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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28

김종인, 정청래 공천 탈락시킨 이유와 성공 여부 1.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정청래 (마포 을) 더민주당 국회의원을 탈락시킬 때, 마포(을) 주민들의 정청래 평가서와 같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 잣대를 제시하지 않았다.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홍창선은 '정청래'에게만 해당하는 '잣대'가 있었다는 애매한 말만 흘렸다. 정청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의 공천심사 탈락은 정치적인 '거래' 성격이 띤다. 정청래는 왜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는가? 첫번째 이유는 정청래는 국민의당과의 관계 때문에 희생양이 되었다. 당대표격인 김종인이 국민의당 내부에서 '비-야권통합'파인 안철수를 고립시키고 야권통합파들 (김한길, 천정배 등)을 분리시키기 위한 것이다. 3월 7일 국민의당 문병호는 새누리당 김을동,윤상현,홍문종,한선교,이정현과 더민주당 정청래,이목희,이해찬,김경협.. 2016. 3. 10.
안철수 국민의당, 내부 분열 가시화, 반전없이 자멸할 수도. 이유 분석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내부 분열 위기에 몰렸고, 자칫 상황이 악화되면 당의 존립성마다 위태롭게 될 것 같다. 국민의당이 애초에 설정했던 정치적 좌표는 제 3 지대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 제 3의 보수적이면서 합리적인 무당파를 지지층으로 만든다는 전략이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새누리당의 거점인 영남과 충북,강원 등에서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거나 전혀 변화가 없는 반면, 오히려 호남과 광주에서도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김한길을 비롯한 서울,경기권에서 출마할 예정인 국민의당 국회의원들과 후보자들이다. 국민의당 내부 분열의 신호탄이다. 안철수가 죽을 각오로 광야에 나가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국민의당 내부 .. 2016. 3. 9.
안철수 기자회견 (3월 6일) 목표와 한계 - 국민의당 구성 자체 한계를 드러내다 안철수 기자회견 (3월 6일) 목표와 한계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가 3월 6일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국민의당 내부에서 그의 ‘지도력’를 재확인하고, 더민주당과의 통합과 선거연대를 놓고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함이다. 안철수에게 중요한 것은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지, 413총선은 그 예비전 성격을 띨 뿐이다. 안철수 기자회견 핵심은 세가지이다. 첫번째는 새누리당의 정치적 영토를 뺏어온 사람은 안철수이지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가 아니다. 2017년 대선 후보로서 안철수 자신이 자격조건을 갖췄다는 주장이자, 국민의당이 더민주당과 분리된 이유이기도 하다. 두번째 주장은 413 총선은 더민주당과의 협력보다는 정책대결을 펼치는 2017년 대선 예비전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호남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국민.. 2016. 3. 6.
김주하 아나운서 김종인을 인터뷰할 때, 튀는 질문과 김종인의 40년 정치사 김종인 (민주당 선대위, 비대위 위원장) 인터뷰 - 김주하 아나운서 이 인터뷰 도중에, 시청율을 의식해서였는지, 김주하 아나운서는 "전두환 국보위에 참여한 분이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은 두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 첫번째는 전두환 국보위 (국가보위 비상 대책위원회, 1980년 5월 창설) 참여 문제는, 호남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문제 삼고 비판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전두환 노태우 육군 소장들이 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8 광주학살을 저지르면서 정권 찬탈을 위해 국보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김종인이 5공화국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은 찬/반 논란이 있다. 그러나 독재정권 하에서 경제 테크니션으로 활동한 .. 2016. 1. 27.
유창선 박사의 김종인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비판의 문제점들 유창선 박사가 다음과 같이 김종인에 대한 논평을 했다. "김종인 은 전두환 국보위 참가를 반성하라.” “김종인이 제 1 야당의 점령군으로 된 듯한 광경은 비극이고 희극이다” 그리고 “역사는 정파에 우선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창선 박사의 주장은 몇 가지 헛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필자가 보기에는 5공 청산 전두환-노태우 광주학살 책임 문제를 김종인에게만 떠 넘기는 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재정학(세금) 전문가로서 전두환과 민정당에서 일한 김종인보다는 이제 제 5공화국 청산 책임은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더 있다. ‘역사가 정파에 우선한다’는 유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516군사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과 DJP 연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맨 먼저 비판당해야 한다. 또한.. 2016. 1. 21.
국민의당,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김종인의 할아버지 김병로 아니러니하게 안철수 멘토였다가 이제는 경쟁자가 된 김종인(민주당)의 할아버지가 속한 당 이름이 바로 '국민의당' (1963~64)이었다. 국민의당을 만든 사람들은 김종인의 할아버지인 김병로, 허정, 김도연, 이범석 등이었다. 61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공화당 후보를 63년 10월 15일 대선에서 이기고 군정을 끝내기 위해서, 민정당 (윤보선), 신정당 (허정), 민우회 (이범석) 등 갈라진 야당들이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의하고 만든 당 이름이 바로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은 1963년 7월 15일에 발족했으나, 후보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9월 14일에야 비로서 창당을 하게 된다. 하지만 민정당의 윤보선은 불참하게 되고, 신정당과 민우회만 합쳐서 국민의당 을 만든다. 윤보선과 민정당에서 함.. 2016. 1. 15.
한상진 (국민의당)의 이승만 평가 문제점,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안 안철수가 말한 '국민의당'의 최고인재들은 누구인가? 그 중에 한 명은 한상진 전 교수다. 11일 이승만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고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1대~3대)을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11월 27일에 제헌헌법 (1948년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을 하고자 했다. 원래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2016.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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