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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살인마3

원산폭격. 전두환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 시민군을 체포해 '원산폭격'을 시켰다. 원산폭격. 전두환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 시민군을 체포해 '원산폭격'을 시켰다. 부산외대 한 교수가, 조국 교수의 턱걸이 운동 사진에 존경를 표명하며, 원산폭격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이들이 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산 외대 교수는 광주 대동고를 졸업했다고 한다. 광주 대동고 학생들은 1980년 518 항쟁 당시, 가장 희생자가 많은 고등학교였다. 5월 27일 새벽 전두환 계엄군이 광주 도청을 사수했던 300명~500명 사이 시민군들을 진압한 후, 생존자들을 체포해, 적국 군인처럼 등에다 '죄목'을 써서 '폭도'라고 적어놨다. 그리고 금남로 주변에 원삭폭격을 시켰다. 원산폭격이라는 체벌과 폭력의 한국 역사, 전두환 군부의 범죄. 2021. 7. 19.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경향신문 보도 지침, 동아일보 보도 지금 경향신문의 논조는 진보적으로 바뀌었지만, 1980년 당시 경향신문은 전두환의 보도지침 때문인지, 신문사 사장단의 입장인지 몰라도, 광주 518을 '폭도'와 '무질서 난동'으로 묘사하고, 평온을 되찾아야한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518 광주항쟁의 원인, 범죄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집단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동아일보 1980년 10월 25일 보도 광주사태, 5월18일 전남대 학생데모가 발단이 돼 폭도들의 무장난동으로 번진 광주사태는 열흘동안 광주일원을 무법천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80년 518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0호 전문' 1980년 5월 29일자. 경향 신문. 2019. 5. 16.
518 광주항쟁 당시, 미국 백악관 전두환 지원 결정 메모 닉 플랫 메모 518 광주항쟁 당시, 미국 백악관 전두환 지원 결정 메모 닉 플랫 메모 [사회] [5.18]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닉 플랫 메모' 전문 공개날짜 : 2017-06-19, 조회 : 2,060 *본 회의록은 2017년 5월 5일, 광주MBC 김인정 기자*강성우 기자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참석자인 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국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인터뷰 현장에서 취재진이 확보한 10 페이지 분량의 수기 메모를 토대로 취재진이 전문가들과 함께 복구한 것으로 당사자의 확인을 거쳤습니다. 이에 광주MBC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전문을 공개합니다. 번역본 파일다운로드 : 다운로드 바로가기 원문 파일다운로드 : 다운로드 바로가기 [번역] / 원문은 .. 2017.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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