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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연동형_비례대표제도

한겨레 21. ‘위성정당’, 부끄러움이 필요합니다

by 원시 2024. 3. 25.

 

 

언론보도.

 

 

표지이야기 1506호
‘위성정당’, 부끄러움이 필요합니다


이재호기자구독
등록 2024-03-24 13:00 수정 2024-03-26 07:0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3월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3월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위성정당에 준하는 ‘준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2024년 2월5일 광주광역시 북구 5·18민주묘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앞으로 만들 비례연합정당이 위성정당이 될 것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리고 3월3일 더불어민주연합을 창당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을 지지하거나 연합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정치인들은 입을 모아 “위성정당이 아니고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기 위한 ‘연합’”이라고 강조한다.

국내 논문 등에서 위성정당의 정의를 찾아보면, ‘다당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명목상의 정당’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민주연합을 잘 설명하는 표현이다. 국민은 2020년 치른 제21대 총선에 이어 다시 한번 이런 ‘명목상의 정당’에 투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제21대 국회가 정치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제21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2023년 5월 500명의 시민참여단을 모집해 선거제도 개선과 관련한 숙의토론과 공론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처음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말에 27%만이 ‘비례대표 의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답했지만, 숙의토론을 거친 뒤 진행한 조사에선 69.5%가 ‘비례대표 의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정개특위는 선거제도 개선의 목표로 △지방소멸 위기 대응(함께 잘 사는 지속가능한 국회) △지역주의 정당 구도 완화(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국회) △선거의 비례성과 대표성 확보(국민을 닮은 다당제 국회) △수용 가능한 대안 마련(국민이 공감하는 신뢰받는 국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선거에 임박하자 거대 양당은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고 말았다. 위성정당이라기보다는 ‘위선’정당이 된 것이다. 도덕심리학에서는 위선을 ‘스스로 표현한 도덕적 규칙과 원칙을 따르는 데 실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위선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이재호 기자 ph@hani.co.kr

 

 

표지이야기 1506호
그들은 왜 ‘위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임태훈의 더불어민주연합행, 용혜인의 두 번째 위성정당행, 류호정·배복주의 신당행
“정치 공간·현실의 한계 느낀” 시민사회 운동가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손고운기자구독
등록 2024-03-22 13:21 수정 2024-03-24 13:52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2024년 3월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2024년 3월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진보 진영은 여러 상흔을 안게 됐다. 하나는 더불어민주당이 창당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일부 진보정당이 참여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의 정당성과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선거를 앞두고 국회로 달려가는 행태가 맞느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또 하나는, 진보정당은 왜 3지대에서 거대 양당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가다. <한겨레21>은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했다가 공천에서 배제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의 대변인, 진보정당에서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등으로 당적을 옮긴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과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를 짚어봤다.

선거를 위한 일시적 전선일 뿐
임태훈 전 소장은 오랜 시민사회 운동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가 법적 권리로 인정받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군 내부 갑질 등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장병 인권 문제, 군 내부 부조리 등을 꾸준히 고발했다. 하지만 임 전 소장은 시민사회 몫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에 추천됐다가 양심적 병역거부 이력이 ‘병역 기피’로 낙인찍힌 채 퇴출됐다. 이는 더불어민주연합이 ‘시민사회 운동의 정치 반영’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선거를 위한 일시적 전선 형성’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에 선 임 전 소장은 어떤 뜻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했을까.

“위성정당 참여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고, 그것 역시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기존엔 시민사회가 가진 정치 플랫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플랫폼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 정당정치·계파정치에 줄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연합의 의미는 그래도 투표 형식의 선출 방식을 통해 시민사회 운동가가 제도권 정치로 나아갈 중간 플랫폼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좌절됐지만 필요한 시도였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 전 소장은 2024년 3월18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사회 운동이 제도권 정치로 나아가는 데 현실적인 벽이 존재하고, 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가 필요했던 점이 위성정당 참여에 대한 비판보다 우선했다는 설명이다.

진보당도 서로 다른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연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를 설명했다. “진보당은 야권 총단결로 ‘거부권 정권 심판’ ‘진보적 국회’를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더불어민주연합이란 건 특정 시기에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일시적 연합이다. 사실은 다당제가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정치 활동 방식이라고 본다.” 정혜규 진보당 대변인이 3월19일 이렇게 말했다.

새진보연합은 ‘민주당을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위성정당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 11월부터 꾸준히 ‘22대 국회에서 개혁과제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고 해왔다. 2024년 1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느냐 혹은 병립형으로 퇴행하느냐’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키기 위해 비례연합정당을 함께 구성하자. 그리고 비례연합정당은 공동 정책을 만들어 22대 국회에서 비례연합정당에 함께한 정당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국민에게 보여드리자’라고 투명하게 제안했다. 연합을 통해 진보정당들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더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하는 길이 열린다면, 우리는 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일관된 입장이다.” 신지혜 새진보연합 대변인은 3월21일 이렇게 말했다.

2024년 1월20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 류호정 전 의원이 오른쪽 끝에 서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월20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 류호정 전 의원이 오른쪽 끝에 서 있다. 연합뉴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정치에 있다는 시민들
이런 해명에도 민주당 위성정당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건,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개별 주체가 ‘정치인 혹은 정당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보다 국회 입성을 우선시한 것 아니었느냐’는 시각 때문이다.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 비판받는 지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4년 전에 이어 또다시 민주당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가 된 용혜인 새진보연합 의원, 민주노총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을 받았지만 개혁신당이라는 보수정당으로 가서 경기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 출마한 류호정 전 의원, 개혁신당 내분의 중심에 섰다가 결국 새로운미래에서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비례대표 후보 13번을 배정받은 장애인 인권운동가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등이 그런 경우다.

정의당 공동대표를 지낸 나경채 녹색정의당 양경규 의원 보좌관은 이들에 대해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류호정 전 의원이 표방한 페미니즘 정치가 과연 개혁신당에서 실현 가능할까요? 배복주 전 부대표가 해온 장애운동·여성운동이 새로운미래에서 그 가치를 확산할 수 있을까요? 차별금지법에 대한 민주당의 일관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판단한 임태훈 전 소장의 위성정당 참여는 안타깝고, 중도층 표심을 의식해 기본소득 공약을 사실상 지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기본소득당(현 새진보연합) 대표(용혜인)는 자신을 배반하는 정치를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이 된 이들은 현실 정치의 자장 안에서 오랫동안 장벽에 막혀왔음을 토로했다. 임태훈 전 소장은 “군인권센터는 시민단체 가운데 그나마 모금이 되는 편이었지만, 다른 단체들은 후원금을 모은다는 게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은 ‘시민사회의 이런 활동을 지지해달라’고 하는 편보다 ‘정치인 누구를 후원해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후원이 잘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정치에 있다고 보고 시민들이 거기에 돈을 낸다”고 말했다.

배복주 후보도 이렇게 말했다. “시민사회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방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당성이) 많이 훼손된 상황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이후 시민사회 전체가 크게 흔들려 내상이 컸습니다. ‘위성정당 참여가 정당한가’만 놓고 보면 부적절해 보이지만, 시민사회로선 정치적 공간이 없습니다.”

 

새진보연합 용혜인 의원이 2024년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정치의 새판을 모색하는 정당 개혁 대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용 의원은 이번에도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연합뉴스
새진보연합 용혜인 의원이 2024년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정치의 새판을 모색하는 정당 개혁 대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용 의원은 이번에도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연합뉴스


제3지대 정당의 한계
실제로 3월15일 발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2023년 사회통합실태조사’도 임 전 소장과 배 후보의 주장을 방증한다. 시민단체에 대한 기관 신뢰도는 ‘믿지 않는다’는 쪽이 56.4%, ‘믿는다’는 쪽이 43.6%로, 신뢰보다 불신이 13%포인트가량 많았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는 국회에 대한 신뢰(24.6%)보단 높지만 중앙정부 부처에 대한 신뢰(53.8%), 대기업에 대한 신뢰(54.5%)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정치적 공간이 없다고 느낀 건 이제 갓 정치인으로 발을 디딘 시민사회 운동가뿐만 아니라 이미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린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정의당에 있었던 류호정 전 의원과 배복주 후보는 ‘정의당이 제3지대로서의 무게를 갖지 못하던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한계를 느껴왔음’을 이야기했다. “정의당이 ‘양당 체제를 극복하자’고 해왔는데, 선거철만 되면 ‘민주당과의 연합’ 얘기가 나온다면 그게 무슨 양당 체제 극복이고 정의당의 당론인가 싶었습니다. 민주당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정당이라면 제3지대 독립정당이 아니라는 생각이었고, ‘개혁신당’ 이름이 정해진 것도 없을 당시 제3지대에서 일단 양당 체제를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야 한다고 봤습니다. 양당에 의탁해서 권력을 얻으면 결국 양당의 허락을 받아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고 그 과정에서 양당의 극단적 주장에 편승해 또 같이 싸워야 하는 게 정치 현실입니다.” 류호정 전 의원이 말했다.

“정의당에 있을 때 가장 답답했던 건 ‘대중과 만나는 접점’, 유연함의 문제였습니다. ‘시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인데 그 부분에서 외로웠습니다. 정치인은 희망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희망을 만드는 데 한계를 느낀 겁니다. 진보정당으로서, 제3지대로서 그동안 정의당의 위치보다 좀더 대중적인 제3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복주 후보의 설명이다.

결국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고, ‘위성정당 논란’으로 진보 진영 내부는 분열했다. 시민사회 운동을 연구해온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되려는 시민사회 활동가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으로 보낼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 제대로 정치에 나아갈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민사회 활동가가 정치인이 되는 건 당연히 필요합니다. 사회문제 현장에서 토론하고 합의하고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법을 바꿔 변화를 만들겠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연합이 그런 시민사회 운동의 정치 반영을 진정성 있게 생각해 만들어졌나요? 그렇게 보기엔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형성 과정이 너무 짧았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으로 나갈 충분한 시간 있어야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정치학)도 시민사회 활동가의 정치 참여는 비판할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사회 활동가에서 정치인이 되려는 이들에 대한 비판은 (‘정치는 썩은 것’이라는 식의) 정치혐오에 기반한 생각”이라며 “시민사회 운동도 ‘정치적 공간’이 있어야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그냥 국회의원을 바꾸면, 권력을 동원하면 사회가 바뀌리라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군인 인권, 장애인 인권, 이주노동 등 사회 이슈를 글로 배운 게 아니라 사회 현장에서 토론하고 설득하고 합의하고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지금 국회엔 필요합니다.” 공석기 교수의 말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진보가치’, 양당체제 알리바이가 되다

더불어민주연합 국민후보 4명 중 3명 거부하며 진보적 가치 훼손
‘위성정당’발 시민사회, 노동계, 진보정당 분열 시나리오
등록 2024-03-24 13:01 수정 2024-03-25 03:0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2024년 3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진보당 윤희숙 대표,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백승아 공동대표, 새진보연합 용혜인 상임대표.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추진하는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심판과 정치개혁을 위해서 불가피한 전술적 연합이라고 주장하는데, 소수정당의 의석을 민주당이 뺏는 알리바이가 될 연합을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먼저 제안한 상황이다. 밖에 있는 소수정당들은 언제나 의석을 뺏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2024년 3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위성정당 지지 비판과 체제전환 정치를 위한 시민사회 및 노동계 긴급 토론회’에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한 말이다. 그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조직위원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체제전환운동은 무엇이고,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왜 4·10 총선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긴급토론회를 열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하는 위성정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걸까. 특히 거대 양당 가운데 하나인 더불어민주당과 소수정당인 새진보연합과 진보당, 그리고 시민사회가 3월3일 창당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어떤 문제를 가졌다고 비판하는 걸까.

 

 

병역거부·국가보안법 등 이유로 탈락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토론회 하루 전에 연출됐다. 더불어민주연합은 3월13일 밤 시민사회 대표자를 자처하는 ‘정치개혁과 연합정치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연합정치시민회의)가 추천한 비례대표 후보인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공천에서 일방적으로 탈락시켰다. 탈락 이유는 “임 전 소장의 공천 심사를 진행한 결과, 부적격 사유인 ‘병역 기피’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임 전 소장은 2004년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 신체검사 등에 저항해 병역을 거부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인데 이를 ‘병역 기피’로 낙인찍은 것이다. 당내에서는 성소수자인 임 전 소장을 불편해하는 종교계 입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임 전 소장을 비례대표로 추천했던 연합정치시민회의 산하 ‘국민후보 추천 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공천 부적격) 사유로 삼는 것은 국제사회의 기준에도, 헌법 판례에도,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다”며 탈락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앞서 3월11일에도 심사위가 비례대표 1번 후보로 추천한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에 대해 한-미 연합훈련 반대 시위를 벌인 ‘겨레하나’에서 활동한 이력을 문제 삼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여야 한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전 위원은 3월12일 자진 사퇴했다. 보수 진영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시위 경력을 문제 삼았던 비례대표 2번 후보 정영이 전국농민회총연맹 구례군 농민회장도 후보 자리를 내려놨다.

 

 

이뿐만 아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진보당 몫 1번 후보로 추천됐던 장진숙 진보당 공동대표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 경력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문제 삼기도 했다. 그러면서 진보당은 1번 후보를 정혜경 전 진보당 경남도당 부위원장으로 교체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의 이런 행태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한겨레21>에 “대체복무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민주당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던 임태훈 전 소장을 ‘병역 기피자’로 몰아 탈락시킨 일은 충격적”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했던 의원들이 소속된 민주당이 진보당 장진숙 비례대표 후보를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시킨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동플랫폼은 민주당 종속정당으로
 
 

모든 문제는 2024년 1월30일 시작됐다. 연합정치시민회의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성정당과 연합정당을 싸잡아 비판하지 말고 구분해야 한다.

 

비례후보 추천을 위한 공동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개혁진보연합’을 만들자고 촉구했다. 연합정치시민회의에 이름을 올린 박석운(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조성우(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송경용(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회연대위원장·신부), 송성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진영종(참여연대 공동대표·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등은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연동형 선거제도 유지를 위한 정치개혁연합과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한 민주개혁진보대연합을 구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아직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조속한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살피던 중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명분을 제공했고, 일주일 뒤인 2월5일 이재명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른 야당과 공동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며 “위성정당에 준하는 ‘준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네 차례에 걸쳐 사과하면서도 “(국민의힘과)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상황은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우선 이재명 대표가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내건 공약인 ‘위성정당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뒤집고 위성정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비례후보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독선적인 태도는, 이 대표가 사과하면서 제시한 ‘통합형 비례정당’ 약속과도 어긋난다.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당명부터 시민사회와 소수정당들의 민주당 종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근본적으로는 더불어민주연합의 존재 자체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시민사회와 노동계, 진보정당 등 진보 진영의 세 축을 모조리 흔들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시민사회 대표성 구축하지 못한 ‘연합정치시민회의’
 
 

우선 연합정치시민회의가 시민사회를 대표하기 위한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데서 시민사회의 문제가 시작한다. 일부 시민사회 원로가 주축이 된 연합정치시민회의가 마치 시민사회 전부를 대표하는 것처럼 나섰다. 송경용·송성영·진영종은 연합정치시민회의에 이름을 올리면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라는 소속과 직함을 사용했으나 연대회의 내부에선 “민주당의 위성정당 참여를 합의한 적이 없다”는 반발이 나왔다.

 

 

연대회의 운영위원들은 2월22일 내부 회의에서 연합정치시민회의의 결정이 연대회의 전체의 입장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연합정치시민회의에 이름을 올린 공동대표자들은 이튿날 “연대회의 직함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연합정치시민회의 활동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이미 언론과 정당, 국민은 연합정치시민회의가 시민사회 대표로 나서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합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후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추천은 박석운·조성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아무도 연합정치시민회의에 시민사회 대표성을 부여한 적이 없는데, 그들이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만이고 왜곡”이라며 “위성정당 참여와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우리 시민사회 구성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만든 문화와 정신이 훼손된 점이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위한 공동플랫폼 역시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아 비판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독선적인 공천에 시민사회가 내세웠던 진보적 가치마저 흔들리면서 무엇을 위한 위성정당 참여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시민사회 활동가가 일부의 비판을 뚫고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섰는데, 되레 시민사회 일부 원로의 원칙 없는 행동으로 시민사회의 외연이 위축되리라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시민사회가 단순히 위성정당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위성정당의 당위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부조리에 가담했다”며 “빈곤사회연대는 노점상과 같이 민주당 정부나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아래 탄압받던 이도 많은데 연대회의가 민주당과 연합하는 현실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2024년 3월1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이 대의원대회 성원 보고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스스로 정한 총선 방침 뒤집은 민주노총 지도부
 
 

민주당 위성정당 논란은 노동계에도 균열을 냈다. 민주노총은 2023년 9월 대의원대회에서 총선 방침을 정했다. 통상적으로 총선 방침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했는데, 격론 끝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대의원대회로 넘겼다.

 

 

민주노총은 총선 방침에서 “총선투쟁은 진보정치 세력의 상호존중과 단결을 통해 친자본 보수 양당 체제를 극복하고, 노동자 민중의 신뢰와 지지에 기반해 대안정치 세력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민주노총은 보수 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해 친자본 보수 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정했다. 진보정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과 연합정당 건설에서부터 정책연대와 후보단일화 선거운동까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긴 결정이었다.

 

 

그러나 진보당이 위성정당에 들어가면서 내부 갈등이 폭발했다.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은 2월22일 정기대의원회의를 열어 ‘제22대 총선에서 보수정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만든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노총도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도록 요구한다’고 결의했다. 이어 3월6일에는 민주노총 산하 최대 규모 산별노조인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가 중앙집행위원 회의를 열고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결정했다.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노동개혁 입법을 하려면 보수정당(민주당)과의 연대가 필수적이지 않으냐’는 것이 민주노총 집행부의 논리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오랜 입법 투쟁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강력한 대중투쟁과 파업 없이 보수정당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노동 입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3월18일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두 개의 산별노조가 요구한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정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산하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손덕헌 부위원장이 “연합정당 건설, 후보 단일화 등 총선에서 보수정당과 연대·연합하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내용의 총선 방침 수정안을 냈지만, 노조원들이 회의장을 떠나면서 결정을 위한 재적인원 부족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가 끝난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가 진보당 친화적이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노총 내부에선 독자적인 정치세력이라는 민주노총의 목표를 스스로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실장은 “민주노총 집행부가 보수 양당의 헤게모니 안으로 노조원들을 밀어넣고 있는데,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를 위해 공조직(노조)을 이용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민주노총 지도부가 더불어민주연합 위성정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조의 자원과 인력을 동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갈등 상황이 봉합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산별-지역 노조가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민주노총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악에 맞서 힘을 모아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지만 민주노총은 3월 중순이 넘도록 2024년 예산안과 사업계획도 승인하지 못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후보(서울 노원갑)와 김성환 후보(노원을), 진보당 권민경 후보(노원갑)와 홍기웅 후보(노원을)가 2024년 3월1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정당 정체성 흔들리게 된 진보당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한 진보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민주연합 합류 뒤 진보당이 다른 진보정당인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과의 신뢰 관계마저 훼손하는 일까지 벌이면서 생긴 위기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은 더불어민주연합 창당 전인 2월2일 울산 동구 지역구의 ‘진보 단일 후보’로 노동당 이장우 후보를 선출했다. 하지만 진보당은 더불어민주연합 창당 뒤인 3월12일 돌연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과 진보당의 울산 지역구 출마 후보 6명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 전 지역구 단일화”를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진보당은 진보 단일 후보인 이장우 노동당 후보가 아니라 김태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제주시을 지역구에도 돌봄노동자 출신인 녹색정의당 강순아 후보가 출마했지만, 진보당은 김한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했다.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은 <한겨레21>에 “진보당이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민주당과 전당적인 차원에서 지지하고 연합하고 있는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팔아먹는 것”이라며 “민주노총이 진보당을 진보정당으로 규정하지 않는 결정을 하면 장기적으로 진보당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보당은 이런 비판에 대해 더불어민주연합은 위성정당이 아니고 ‘비례연합정당’이며 선거에서 합종연횡은 늘 있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정혜규 진보당 대변인은 “진보정치연합을 통해 야권의 연대연합을 견인하려 했지만 정의당과 플랫폼에 대한 입장차로 합의하지 못했고, 시민사회의 요청으로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것”이라며 “비례연합정당 제안은 민주당이 아니라 연합정치시민회의가 한 것으로, 진보당은 의회에 들어가서 불평등 해결과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진보당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진보정치 전문가인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은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현 상황의 본질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기본원칙을 위배하는 정치행위, 위성정당임이 틀림없다”며 “진보정당 운동의 목표는 보수정당과 자유주의정당이 독점해온 정치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었고, 비례연합정당 참여는 이런 목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게다가 진보당은 지역구에서 의석수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고 더불어민주연합에 비례대표 후보를 3명 공천했지만 조국혁신당의 급부상으로 목표 달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엠브레인리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3월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001명에게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인가'란 질문의 응답에 국민의미래 27%, 조국혁신당 19%, 더불어민주연합 16% 순으로 조사됐다. 이런 지지율이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더불어민주연합은 10석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5번(정혜경), 11번(전종덕), 15번(손솔) 후보를 공천한 진보당이 3석을 확보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다.

 

 

 

2024년 3월1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위성정당 지지 비판과 체제전환 정치를 위한 시민사회 및 노동계 긴급토론회’에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윤석열’과 ‘반윤석열’이라는 구호를 넘어서
 
 
 

이렇게 시민사회와 노동계, 진보정당 등이 모조리 뿌리째 흔들리면서 이번 총선 이후 진보 진영 전체가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의 한 전직 간부는 “양당 중심의 정치체제가 강화하면서 제3세력의 토대가 지워졌고,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의회에 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앞으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도 있는데 그때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의 정치 참여를 근본부터 재평가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지난 총선 때도 위성정당에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비례대표 후보가 되고 국회의원이 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사실상 민주당의 들러리에 그쳤다”며 “지금이라도 시민사회가 국회의원 후보를 내고 의회에 입성한 것이 정치나 운동의 관점에서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냉정하게 평가해보자”고 제안했다.

 

 

두 차례나 위성정당을 낳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를 다시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에서 보듯 민주적 절차를 위배하고 불투명하게 후보를 정한다면 국민 입장에선 지역구에서 직접 후보를 뽑는 것만 못할 수 있어 비례대표제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며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되 각 정당이 민주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에서는 거대 보수 양당의 영향력과 ‘윤석열’과 ‘반윤석열’이라는 구호에 갇힌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체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자택일의 정치체제에서 집권당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전세사기로 대두된 주거위기, 과도한 경쟁으로 청소년을 위기로 내모는 교육위기, 기후붕괴와 각종 불평등 등 공동체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이에 노동건강연대,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등 79개 시민사회단체는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는 구호로 2월 포럼을 열었고, 포럼 결과를 토대로 3월23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연다. 이들 시민사회는 4·10 총선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체제전환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

 

 

 

체제전환운동에 참여하는 이용희 직접행동영등포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지방자치법과 관련해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유롭게 정치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지만 그 공간도 거대 양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이 경쟁하는 구도에서 지역 기반 정당은 성장하기 어렵고 풀뿌리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지역주민들이 인구소멸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어렵습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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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야기 1506호
‘의원 수 축소’가 정치 개혁이라는 한동훈 위원장의 원형

 


국민의힘은 선거제 개혁의 한결같은 훼방꾼, 선관위 제안도 정개특위도 국민공론조사도 무시하고 ‘의원수 적게’라는 포퓰리즘 수사만

 


송채경화

 

기자구독

 


등록 2024-03-22 13:05 수정 2024-03-25 12:59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2024년 2월2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례대표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조혜정 대표(오른쪽 셋째) 등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총선에 이어 제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나란히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무너뜨리고 있다. 여기엔 스스로 만든 선거제도를 무력화한 민주당의 책임도 있지만, 정치 개혁을 외면한 채 아무 거리낌 없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온 국민의힘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국민의힘은 선거제도 개편 등 정치 개혁이 실현될 수 있었던 주요 국면마다 당리당략을 바탕으로 훼방 놓기를 일삼아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 이슈로 제안한 노무현

 


2024년 1월1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원 수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제일 먼저 통과시키겠다”고 발언한 것은 국민의힘이 정치 개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한 위원장의 ‘의석수 축소’ 주장은 정치혐오에 기댄 퇴행적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2월13일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조국씨가 뒷문으로 우회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제도”라고 비판하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막기 위한 국민의힘의 ‘노력’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오래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3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선거제도 개혁이 거의 처음으로 정치권 이슈로 부상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이를 ‘영남에서까지 의석수를 확보하려는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로 깎아내렸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지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는 소선구제도가 옳다”며 반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2년 뒤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한 대연정을 제안하며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아닌,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파격적인 대연정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한나라당은 “응대할 가치도 못 느낀다”(이정현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며 제안을 일축했다.

이후 잠잠하던 선거제 개혁 이슈는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안을 내놓으면서 재부상했다. 당시 선관위 안은 전체 의석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수는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는 100석으로 늘리자는 내용이었다. 선관위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서 한발 떨어진 기관이라는 점에서 ‘중립적인’ 방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때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선관위 안에 반대하며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수를 기존(당시 54석)보다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영남을 포함해 지역구 의석수가 줄어든다는 것에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심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논란 끝에 여야는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한 채 비례대표 의석수를 오히려 7석 줄이는 ‘정치 개악’에 합의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제 개혁에 대한 합의문까지 발표하고도 ‘먹튀’를 한 사례도 있었다. 2018년 12월15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포함한 여야 5개 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 검토’와 ‘의원 정수 확대 논의’ 등을 담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가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열흘 동안 단식한 끝에 성사된 것이었다. 그러나 합의 이후 자유한국당은 해당 논의 기구에 참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원 정수 확대에 강하게 반발하는 등 합의문의 방향과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2019년 4월29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되자 회의장 밖에서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준연동형 비례 개정안 반대하러 드러누운 자유한국당

 

 


문제는 자유한국당이 반대만 할 뿐 자체적인 선거제도 개혁 방안은 내놓지 않은 채 ‘시간 끌기’만 했다는 점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국민의힘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할 때 주로 써온 사보타주(태업) 방법은 ‘결정하지 않기’였다”며 “지난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선거제도 관련 논의를 할 때면 ‘내부의 진지한 논의를 거쳐 의총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논의를 계속 지연시켜왔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은 2019년 3월10일에야 자체 안을 내놨다. 이날은 함께 합의문을 발표한 나머지 여야 4당이 자유한국당에 자체 개편안을 내라고 요구한 최종 시한이었다. 그러나 이날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안은 기존 합의안을 뒤집는 내용이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폐지하는 것을 전세계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다”며 “(전체) 국회의원 수를 조정해서 10% 줄이는 270석을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안”이라고 밝혔다. 비례대표 의석(당시 47석)을 완전히 없애고 270석을 모두 지역구 의석으로 채우자는 주장이었다. 이는 그해 4월30일 벌어질 ‘동물국회’의 서막이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협의체는 논의 끝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패스트트랙에 띄우기로 한 날인 4월29일이 되자 국회엔 긴장감이 흘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정개특위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스크럼을 짜고 복도에 드러누워 “독재 타도” “헌법 수호”를 외치며 반대에 나섰다. 애초 열리기로 예정됐던 회의실을 급하게 바꾼 뒤 밤 10시50분에야 회의가 시작되는 등 자유한국당의 방해 공작은 끈질겼다. 결국 다음날 0시30분이 돼서야 패스트트랙안이 통과됐다.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은 장외투쟁과 단식농성 등으로 법안 통과를 저지하려 했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결국 2019년 1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67명 가운데 찬성 156명으로 가결됐다.

 



이후 자유한국당은 공언해온 대로 위성정당 창당 작업에 착수했다. 2020년 2월5일 한선교 의원을 당대표로 한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창당됐다. 뒤이어 더불어민주당도 ‘현실론’을 들어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며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보에 동참했다. 두 정당은 의석수순으로 결정되는 정당 기호의 앞번호를 차지하기 위해 위성정당에 ‘의원 꿔주기’라는 꼼수까지 쓰며 정치권 안팎의 비판을 자초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정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인데 가짜 정당을 만들어 의원 꿔주기까지 한다는 건 정당정치를 희화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행태는 국민을 혼란케 하고 민심을 왜곡한다”고 꼬집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23년 6월20일 국회에서 ‘국회의원 10% 감소’ 등의 내용을 담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 언급했지만

 

 


2020년 총선 이후 양당은 위성정당에 대한 문제의식을 잠시 공유하는 듯했다. 2021년 7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송영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구성된 정개특위는 위성정당 방지 등 선거법 개정을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며 두 대표의 약속을 무색하게 했다. 각 정당의 정치적 유불리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선거제도를 논의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거대 양당의 ‘짬짜미’라는 비판이 나왔다.

 



선거제도 개혁의 또 다른 기회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나왔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양극화 현상을 지적하며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를 계기로 어느 때보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야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달 뒤에는 여야 의원 130여 명이 뭉친 ‘초당적 정치개혁모임’이 출범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김진표 국회의장이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면서 정치 개혁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당시 국회 정개특위가 전원위원회에 올리기 위해 마련한 선거제도 개편안은 세 가지였다. 1안은 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2안은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3안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다. 1안과 2안은 의원 정수가 현재 300명에서 350명으로 늘어나는 안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전원위원회가 시작되기 직전 또다시 ‘재 뿌리기’에 나섰다. 2023년 4월6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총 의석수 30석 감축’ 주장을 들고나오면서 의석수 확대를 기반으로 한 전원위원회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후 열린 전원위원회(4월10~13일)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각자의 주장만 펼치면서 국회 차원의 단일안 만들기에 실패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의원 정수 확대 반대’ ‘비례대표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전원위에 올라온 선거제 개편안을 무력화했다. 한 달 뒤엔 400~500여 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선거제 개혁 국민공론조사가 실시됐지만, 이때도 국민의힘은 국민 여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공론조사는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69.5%로 나오는 등 선거제 개혁에 한발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기현 대표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을 이미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은 공론조사가 ‘편향된 것 아니냐’며 성과를 깎아내렸다.

 



다시 4년 전과 판박이

 

 


이후 선거제 개혁 논의는 소수 정당을 제외한 거대 양당의 ‘2+2 협의체’를 통해 진행됐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준연동형과 병립형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4·10 총선이 임박한 2024년 2월5일에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결정했다. 이후 진행 상황은 4년 전과 판박이다. 양당은 각각 위성정당을 창당한 뒤 기호 앞번호를 차지하기 위해 앞다퉈 ‘의원 꿔주기’를 실행하고 있다. 김형철 교수는 이런 행태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해 제1당이 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선거제도가 가져오는 민주적 효과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형적인 위성정당 사태는 언제까지 반복돼야 할까. 지병근 교수는 “총선이 임박해 선거제도를 바꾸려 하면 각 정당이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계산하느라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개혁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최소 선거 2년 전에는 개혁안에 대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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