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내 할 일은 다 했다! 잠오면 자면 되고. 오른쪽 선거책자는 연출설정 ㅠㅠ
가온이는 솔직하다! 잠오면 자면되고!)
원시 독서 노트 (2003.06.25 17:03)에서.
미국 농촌에서 대안학교 운동을 했던 기독교인 켄 커리 Can Carey 가 쓴 "우리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 Notes to My children: A Simplified Metaphysics 1982" 몇 대목을 봤다. 무슨 학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소박한 크리스쳔이 대안학교를 시골서 하면서 쓴 글이라서, 쉽고 잼있는 대목도 몇개 있다.
요지를 적자면 이렇다.
어른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고 관심을 가진다. 반면에 어린이들은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지금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어린이는 흉내내려고 하지 않는다. (they won't copy) 즉 이 말은, 다른 보통 어른들이 맨날 하는 일상의 관습과 걱정/염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에너지가 흐르는 바로 지금 이 현재에 살고 있다. 어린이는 이 바로 '현재'에 기뻐하고 이 바로 '지금'에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신에 대한 감사의 표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신이 만들어낸 바로 지금과 그 신의 분유물인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 향유하고, 그 안에 살면서 감사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어린이 마음, 이러한 에너지가 흐르는 강물을 지닌 어린이 세계가 사라지게 되는가 ? 켄은 말한다. 어린이들이 하나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에너지 흐름같은 어린이 마음은 '흉내내기'로 화석화되어 버린다. 바로 그 거짓말이란, "그들도 어른처럼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현재, 신이 창조한 바로 이 지금이 아닌,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걱정' '우려' '염려'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들 역시, 그 걱정과 불안 (Angst)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 엄밀하게 말하면 회피일 수도 있다- 남들이 하는대로 '복사, 흉내 copy'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남들이 가니까, 나도 대학가야 하고, 남들이 고시보니까 나도 고시보고, 남들이 유학가니까 나도 따라 나서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 >
켄의 주장은, 그리고 그 철학적/종교적 배경을 감안했을 때, 신이 만들어놓은 현재에 감사하고 바로 지금을 즐겨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생로병사' 그 자체가 인간의 고통의 원인인데, 어떻게 현재를 감사할 수 있겠는가 ?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우선 여러가지 질문과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켄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종교적인 색채를 좀 제거하면, 생각해볼 주제가 추출된다.
내가 주목해서 보는 부분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인생의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어린이는 '철들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어린이들이 부모님들이나 기성세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까지도 어린시절 교육이 우리 삶 전체를 규정한다고 믿기 때문에, '어린이 마음 child spirit' 이야기와 '우리는 흉내내지 않는다 We won't copy'말이 조금더 의미있게 여러가지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한 개인의, 한 사회의 '행복관'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말은 좋게, 인생은 '어떻게 how' 살아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무엇이 되었는가 (what)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염려, 걱정, 우려, 불안'으로, 그것도 소유의 양 (Have)을 늘리기 위해서, 때워진다. 인생의 시간의 길이이자 그 깊이이기도 하다. 그런 시간이 대부분 '때워지는 것'이다. 동기와 과정은 문제삼지 않게 되고, 그 동기와 과정을 즐기는 법은 배우지 못하고, 오로지 '결과'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것이다. 그 결과와 종착역이 다양하기나 하면 좋을텐데, 그 종착지점도 획일화되어 있어서 볼썽 사납고 볼 거리도 많지 않다.
<운동권의 딜레마와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좌파하면 좋지 우파보다. 진보정당하면 좋지 민주당이나 노무현보다.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내가 과거 10년 동안 운동권 문화에서 느낀 술회를 적어라고 하면, 그 인생의 깊이라는 것이 우파의 삶의 문화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고, 구체적인 전장으로 뛰어들면 어쩔 줄 모르고 "흉내 we would love to copy !"내기 시작한다. 난 우리들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나를 포함해서. 이게 내가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내 자신에게 아주 오래된 인생의 주제이기도 하고.
엘리뜨가 되어야 한다. 다른 각도에서 장인정신을 심어야 한다.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거 자칫잘못하면, 고3 병이 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미 제도권 내에서 어떠한 창조적 업적과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다 가지고 있다. 비지니스건, 법조, 회계, 음악, 미술, 교사, 학계건, 예술계건 다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에게는 따라 배울 '텍스트 : 교과서' 혹은 나침반, 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이거나 '흉내 copy' 낸 것들만 주어져 있다. 그래서, 딜레마도 아니고, 진퇴양난에 빠진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과거에 뭐 했네, 그리고 앞으로 뭐 할 것이네, 이런 식으로 과거와 미래만을 이야기하고, '바로 지금' 현재에 대해서, 일의 과정을 즐기지도 못하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염려, 불안 Angst'으로만 가득차서 산다면, 어떻게 타인의 행복과, 대중의 희로애락을 같이 나눌 수 있겠는가 ? 자기 영혼은 썩어가거나 겨우 복사(copy) 하고 있는데 말이다.
과정문화의 결여, 동기와 과정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서로 만끽하고 그 과정에서 쓰이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충실한 검토와 반성이 없이는, 어떠한 진실성이 담긴 정치적 담론이나 대안 역시 그 구체성과 힘이 떨어질 것이다.
"현재/바로 지금 철학: 어린이 마음" 분명히, 사회구조적 내용 없이,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인생관 자체가 가지는 함의는 한번 생각해볼 만한 하다.
<다른 주제들>
1. 어린이 불안을 가중시키는 부모들의 말들 "과거와 미래"로 꽉찬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
2. 80년대 운동권 세대들 자식 교육 ==> 한마디로 '행편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더 나아질 것이 없다. "세련되게 아이들 죽이기"
3. 창조적이면서,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교육의 가능성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