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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생물학] 최재천 - 벌레 먹은 과일이 더 아름답다. 우리의 생각이 변할까?

by 원시 2022. 7. 31.

어린시절 들판이나 산에서 삐비를 뽑아서 먹곤 했다. 배고파서 먹었다기 보다는 동네 친구들 학교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삐비를 먹고, 삐비가 새버리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가지고 있었다.

 

산과 들에 농약을 많이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최재천의 주장, 너무 당연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공해로 가득찬 서울은 인간에게 별로 좋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 마땅히 과일, 채소에 살충제를 과다하게 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이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하려면 정말 무엇이 좋은가 스스로 체험해보고 즐겨야 한다. 어린시절부터.

 

 

 

 

 

 

[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벌레 먹은 과일 주세요


입력 2001.04.16 00:00




요사이 시장에 가서 과일가게 앞을 지나려면 가지런히 줄 맞춰 쌓아놓은 탐스러운 과일들에 군침이 절로 돈다.하지만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려서 집에 과일나무가 있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상처 없이 깨끗한 과일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기억할 것이다.



과일이란 동물처럼 발이나 날개가 있어 스스로 자손을 먼 곳까지 퍼뜨릴 수 없는 식물이 궁여지책으로 개발해낸 번식전략이다.



귀한 자식일수록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말처럼 식물들도 그들의 씨를 되도록 멀리 보내고 싶어한다.



발 밑에 떨어진 씨는 발아하더라도 자기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만일 의외로 잘 자란다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지만 식물도 그 꼴은 못 본다.



그래서 식물은 자기 대신 자식들을 먼 곳까지 데려다 줄 동물들을 유혹한다. 영양분이 담뿍 든 조직으로 씨를 포장하여 선물하면 동물들이 그걸 먹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배설하기만 하면 된다.



이 같은 동물과 식물의 관계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며 얼마나 끈끈하게 묶였는지 많은 식물들의 씨는 동물의 위장을 통과한 후에야 발아할 수 있게 되었다. 위 속의 강한 산과 장 속의 온갖 소화효소들에 의해 씨껍질이 적당히 손상을 입어야만 발아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마음이 맞아 사이가 좋은 둘 사이엔 늘 훼방꾼들이 끼게 마련이다.

그토록 영양분이 많은 과일을 다른 생물들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씨는 옮겨주지도 않으면서 과일만 쪼아먹는 동물들을 비롯하여 온갖 곤충들과 다른 미생물들이 과일을 축낸다.



그래서 식물은 그들을 퇴치하는 방법들을 개발했다. 이른바 2차대사물이라 부르는 화합물들을 만드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신진대사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로지 외침을 막기 위해 식물들이 개발한 화학무기들이다. 그런 물질들을 우리가 추출하여 항생제 또는 항암물질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신진대사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질을 만드는 일은 국가 예산의 막대한 부분을 국방비에 쏟아 붓는 것과 흡사하다.

그만큼 성장과 번식에 대한 투자가 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식물들은 모두 어느 정도 당하면서 산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따로 준비한 화학물질을 뿌려대곤 겉모습만 깨끗한 과일들을 맛있다고 먹는다. 일찍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독한 방어망에 자연계의 곤충들과 미생물들은 잠시 주춤한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또 다른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는 더 독한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잘못 시작한 악순환이며 우리가 점점 뒤지고 있다.

194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클리어 레이크(Clear Lake)라는 곳이 있다. 유리처럼 맑은 호수를 갖고 있어 관광업을 하며 먹고사는 동네다.

그러다 보니 "다 좋은데 날파리들이 좀 성가시다"는 관광객들의 불평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날파리라 해도 무는 곤충도 아니고 그저 얼굴 주위에서 성가시게 굴 뿐인데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열고 호수에 살충제를 뿌리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양의 살충제로도 그림 같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만족도 잠시일 뿐 곧 더 성가신 날파리들이 나타났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많은 살충제를 뿌려야 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졌다.

이 같은 악순환은 어느 날 호수에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들어내고 뜨기 시작하며 심각해지더니 급기야는 농병아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뒤늦게나마 죽은 동물들의 조직을 검사해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농도의 살충제가 그들의 몸에 축적되어 있었다.

물 속의 플랑크톤이나 곤충의 몸 속에는 적은 농도로 쌓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그들을 먹고 사는 물고기와 또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새들의 몸에 이르면 치명적인 농도가 되는 것이다. 생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먹이사슬의 원리를 터득시켜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과일과 채소에 뿌리는 살충제도 똑같은 방식으로 먹이사슬을 기어오른다. 곤충을 죽일 정도라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식물들이 정상적으로 제작하는 '살충제'중에도 이미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엄청난 독으로 과일이나 채소들의 몸매를 예쁘게 가꾸고 있다.

벌레 먹은 과일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과학문화시대에 사는 국민으로서 이 정도의 지식은 습득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가게에 가서 "벌레 먹은 과일은 없나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상인들이 알아서 농민들에게 살충제를 뿌리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다.

대구에 미인이 많은 이유가 사과 속의 벌레 덕분이라 들었다. 못 생긴 모과만 맛있는 게 아니다. 과일과 채소의 한쪽 구석에 먼저 얌전하게 시식해준 벌레들에게 도리어 고마워할 일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출처..

https://youtu.be/PpTGLyLJX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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