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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3

한국정당, 총선용 정당 열린우리당 겉다르고 속다른 수박당 제목: 열린 우리당=겉다르고 속다른 수박당 원시 작성일 2004-01-16 열린 우리당 지도부, 정동영, 이부영, 허운나 등이 광주 망월동 묘역을 '행렬'하고 있다. 어쩌다가 광주 망월동 묘역이 꼭 박정희 묘역가는 길처럼 '권세'와 '살기', 그리고 '위선'이 느껴지는 권세로가 되었는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주역'은 아니고, '희생자'라고 규정되고 싶었던, 김대중이 광주 민주정신을 팔아먹고, 대구지역에서 표 한번 받아보려고, 전두환-노태우를 사면시킨지 몇년이 흘렀다. 결국, 김대중의 '동진 화해 정책'은 대의와 방법에서 모두 틀렸기 때문에 실패했다. 누가 김대중에게 광주 문제를 자기 멋대로 '사죄하고' '화해하고' 공표하라고 했는가? 자기 몫이 아닌 데 말이다. 지금 총선 때문에, 들떠있다. 열.. 2016. 4. 12.
1987년 개헌, 결선투표 제도만 도입했다면, 노태우는 낙선되었을 것이다.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민주진영의 '실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도'를 빠뜨렸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 제도만 있었더라면, 노태우는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선투표가 있었다면 1차 투표에서 36.7%로 1위였던 노태우는 '과반'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에, 제 2차 결선에서 2위였던 김영삼과 다시 재선거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1차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27%의 표 대부분은 김영삼후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랬더라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집권했을 지도 모른다. 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민정당과의 개헌 논의에서 '결선 투표제도'를 신설하지 않았을까? 회고담 같지만, 그 원인들을 뒤돌아 보자. 1.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민주진영의 '실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도'를 빠뜨렸다. 7월부터 9월까.. 2015. 12. 6.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한국 법률사에서 분수령이 될 윤석열 검사 증언(2)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한국 법률사에서 분수령이 될 윤석열 검사 증언,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 윤석열 법을 제정해서, 검사 활동의 지침서로 만들어야 한다. 왜 윤석열 검사 국정원 수사는 계속되어야 하는가? 윤석열 검사의 국감장 증언은 촛불데모, 민주화운동, 좌파들에게는 정치적 상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잡아놓은 국감 콘셉트, 즉 ‘윤석열 검사의 항명 및 검사동일체, 상명하복 규율 위반’ 주장도 어쩌면 속 보이는 정치적 연기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장의 증언은 노회찬 전 의원의 “안기부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폭로” 사건보다 더 정치적으로, 특히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 더 중요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일선 검사 일부는 TV.. 201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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