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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_언어_languages/English

perseverance 퍼씨비런스. 인내와 인고 (忍苦)

by 원시 2022. 2. 11.

 

perseverance 
a determined attitude that makes you continue trying to achieve something difficult.

 

perseverance-persistence in doing something despite difficulty or delay in achieving success. "his perseverance with the technique illustrates his single-mindedness"

 

perseverance-the quality that allows someone to continue trying to do something even though it is difficult His perseverance was rewarded: after many rejections, he finally found a job. Perseverance is required to perfect just about any skill.

 

jan.13.2022. 김정진. 
김정진
  
1.
필자의 페친들 중 상당수는 20여년전 민주노동당 활동할 때 인연을 맺은 분들이다. 작년에 당시 동지들이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으로써 진보적 학자로써 한 길을 가셨던 장상환 교수님을 모시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가졌었는데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장상환 교수님은 정년 퇴임 후 진주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하시는데 며칠 전에도 진주지역 버스 공영화를 위한 조례제정을 위한 서명을 거리에서 직접 받으셨다고 한다. 아마 1970년대 후반 크리스찬 아카데미 활동 이래로 결코 변하지 않는 신념과 활동력을 보여주시고 계신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아는 정말 유일한 청년 아니신가 하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에 한마디 보태기 위해서다. 나는 여전히 누가 이 번 대선에서 당선되는가 여부에 대해서 관전자 이상의 관심이 없다. 누가 되도 바뀔 것이 많지 않고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인 선거라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일 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트럼프 1과 트럼프 2가 싸우는 이 지긋지긋한 양당제의 문제다. 제발 이 구조와 이 구조로 비롯된 관행의 문제를 인간의 도덕(신념, 지조)이나 자질로 환원하지 말기를 바란다.
2.
내 옛 동지들의 정치적 행보가 웅변적으로 양당제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나를 포함해서 정당활동을 떠난 이들도 많고(오히려 정당활동을 떠나서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분들도 꽤 많다.) 계속 정치적 고관여층으로 남아 있는 분들도 많다. 내 옛 동지들은 페북 글만 읽어보아도 지지 또는 몸 담고 있는 곳이 거의 모든 정당에 흩어져 있다. 허경영당과 조원진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원내외 정당에 민주노동당 출신이 분포해있다. 당시 민주노동당 구성원들이 신념이 약하거나 원칙이 없거나 이해관계로 이합집산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민주노동당 구성원들은 무신념, 무원칙, 이해관계와 가장 거리가 먼 집단이었다.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라고 버젓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의 국공유화(토지 공개념이 아니다!)까지 명시하였다. (사실 이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라는 말이 사회적 반감이 많아 그 대체로써 사용되던 말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혁명’이라는 말 대신 ‘변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국회의원이 될 생각도 없이 자기 돈 들여서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만한다. 지역구에 낙선될지 뻔히 알면서 비례대표를 통한 진보정당 원내진출을 위해 자기 돈 들여 출마하고 선거 끝나면 빚 갚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도 누구도 이런 희생을 자신의 공이라고 내세우지 않았다. 
당시 노사모의 자발성도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카리스마적 인물에 대한 충성과 추상적인 정치조직에 대한 충성은 사실 차원이 다른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정파적 대립이 꽤 심하기는 했지만 다른 정당이나 세력보다는 훨씬 사고의 통일성도 높았다고 보아야 한다.  
20여년이 지나 나의 옛 동지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이렇게 다양해져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정치성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다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결국 양당제의 소용돌이에서 제3세력은 정신적, 육체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여년간 당선되지도 않을 지역구 선거에 6-7회 나오면서 여전히 진보정당 블록에서 버티고 있는 소수의 사람도 있고, 그러다가 다른 당으로 옮겨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한 자리를 꿰 찬 사람도 있고, 당연히 그러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얼마 전 윤모씨를 지지했다가 맡은 직에서 사퇴한 한 젊은 정치인의 모습에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인성이 문제가 아니라 5년을 했건, 20년을 했건 양당제의 소용돌이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세력이 한국에서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신과 지조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유의미한 정치 활동은 불가능하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윤석열씨가 국힘의 후보가 된 것도 아마 이런 양당제의 소용돌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석열씨가 유럽인이었다면 아마 극우자유주의 정당을 창당하여 1-2당에 근접하는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3.
한국 정당체제의 기원에 관해서 박사논문을 쓴 서복경 박사에 의하면 한국 양당제는 1950년대 후반 정도에 성립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거의 모든 제도가 양당제에 맞추어 완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과반수 득표를 할 가능성이 매우 큰 미국의 희안한 선거인단 투표를 제외하고 대통령제를 택하는 나라들은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 때문에 결선투표제를 두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직선제 투표가 회복된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1노 3김의 대립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선투표제는 도입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여론조사에 의한 기이한 단일화가 거의 관행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이 또한 양당제의 결과다. 
대한민국이 정당에 경상보조금을 주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일 것이다. 그것도 절반은 양당이 제도적으로 나누어 먹는다. (원내교섭단체가 n분의 1을 하는데, 양당 외에 원내교섭단체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또한 정당이 공직후보를 ‘공천’하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일 것이다. 최소한 다른나라는 당원이 뽑던 아니면 open primary를 하던 사람들이 ‘선출’하는데 양당은 복잡한 당헌, 당규를 통해서 중앙당에서 공천을 한다. 그러니, ‘옥새들고 나르샤’ 하는 사태가 생기며 특히 당선가능지역에서 정치 지망생들은 경선을 보장해 달라고 1인 시위를 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양당제는 세계 최악의 양당제다.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도의 경로 의존성 같은 것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아래로부터의 인물이 성장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당 지도부에 의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비교적 출세하였지만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발탁되어 정치인으로 충원된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운 좋게 다선하였다고 하여서 사회적으로 정당성이 있지도 않다. 그래서 국민들은 다선의원들의 물갈이를 항상 원한다. 물론 정당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성장한 드문 예가 있기는 하다. 민주당 계열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있고, 국힘 계열에서는 이준석 대표 같은 예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분들 또한 처음 정치 시작은 YS와 박근혜의 발탁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물론 그 이후의 행보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랐지만 말이다.  
양당의 실제 정책과 공약은 서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냥 양당의 정책은 대기업 위주 경제성장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국힘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부총리가 쓴 정책이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다. 실제로 최경환 부총리는 임금소득, 배당소득, 사업소득 등을 늘리기 위해 일정한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세법을 개정하였다. 당시 경제정책에 관한 티브이 토론에 나온 패널 중의 한 명이 당시 교수였던 김상조씨였는데 최경환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서 학점으로 치면 B학점 정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민주당은 테러방지법 만들면 안 된다고 밤새 필리버스터를 하고 정권을 잡은 후에는 테러방지법을 폐지하기는커녕 방역에 협력 안하는 것을 테러에 포함시키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코메디인 것이지 정상적인 정책경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4.
단지 차이가 나는 것은 인맥 정도다. 국힘계열과 민주당 계열 인사들은 의외로 서로 사회적 연결망이 별로 없다. 관찰해 보면 인력이 충원되는 통로도 다르고 서로 교류도 많지 않다. 유일한 예외가 586세대들의 경우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 중에 양당에서 공통적으로 충원을 해서 접점이 있는 정도인데 이는 예외적인 현상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만드는 쟁점은 친일파/주사파처럼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현재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아니면 지나치게 지엽말단 적인 것들만 쟁점이 되고 중요한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김낙년 교수가 토마 피케티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자본을 국민소득을 나눈 피케티 지수를 한국에서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그 수치가 선진국은 500-600%인데 한국은 이미 2013년도 800%가 넘고, 민주당 한 의원실에서 한국은행 자료를 받아 계산한 바에 의하면 2019년도에 860%라는 것이다. 프랑스혁명 직전에 700%대였다고 하니 한국은 이런 기준으로 하면 혁명 전야인데도 이런 불평등 문제가 대선에서는 쟁점조차 되고 있지 않다.  
5.
미국과 영국 또한 대표적인 양당제 국가이다. 하지만 미국은 연방제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연방제를 기준으로 분권이 되어 있는 나라다. 미국의 정당은 중앙당이 없는 매우 특수한 형태고 당대표도 없다. 하원 원내대표가 사실 상 당대표 역할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유럽이나 한국과 같은 당대표도 없다. 심지어 당대회도 4년에 1번 그것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때 하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 느슨한 정당제도 이기 때문에 버니샌더스는 무소속임에도 민주당 경선에 출마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은 하나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 민주적 절차가 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노동당 내부에서 토니 블레어 일파는 제레미 코빈을 눈엣 가시처럼 생각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낙마시키려고 했지만 제레비 코빈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주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하원의원신분은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국힘에서 친박들이 유승민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천을 하지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6.
누군가를 욕하는 것도 좋고 화풀이를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최악의 양당제 구조를 바꾸지 않고, 정치가 사람들의 필요에 맞는 제도 개선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서 이 번 선거는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2027년 선거, 2032년 선거는 또 어찌 할 것인가. 트럼프 III과 트럼프 IV,  트럼프 V와 트럼프 VI이 싸우는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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