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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1공화국

윤석열과 한동훈이 모르는 대구 역사. 독재자 이승만이 가장 무서워했던 도시가 대구였다.

by 원시 2024. 3. 7.

독재자 이승만이 가장 무서워했던 도시가 대구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대구고등학교 학생들의 60년 2월 28일~29일 데모를 뒤돌아본다.

 

역사의 상처는 회복되듯이, 대구-안동의 저항정신은 회복력을 가질 것이다. 앞산공원 회전 레스토랑처럼 민심은 돌고 다시 돈다. 대구보수도 잇몸으로 버티고 있다. 이빨은 앞니 2개만 남았다. 그 징표는 경북대의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1963년부터 1992년 육사 파워엘리트 시기 경북대의 위상과 그 이후 30년 지난 현재 경북대를 바라보는 대구 청년들과 학부모를 보면, 대구가 인천과 서울에 비해 얼마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경북대생들 4~5천명이 자퇴했다.

 

일제시대 해방운동의 첨병이었던 좌익의 근거지가 대구 안동 청송 라인이었다. 지주들도 땅을 팔아 무장투쟁에 돈을 기부하는 곳이 대구-안동이었다. 한국 지역 향토사 책들이 가장 많은 곳도 대구-안동이다.

 

이런 진보의 ‘기준점’ 역할을 했던 대구-안동이 기득권 세력으로 된 분기점은 일본원조와 차관을바탕으로 1963년 구미출신 박정희가 울산-포항을 시작으로, 부산 마산까지 연결하는 남동임해공업단지 조성이었다. ‘정치를 하려면 대구-경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출신이나 서울대’를 가면 되었다. 배고픔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의지는 미국팀이 후진국형 ‘후발’ 이륙 (take off)을 목표로 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부합했다.

 

지금도 대구-경북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의 리더였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자식들을 낳아 육사와 서울대 파워엘리트를 배출해서, 대외적으로는 국가경제를 성장시키고, 대구-경북 지역적으로는 파워엘리트와 지역토호들의 결합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1963년부터 1992년 30년 구체제가 깨졌다고 해서, 그 정치적 세력들이 다 깨진 것은 아니다. 대구 중심가 동성로에 청년이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나온지가 벌써 15년도 넘었다. 대구인구가 100만으로 증가한 것은 1970년이고, 15년 지난 1985년에 200만으로 2배가 되었다. 대구 ‘직물’ 공장구미 전자회사로, 고교,대학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92년 228만, 30년 후 현재 약 241만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 종식 후, 대구 인구는 13만 늘었는데, 수명 증가를 고려하면, 그만큼 1963년~1992년 대구 황금기와 비교하면, 일자리가 급감했다는 징표다.

 

2023년~2053년 또다른 30년 대구는 과연 변화할 것인가? 변할 것이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들이란, 과거 식민지 경험, 세계대전, 한국전쟁, 516 쿠데타, 경제성장과 대구-경북 육사 서울대 파워 엘리트의 중앙권력 장악 등이 있었는데, 이런 거대한 정치적 사건들과 세력들이 향후 30년간 나올 것인가?

 

현재 국힘과 다른 과거 민주노동당부터 현재 녹색정의당 같은 진보정당, 혹은 중도우파 민주당이 대구에서 국힘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인가? 총선 제도가 독일연처럼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로 변화하지 않는 한, 현재 국힘 세력, 지역토호와 서울파워엘리트가 결합된 핵심층이 쉽게 해체되지 않을 것이다.

 

내부 정치 주체들의 자발적 의지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대구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변혁적 사회세력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1963년~1992년 사이 사회적 저항세력의 주축이었던 고등학교 대학생 운동이나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노동자 조직들이 노쇠화되었기 때문이다.

 

향후 30년간은, 과거 군부독재 파워엘리트의 경제성장과 노동자의 희생, 97년 이후 미국자본주의 표준화라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굴복하고, 서울중심 파워 엘리트에 기생했던 대구 지역토호를 뛰어넘는 정치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지표는 삶의 질의 제고와 공적 행복이다. 삼성전자 하나 믿고 양적 성장지수에 목매다는 KBS, MBC 뉴스가 국민상식이 되는 게 아니라, 대구 경북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GDP숫자가 삼성전자보다 적더라도, 노년이건 청년이건 지역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전쟁 당시 대구를 방문한 이승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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