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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판교 ‘승강기 추락 사고’로 숨진 노동자 박씨.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를 제조만.설치는 박씨와 같은 별도 설치업체.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호.

by 원시 2022. 3. 17.

승강기 설치업체가 받은 고객들의 요구사항 "빨리 빨리".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를 제조만 하고, 설치는 박씨와 같은 별도의 설치업체에 맡긴다.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호로 지목됐다.

 

설 당일 빼고는 모두 현장으로 출근했다는 게 박씨와 단둘이 함께 살았던 20대 직장인 딸 세영씨(가명)의 말이다.

 

 “하루만 더 쉬면 좋겠다. 그럼 기깔나게 일 잘할 수 있는데”라는 딸의 말에 박씨는 “놀면 뭐하니, 나가서 돈 벌어야지. 너는 빨간 날 쉬어도 돈 나오지만 아빠 직업은 쉬면 돈이 안 나와”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떠민 건 “빨리”였다
이혜리 기자입력 : 2022.03.17 06:00 

 


판교 ‘승강기 추락 사고’로 숨진 노동자 박씨의 통화 내역엔…

 

 


경기도 성남 판교제2태크노벨리 신축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인 9일 중대재해기업 사업주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건설노동조합원들이 청와대 앞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작업 독촉에 설연휴에도 현장 나가
설치 시한 물리적으로 빡빡해도
제조회사가 거래 끊을까봐 ‘무리’

시간·돈·갑을 구조 얽히고설켜
결국 노동자 목숨 건 작업에 내몰아

“그럼 내일도 안 되네, 작업이?”


전화 통화에서 한 남성이 묻자 박상훈씨(58·가명)가 승강기 설치를 곧바로 할 수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부품이 잘못돼 있고, 부품업체에 연락해 언제 새 부품을 보내줄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래야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박씨 말에 남성이 혀를 찼다. 

 

박씨는 “(부품이) 금방 들어올 것”이라고 해명하듯 말했다. 박씨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남성의 이름은 ‘요진건설 부장님’이다. 

 

박씨는 통화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열심히, 빨리하고 있는데 너무 자꾸 그러지 마요. 쪼지 마요, 아파. 허허.”


이 통화가 이뤄진 날은 지난달 7일, 박씨는 그다음 날 숨졌다.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신축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을 하다 지상 12층에서 지하 5층으로 승강기와 함께 떨어졌다. 

 

공사의 시공사는 요진건설산업, 요진건설과 승강기 설치공사 계약을 맺은 곳은 현대엘리베이터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를 제조만 하고, 설치는 박씨와 같은 별도의 설치업체에 맡긴다.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호로 지목됐다.


경향신문은 박씨 휴대전화에 담겨 있던 생전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하고 유족 등 주변을 취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27일 시행된 이후 법의 적용 여부나 경영책임자 처벌 수위는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서 왜 노동자가 죽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박씨의 통화 녹음파일엔 그가 당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가 들어 있다. 

 

한쪽에서는 빠른 공사를 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사를 빨리 끝내지 못할까 불안에 시달렸다. 시간과 돈, 갑을 구조가 산재 사망사고에 모두 얽혀 있었다.


박씨가 판교 공사 현장에 들어간 것은 지난 1월19일로 추정된다. 

 

1월20일 박씨는 ‘요진건설 부장’과 통화하면서 작업 진행 상황을 알렸다. 다음날인 금요일엔 다른 일정이 있고, 토요일엔 부품업체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월요일에나 작업 진행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이날은 작업을 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일단 퇴근한다는 박씨에게 요진건설 부장은 “월요일은 좀 늦는데…”라며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요진건설 부장은 한숨을 쉬었고, 박씨는 “하루 사이 해갖고(늦춰져도) 의미 없다” “오늘 작업하고 허리 아파 죽겠다”고 했다.


박씨는 이틀 뒤인 22일 토요일에도 공사 현장에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요진건설 부장과 박씨의 이날 통화에서는 언성이 다소 높아졌다. 승강기 출입구의 알루미늄 테두리(잠) 치수가 맞지 않아 작업을 더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요진건설 부장은 박씨에게 따져물었다.


“그 전의 팀이 잠 치수 다 쟀잖아요.”(요진건설 부장)


“그 팀이 한 것으로 보냈다가 잘못되면 그때는 더 큰일 나요. 나중에 설치했는데 안 맞으면. 그래서 다시 확인을 했고요.”(박씨)


“아니, 엊그저께 그 팀장한테 다 말씀드렸는데 아직 잠 치수가 안 나왔다는 얘기예요?”


“나왔어요. 나왔는데 1층만 높이하고 벽체가 (안 맞더라고요). 어떻게 할 건지 건축차장님에게 물어봐야 돼요.”


“아… 언제 물어본대 그걸 또. (…) 그걸 물어보고 가셔야지. 아이고 참말로.”


“부장님, 왜 이렇게 자꾸 투덜대세요?”


“아니, 지금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요진건설 부장은 “빨리 확인 좀 부탁드린다”고 재차 말했다. 

 

말끝엔 긴 침묵이 이어졌다. 박씨는 판교 공사 때문에 1월29일부터 이어진 설연휴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설 당일 빼고는 모두 현장으로 출근했다는 게 박씨와 단둘이 함께 살았던 20대 직장인 딸 세영씨(가명)의 말이다.

 

 “하루만 더 쉬면 좋겠다. 그럼 기깔나게 일 잘할 수 있는데”라는 딸의 말에 박씨는 “놀면 뭐하니, 나가서 돈 벌어야지. 너는 빨간 날 쉬어도 돈 나오지만 아빠 직업은 쉬면 돈이 안 나와”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박씨는 “현장이 다 문을 안 열면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일을 안 하겠지만 여는 데가 있으니까 가서 일해야지”라고도 말했다.


승강기 설치업체들은 작업을 빨리해달라는 요구를 자주 받는다. 

 

건물 골조가 만들어지면 서둘러 내부 승강기를 설치해야 건물 바깥쪽의 건설용 간이 승강기(호이스트)를 해체하고 마감 작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용 간이 승강기는 임차료가 있어 빨리 없애고 내부 승강기를 이용하는 게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고, 남은 공사도 신속히 마무리할 수 있다.


박씨는 공사 현장에 직접 나가 일을 했지만, 실은 설치업체 대표도 맡고 있었다. 대기업인 승강기 제조회사와 달리 설치업체는 영세하다. 박씨 업체의 노동자 수는 30명대였다. 일감이 없으면 소속 직원들의 월급 주기도 빠듯했고, 대표라고 경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씨 업체의 주된 업무지역인 인천에서 45㎞ 떨어진 판교의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한 배경에도 ‘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공사를 수행하면 설치비 외에 추가금을 주겠다는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한 직원과 나눈 전화 통화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 같은 승강기 제조업체와의 관계에서 을이 되는 설치업체의 현실이 드러난다. 직원은 승강기 설치 시한을 맞추는 게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그렇게 되면 제조회사가 향후 물량을 주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또 설치업체는 승강기 설치를 신속히 마쳐 안전검사를 받지 못하면 검사 비용을 수수료로 물어내야 한다. ‘책임감 있게 가급적 기한을 맞추겠다’ ‘야간까지 일하면 된다’는 직원에게 박씨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노예니? 우리가 로봇도 아니고, 초인도 아닌데 어떻게 하니? 열심히 다 했는데 안 되는 걸 어쩌라고. 시대가, 지금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 걱정 마. 네가 최선을 다하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안 되는 건 나한테 떠밀어. (…) 그렇다고 죽을 정도로 24시간 일할 수는 없잖아.” 이게 그가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의 이야기다.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딸 세영씨는 사고 당일 아침, 새벽배송으로 받은 방한화를 출근하던 박씨에게 건넨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 길로 나간 박씨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세영씨에게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이다. “올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는데, 벌써 몇 번째라고 셀 수도 없는 사고들이 일어났어요. 그냥 한 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다른 법안을 내놓아도 결국은 계속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더 이상 지금 같은 사고로 사상자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를 둘러싸고 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요진건설 측은 ‘공정 관리’ 차원에서 회사 소속 부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작업자인 줄 알았던 박씨와 통화하며 작업 상황을 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요진건설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승강기 납품을 받기로 약정한 일정이 2월 말까지로, (박씨가 공사에 들어간 1월 말로부터) 충분한 기한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공사를 독촉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조사를 받는 중이라며 자세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한 달간 산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2명이다. 현대엘리베이터 현장에서만 2019년 이후 8건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서류상만 ‘공동수급’ 승강기 제조·설치 실상은 원·하청 구조
이혜리 기자입력 : 2022.03.17 06:00

 


노동계 “불법 하도급으로 안전책임 회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벨리 신축 공사현장에서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인 지난달 9일 중대재해기업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달 8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신축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승강기 추락 사고로 노동자 최현석씨(44·가명)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아내 A씨는 남편이 아직도 일터에서 퇴근해 집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했다. 

 

죽음이 아직도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산재 보상으로 돈을 얼마나 준다한들, 오히려 제가 돈을 드릴 테니까 남편을 살려달라고 하고 싶다. 그냥 살려만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공사가) 한 달, 보름이 밀려도 납품기한은 정상적으로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남편은 종종 밤을 새워 일하고 새벽에 들어왔다”고도 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가 발생한 구조적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승강기 설치 공사는 재하도급이 허용되지 않아 승강기 제품 제조 회사와 별도의 설치업체의 공동수급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판교 공사도 현대엘리베이터가 승강기를 제조하고 설치는 협력업체가 하는 공동수급 방식이었는데, 고인들은 설치업체 소속이었다.

 


승강기 업계에선 ‘공동수급’ 방식은 말뿐이고, 원·하청으로 일하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왔다. 공동수급이라면 공동수급체 안의 각 업체들이 대등한 관계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약을 따내고 설치업체가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받는 등 원·하청 구조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규모부터가 제조회사는 대기업이고 설치업체는 노동자 수가 수십명 수준의 소규모다.

 


공사 현장에서 설치업체 노동자들은 특정 업체 소속보다는 ‘현대엘리베이터 사람’으로 통칭된다고 한다. 이들은 현장에서 작성하는 안전교육 등의 명부에 소속 업체를 현대엘리베이터라고 기재하고,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지급한 안전모와 작업복을 착용한다고 했다. 

 

또 승강기 제조회사는 현장 위치, 설계 등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공유해 설치업체에 사실상 업무 지시를 한다. 유족 측은 단체대화방을 통해 현대엘리베이터의 인력 수급 요청이 공유되고 설치업체들이 몇 명을 어디로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도 하도급으로 볼 수 있는 증거라고 했다. 때로 제조회사의 인력 수급 요청은 갑작스럽게 이뤄지기도 한다.


물량과 도급비 결정에서 설치업체들은 자신들이 ‘을’이라고 주장한다. 설치업체들은 지난해 8월 현대엘리베이터에 도급비 인상을 요구하며 단체로 파업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도급비가 일부 인상됐지만 설치업체들의 당초 요구안에는 미치지 못했다. 승강기 업계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안전에 신경을 써야 되기 때문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해도 안전관리비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며 “말은 공동수급이지만 제조사가 건설사로부터 돈을 받고 설치업체에는 일부만 넘겨주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25층짜리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1대 설치해서는 직원들 월급을 줄 수가 없다”며 “공사 기간은 맞춰야 되는데 주 52시간은 지켜야 되고, 설치비는 너무 적어 힘들다”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공동수급 방식이 승강기 제조회사가 안전관리 책임도 회피하게 만든다고 지적해왔다. 이번 판교 공사의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사고 발생 이후에야 ‘공동수급 약정서’ 날인을 설치업체에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지난달 28일 기자 질문에 “당사와 설치전문업체는 대등한 계약에 따른 공동수급 관계로 하도급 관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안전모와 작업복 지급 등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협력 프로그램 운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불법 하도급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유족을 대리하는 조인선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설치업체들이 근무 환경이나 처우, 계약 단가에서 얼마를 받게 되는지 등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단체행동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대등한 계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공동수급 방식의 승강기 설치 공사가 적법하게 운영되는지,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포함해 현대엘리베이터를 기획감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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