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중동 문제를 깊게 연구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1.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했다고 해서, 이슬람 근본주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Taliban, 빈 라덴의 알_카이다, 지하드 등)는 자동적으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이슬라엘_팔레스타인 전쟁와 영토분쟁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중동 지역에서 평화는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오바마 기자회견 (지난 8월부터 4월까지,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 수행에 대한 찬사)은 미국 자국의 애국주의 고취, 아프가니스탄 침략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정당성을 재 주장하는 것이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제거나, 중동에서 평화정착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참고: 최근 몇 년간, 알 카이다 이론가들 중에서, 아부 무삽 알-수리 Abu Musab al_Suri) 등이 주축이 되어서, 오사마 빈 라덴 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알 카이다 국제 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준비해오고 있다.
(5월 2일 새벽 1시 정도인데요, 미국 와싱턴 D.C 백악관 앞에는, 오사마 빈 라덴 살해를 축하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다. 이 시민들은 왜 한 때, 조지 부시의 친구였던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의 적이 되었는가? 이 물음을 묻지 않는다. 미국 미디어의 힘이다. )
2.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은, 미국 외교의 비-일관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사우디 출신이고, 이슬람 형제애 (the Muslim Brotherhood) 단원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내정간섭하고 군대를 파병한 소련에 저항하기 위해서, 아프간 무장 저항단체 무자히딘 (Mujahideen)을 지원할 당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동맹을 이뤘다.
이러한 오사마 빈 라덴의 공로를 저평가한 사우디 국왕과 미국이 1991년 이라크 침공을 받았을 때, 빈 라덴이 무자히딘의 힘으로 이라크를 몰아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우디 국왕은 빈 라덴의 제의를 거절하고 미군의 원조를 신청했고, 그 이후, 빈 라덴과 미국(사우디 동맹)은 정적이 되었다.
소련의 해체 이후,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해는, 석유시장의 확보와 친-미 정권들(봉건적인 귀족 자본주의국가들)을 연합하고, 이스라엘 정부의 유지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이해관계에 반대되는 세력들을, 2001년 9-11 사건이후, 모두 잠재적/현실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대 테러전쟁을 벌여왔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살해는, 냉엄한 국제정치 질서 유지, 또 군수자본과 석유자본의 이익추구에서 비롯된 갈등의 결과이고, 미국의 중동에서 지배전략의 변화 (과거 냉전시대 소비에트와의 대결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군수자본의 이익, 석유자본의 축적과 시장 확보, 이슬라엘 국가 지원, 석유를 독점하고 있는 친미-봉건왕조의 지지 지원 등) 속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청년, 오사마 빈 라덴이, 소련체제에 저항한 아프가니스탄 무자히딘 무슬림 무장단체 운동을, 파기스탄에서 하다. 미국 CIA는 아프간 무자히딘에게 무기와 돈을 대줬다. )
3. 아프가니스탄 내정이나 갈등을 한국정부가 해결할 수도 없고, 부정부패 정권인 하미드 카르자이 (Hamid Karzai)를 지지할 필요도 없다.
올해 2월 한국정부와 국회는, 한국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결정했다. 한 때 미국 와싱턴 정부의 비도덕적인 따리꾼이자, 전 탈리반 지지자였던 현 하미드 카르자이 (Karzai)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2004년 초임, 2009년 재임했지만, 2009년 대선에서 부정부패 선거로 그 정부 정당성이 이미 국제적으로 결여되었다. 과거 반독재 민주화 운동 경험을 가진 한국이 이런 반민주적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할 명분이 없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내전 (탈레반 소탕과 테러리스트, 알 카이다 소탕이라는 명분하에) 상황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은, 미국 프랑스 등 군수자본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하미드 카르자이와 같은 아프가니스탄 지배엘리뜨들이다.
과거 70년대, 80년대 아프가니스탄 민중 민주당 (the People's Democratic party)이 집권당이던 시절에, 토지 재분배, 여성 권리 신장, 학교 등 보통교육 확산, 아프간 농민 빚 탕감책과 같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들이 펼쳐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개입과 아프간 내전 (1979-1991: 12년간) 이후, 소련의 패퇴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대토지 지주, 지배엘리뜨, 이슬람 근본주의 종교인들이 주인이 되었다. 91년 이후, 지금까지 20년간 아프가니스탄은 반-공산주의적 정치/경제정책들을 펴온 세력들이 지배해오고 있고, 이를 미국과 그 동맹세력이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부정선거를 치른 하미드 카르자이 역시 이러한 아프가니스탄 정치체제와 미국의 전략의 산물이다.
자기나라 국민들의 공익보다는, (*세계 마약생산의 90% = 아프가니스탄 출처임) 이러한 아프가니스탄 마약생산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 (*토지 지주들)의 자금을 받고 있고, 그들의 도움으로 선거에 당선된 하미드 카이자르 대통령을, 한국 군대가 유지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풍자 카툰: 2009년 대통령 선거 제 1차 라운드에서, 부정선거 혐의가 있었던 3377 투표소들 중에서, 210곳 투표소 투표는 모두다 무효처리가 되었을 정도로, 부정부패 선거가 만연했다. 당시 야당 후보 압둘라 Abdullah 는 제 1차 라운드에서 30.59%, 카르자이는 49.67%를 획득했다. 아프가니스탄은, 1차 투표에서 50% 과반수가 없으면, 제 2차 투표를 하게 되어 있다 (결선투표제 실시). 그러나 압둘라는 제 2차 선거도 부정선거가 될 것임을 확신, 아예 선거 자체를 거부해버렸다. 현재 카르자이 대통령)
아프가니스탄 같은 경우는, 세계 마약 생산의 90%를 차지하는데, 그 빈농들은 거기서 일하고, 그 이익은 또 토지지주들이 대부분 차지하고,그 토지 지주들이, 하미드 카이자르와 같은 대통령 세력들 (이들 대다수가 파쉬툰 Pashtun 지역의 이슬람 세력: 동남쪽 지역: 지역 분할 통치, 부족간 대립이 큼)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다. 91년 소련 군대의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내전 중이고, 세계 최대 빈국 중에 하나이고, 이민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4. 한국 정부는, 북 아프리카나 중동 분쟁지역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 등) , 시민 내전 국가에 보낼 것은, 1) 군대가 아니라 2) 한국 민주화 운동의 중요성과 경험들, 그리고 의료품과 굶는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살리는 식량이다.
한국정부나 시민단체들은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학교 건축> <학용품> <의료, 약품>을 보내줘야하고, 군대는 철수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