 걸리면 공상을 인정받기가 더 어려운 모순이 있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감천의 김가람 노무사는 “소방공무원은 입직할 때부터 건강 상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뽑는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내성이 강한 분들이 많다”며 “그렇다보니 특정 질병에 대한 발병률도 낮을 수 있는데, 기존의 사례가 없으면 공상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향 때문에 대처가 힘들다”고 말했다. 정경숙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소장암이 암 중에서도 드문 암이다보니 연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대장암이 교대근무자에게서 발생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가 있다. 소장암도 비슷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호수는 자신에게 발병한 암이 희귀한 소장암이 아니라 소방관에게 선례가 많아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쉬운 폐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사실 1차 수술 이후 폐로도 전이가 됐다고 해서 공상 신청 때 폐 전이 사실도 함께 알렸는데, 폐암이면 받기 쉬운 데 전이된 거는 인과관계를 규정해서 승인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6월28일 찾은 조호수의 경북 영주 집 뒷마당 텃밭에는 상추와 쑥갓, 토마토, 비트 등이 자라고 있었다. 조호수는 떨어진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해 텃밭에서 일할 때는 맨발로 흙을 밟고, 가급적 자신이 직접 기른 채소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조호수는 방 한 구석에 쌓여 있는 두툼한 종이뭉치를 꺼내 보였다. 공상 신청 때 모은 22년 소방관 생활 동안의 출동과 초과근무 기록, 주기적인 건강검진 기록 등었다. 석면에 대한 논문도 있었다. 인사혁신처가 공상 불승인 판정을 한 뒤 되돌려보낸 문서들이다. 조호수는 “재난 현장에 뛰어가는 순간 평상시에는 무서운 상황도, 제복을 입으면 그 두려움을 다 잊는 것 같다”고 말할 만큼 여전히 소방관으로서의 자부심에 넘치지만, 되돌려받은 문서들을 보면 그 자부심이 외면당한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 상실감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 재심 청구도 망설이고 있다.

“공상 인정을 받으면 제가 20년 이상 국가와 주민을 위해 한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심리적 보상이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불승인이 되면서 ‘너 자신이 관리 못 해서 그런 병이 생긴 것 아니냐’고 하는 것 같아 서운하지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897.html

 

희귀질환 걸려도 ‘공무 연관성 모른다’…소방관 외면하는 국가

6월21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진료대기실. 조호수(52)는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의학 용어로 가득한 보고서를 이해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검색까지 해봤지만, 독

www.hani.co.kr

 

동영상 자료. 

 

https://naver.me/G7Z0PaBq

 

한겨레TV

“죽음의 연기...희귀 질환에 걸렸다” | 화인, 몸에 새겨진 재난

bridge-now.naver.com

 

 

 

사회사회일반
정신과 10년 다녀도 공상 불인정…내가 나약한 탓일까요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③ 출동 현장이 악몽으로…PTSD
숙명처럼 달고 사는 ‘마음의 병’
기자김지은
수정 2023-09-22 08:00등록 2023-09-22 08:00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받는 중인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7월7일 인천성모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받는 중인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7월7일 인천성모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소방관 김향정(58)은 가스버너를 켜지 못한다. 2008년 출동한 인천 계양구 서운동 다세대주택 화재에서 김향정이 발견한 건 가스에 질식한 탓에 탈출하지 못한 채 쓰러진 노부부의 인골뿐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 느꼈던 공포감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리를 하기 위해 버너에 점화할 때가 되면, 김향정은 아들 박성길(29)에게 불을 켜달라 부탁한다.


김향정은 면허가 있지만 운전도 하지 못한다. 2004년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그는 찢겨지다시피 한 피해자의 주검을 수습해야 했다. 2006년에는 파지 줍는 할머니가 새벽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 혈흔만 남기고 주검 자체가 사실상 사라진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그날들을 떠올리면 김향정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약한 줄 몰랐다”는 말을 되뇌곤 한다. 그렇게 약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도 될까, 의심한다.

김향정은 숙면을 취하지도 못한다. 현장을 떠올리며 자주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악몽을 꿀 때면 김향정은 “불이야!” 소리 지르거나 옆에서 자던 남편을 발로 차는 일을 반복했다. 발을 쿵쿵 찧으면서 화재 현장의 세부 사항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하고, 아예 알아듣기 힘든 헛소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김향정은 늘 피로를 회복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산다. “사람이 죽는 꿈을 계속 꿔요. 악몽 때문에 다음날이면 너무 피곤한데, 업무 때문에 쉴 시간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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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7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 1997년 소방관이 된 김향정은 이후 26년 동안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 등으로 일하면서 숱한 죽음을 마주했다. 그런 기억이 층층이 쌓이면서 김향정에게는 할 수 없는 것들 역시 하나씩 쌓이게 됐다.

소방관으로 시작할 때부터 죽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소방관이 된 직후인 1997년 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해서다. 1998년은 자살자가 전년과 견줘 2554명이나 늘어난 해였다. 김향정은 하루 출동 15건 가운데 5건이 자살 사망인 날도 있었다고 했다. “고층에서 추락한 경우는 너무 많고요, 집안에서 목을 맨 사람도 정말 많이 봤어요. 집안 곳곳에서 목을 맸죠. 그게 아직도 트라우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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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8월5일 인천 부평소방서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8월5일 인천 부평소방서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여성 소방관이고 구급대원이어서 겪은 고초들도 김향정을 옥죄었다. 소방관으로 일하던 초기 구급대원으로 출동한 현장에서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고 성추행을 당해도 윗선에 보고하면 “소방관이 일하다 보면 그런 일도 있지 않냐”거나 “당하면 구급대원들만 손해니까 맞지 말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1998년 출동 현장에선 40대 정도 되는 남성이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내뱉으며 발로 기물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결국 공무집행방해로 신고한 뒤 그의 아내가 와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데 윗선에선 “뭘 그런 걸로 그러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쌓인 울분과 상처가 무기력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기게 했다.

김향정은 2009년께부터 본격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피티에스디)로 인한 우울증과 분노조절 장애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증상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냈다. 어느 순간 홧김에 심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아들을 막 때리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향정의 악몽에 시달려 거실에서 따로 자기 시작한 남편은 2018년께 아예 방을 얻어서 집을 나가버렸다. “이러다간 엄마가 애를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직장도 다니고 돈을 버는 이유는 아들한테 잘해주기 위해서인데, 애를 학대하고 있으니까,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한 거죠.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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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향정처럼 정신건강에 문제를 안고 있는 소방관들의 수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소방청이 공개한 ‘2022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만4056명 가운데 8.1%(4364명)가 피티에스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의 5.7%(3093명)보다 2.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우울증을 지닌 소방관도 7.6%(4129명)로 집계됐고, 수면장애가 있는 경우는 29.8%(1만6108명)나 됐다.


더욱 심각한 건 ‘극단적 선택 생각을 1회 이상 했다’는 응답이 9.2%(4967명)로 이 역시 전해 8%(4319명)보다 늘었다는 점이다. 김향정을 진료하고 있는 허휴정 인천성모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소방공무원들은 계속 사고나 보기 힘든 험한 장면들에 노출되는데, 그 기억이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평생 케어가 필요한 분들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기억 재처리 치료를 해야 할 필요도 있다”며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대인 관계가 힘들어지고 가족 관계도 어려워져서 삶이 망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향정은 2011년 5월부터 정신과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요즘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복용한다.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끊어 보기도 했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서 증상이 재발돼 다시 먹어야 했다. 그래도 아들 박성길은 김향정에게 유일한 위안이다. 박성길은 요즘도 김향정이 자다가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옆방에서 건너와 “엄마 또 꿈꿨지?”라며 다독인다. “엄마가 소리 지르거나 헛소리하는 건 제가 중학생이었던 15년 전부터 비일비재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소방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아들 박성길의 말이다.

정년퇴임을 2년6개월 앞둔 김향정은 지난 4월 피티에스디로 공무상 요양(공상) 신청을 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면서도 말도 못 하고 지내는 동료들을 위해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26년 근무 경력 가운데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 등으로 현장에서 일했던 20년 동안의 출동 기록 8500여건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스스로 모았다. 병원 진료 기록과 심리검사 기록, 초과근무 기록과 지난 10년간 요양급여 지급 내역까지 모두 확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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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7월 인사혁신처는 공상 불승인 판정을 보내왔다. 피티에스디와 업무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까닭이었다. “엄마에게는 평생 후유증으로 남는 거고, 평생 독한 약을 먹으며 지내야 하는 거잖아요. 나라가 당연히 지원해줘야 하는 건데, 엄마가 직접 공상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거에서 1차로 놀랐고, 불승인 났다고 해서 또 놀랐어요.” 아들 박성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8월5일 일터인 인천 부평소방서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8월5일 일터인 인천 부평소방서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김향정은 그래도 여전히 제복을 입고 소방관으로 일한다. “길 가다 가끔 사건사고 같은 걸 보잖아요. 저도 사실 사복 입고 있으면 가기 싫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제복을 입으면 뛰어가요. 그렇게 길들여져온 것 같아요. 사명감이 없으면 못 하죠.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심정지가 왔던 한 70대 할머니를 응급처치 잘해서 살리고 병원에 이송했던 기억도 나요. 그 할머니가 저를 부르더니 천원짜리 꾸불꾸불한 거를 속주머니에서 꺼내서 손에 꼭 쥐여 주더라고요. 힘든 와중에 그래서 구급대원 하는 거지요.”

 

 

 

 

“재난 앞 죽음 감수, 소방관에 희생 강요는 말았으면…”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⑤ 
에필로그
기자김지은
수정 2023-09-27 08:00등록 2023-09-27 08:00
파킨슨병에 걸린 33년차 소방관 김범진 세종 조치원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이 현장 근무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중형펌프차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화재진압복을 입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파킨슨병에 걸린 33년차 소방관 김범진 세종 조치원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이 현장 근무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중형펌프차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화재진압복을 입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근데 왜 저 같은 사람을 취재하세요? 더 아프고 더 열심히 산 소방관들도 많은데….”

파킨슨병에 걸린 33년 경력의 김범진(57) 소방관은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는 일평생 사람들을 구조한 후유증으로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굳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정년조차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과 질병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동료의 처지가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달 동안 전국을 돌며 심층 인터뷰한 은퇴 전후의 소방관 15명은 평생 다른 사람을 구조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구조 요청에는 서툰 이들이었습니다. 불에 데고 뼈가 부러지는 것 정도는 ‘소방관이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서로 위로하며 지내왔다고 합니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근원적 이유에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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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항의는 곧 ‘민원’이고, 소방관들 역시 ‘공무원’입니다. 다만 민원에 잘못 떠밀리면 그 대가가 ‘목숨’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좀 다르죠. “‘불 속에 사람이 있는데 소방관이 안 들어가고 뭐 하냐’고 욕먹는 경우가 많아요.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압박을 받으면 떠밀려서 들어가기도 하고, 나쁜 상황에서는 목숨을 잃는 거예요.” 30년차 소방관 김태효(56)의 말입니다.

재난 앞에서 소방관들의 목숨 가치는 구조자들에 견줘 한없이 낮게 취급되곤 합니다. “배가 뒤집힌 수난 사고에 구조하러 간 적이 있어요. 일부 구조대원은 물에 들어가서 사람을 구하고, 또 일부는 필요한 장비를 전달하고 있었죠. 구조자의 아들이 ‘다 물에 안 들어가고 뭐 하냐’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더라고요.” 김태효 소방관은 기억을 되짚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구조한 사람의 가족에게서 “미국이었으면 총으로 다 쏴서 죽여버렸을 것”이라는 폭언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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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독촉에 떠밀려 사고 현장에 재진입했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30년 근무하고 지난 6월 은퇴한 박태선(60) 소방관은 2005년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한옥에서 일어난 화재를 떠올렸습니다. “이미 내부를 한번 확인하고 나왔는데, 지나가던 주민이 ‘아직 못 구한 사람이 있는데 왜 안 들어가냐’고 다그치더라고요. 자꾸 우기니까 어쩌겠어요. 다시 들어갔다가 대들보가 무너져서 그대로 죽을 뻔했죠.”

이후 그는 교관 생활을 할 때도 후배 소방관들에게 항상 “남의 말을 함부로 믿지 말라”고 교육했습니다. 구조자와 관계된 사람들은 당연히 마음이 급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소방관이 죽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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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6일 오후 성공일 소방교가 70대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전북 김제시 금산면 주택 화재 현장. 전북소방본부 제공
지난 3월6일 오후 성공일 소방교가 70대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전북 김제시 금산면 주택 화재 현장. 전북소방본부 제공
취재팀이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지난 3월6일 전북 김제 금산면 화재 현장에서 74살 노인을 구조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성공일(당시 30살) 소방교의 유가족을 만나러 전북 전주에 간 이유도 여기 있었습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소방청의 ‘전라북도 김제시 단독주택 화재 순직사고 관련 조사·분석 결과 및 재발방지 대책’ 보고서에서는 성 소방교의 마지막 출동 현장 상황과 원인 분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현장에선 2인1조 활동 원칙 미준수 등 여러 문제가 발견됐지만, ‘격앙된 관계자·주민의 다급한 인명 구조 요청, 진입 강요’도 순직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한 주민은 창문을 깨려고 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 “실컷 소방대원들을 불러놨더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냐”며 욕설을 했다고 합니다. 성 소방교는 애초 주택 현관으로 진입했다가 나왔지만, 이 말을 듣고 왼쪽 거실 출입구를 통해 다시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성 소방교가 진입하고 3분 뒤 화염의 기세가 커지자 동료는 밖에서 “반장님! 어딨어요?” 하고 불렀고, 성 소방교는 “네, 나갈게요”라고 답했지만, 더는 응답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진압된 뒤 성 소방교는 출입문에서 3.1m 떨어진 방에서 몸을 웅크린 채 산화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보고서는 화재 현장에서 군중의 격앙된 말투, 통제되지 않은 위험한 행동이 현장 지휘관과 소방관들의 상황 판단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한겨레와 만난 성 소방교의 아버지는 그가 오랫동안 소방관을 꿈꾸던 청년이었다고 했습니다. 성 소방교는 대학에서부터 소방방재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소방관이 너무 되고 싶어서, 시험을 세 번 떨어지고 네번째 붙은 아이예요. 소방관이 되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기뻐했죠. 체력이 안 받쳐줘서 일에 지장이 갈까 봐 쉬는 날에도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성 소방교가 품어온 8년 동안의 꿈은, 입직하고 채 1년도 안 되어 스러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럼에도 소방서나 같이 출동한 소방관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도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잖아요. 제가 아들이었어도 그 상황에서 불 속으로 들어갔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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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들과 같은 희생이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 소방관들에 대한 격려와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불이 나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탈출할 때, 소방관들은 비로소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시민들이 소방에 협조를 해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구해야 할 분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보고서에는 미국 소방 지휘 시스템의 ‘위험 감수 3단계 기준’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1단계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2단계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조금 감수할 것이다’, 3단계 ‘우리는 이미 잃어버린 생명 혹은 재산을 위해서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이 기준을 강조한 까닭으로 “대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우리 대원들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이 화재진압 때 사용하는 호흡장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소방관들이 화재진압 때 사용하는 호흡장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인 이 기준을, 굳이 2023년 지금 다시 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방관들이 위험의 정도와 관계없이 고통과 부상, 죽음을 감수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구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기에 조금 더 다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그 이후의 치료에 대해 국가가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범진 소방관의 딸 김한나(30)씨는 소방관들이 국가로부터 공무상 요양(공상)을 승인받으려고 하는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 이상의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가성이 아니라 사실은 나라를 위해 고생했다고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아파도 보상과 인정조차 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인생을 바쳐 사람을 구조하고 불을 끄려고 할까요.”

최근 우리는 부쩍 늘어난 자연적, 사회적 재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재난에 앞장설 이들의 발아래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 될 겁니다. 늙고 병든 몸을 추스르며 뒤늦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외면받지 않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0268.html

 

“재난 앞 죽음 감수, 소방관에 희생 강요는 말았으면…”

“근데 왜 저 같은 사람을 취재하세요? 더 아프고 더 열심히 산 소방관들도 많은데….” 파킨슨병에 걸린 33년 경력의 김범진(57) 소방관은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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