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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항쟁5

518 광주항쟁의 역사적 공간. 도청 복원 2025년 6월 완공. 앙드레 말로, 파리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고 청소한 사례. 공간의 보존과 역사적 기억. 광주 도청과 분수대 광장은 518 광주항쟁에서 광주시민들과 시민군의 집결지였고, 민주적 토론 공간이었다. 광주도청은 전두환 쿠데타 세력과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맞써 싸운 전선이었다. 윤상원을 비롯한 시민군 지도부들이 공수부대의 총에 맞고 산화한 곳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2025년 6월까지 광주 도청은 복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을 쓴 프랑스 앙드레 말로가, 우익 프랑스 드 골 대통령 하에서 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앙드레 말로의 특이한 결정이었다.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이 되어 한 일들 중에 하나가 바로 '파리에 있는 역사적 건물'을 청소하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파리는 세계 관광 명소인데, 파리의 역사적 공간을 그대로.. 2023. 11. 13.
"여기가 전라도냐"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 두뇌구조의 이중성 자유한국당 소속 초선 윤한홍 의원이 518 관련 항의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여기가 전라도냐?"라고 지역감정을 유발시켰다. 그 시위자들이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앞에서 반 전두환 시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한홍 의원의 발언이 더 악질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는, 그가 518 광주학살자 전두환의 사죄를 요구하는 시위자들더러 당신들은 이승만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서 싸운 315 마산의거 정신들을 배신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점이다. 마산 창원 사람들은 1960년 이승만-이기붕의 315 부정선거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선구자들이었다. 특히 1960년 4월 11일 부산의 한 신문기자의 제보로 마산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을 맞아 숨진 사진이 알려지자, 이승만 이기붕 독재타도 운동은 전국화되었고, 마침.. 2019. 3. 12.
[전두환 광주 재판] 1980년 5월 21일, 계엄군 헬기로 군병력 도청 투입 실패 과정에서 기관총 난사. 전두환 계엄군 광주 헬기 사격 증언들 공격헬기 500MD의 기관총알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들이 광주 도청 앞 전일빌딩 건물 천정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을 보았다는 광주시민들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아래 sbs 뉴스 보도를 보면 21일 발포된 헬기 기관총탄들의 사용목적과 작전 실패를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80년 5월 21일, 전두환 계엄군은 헬기를 동원해 상무 20사단 병력을 도청으로 이동하는데 실패했다. 그 실패 이유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로 60여명이 넘게 광주시민이 죽자, 시민들이 시내버스 택시를 동원해 계엄군에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계엄군은 21일 도청 발포 이후에 병력을 도청에 더 추가 배치하려고 했다. 상무대 20사단 병력을 헬기로 이동하기 위해, 광주 도청 근처에 흐르는 광주천을 따.. 2019. 3. 11.
[518광주] 윤상원 선생 아버지와 대화 2004-05-14 [518광주] 윤상원 선생 아버지, 윤석동 옹 인터뷰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4-05-14 17:03:45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없어지기도 하고, 잊어먹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삶의 의지의 끈을 놓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어쩌면 포기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죽음과 생의 사멸을 스스로 선택하고 거기에 ‘의지’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그래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이 자연스런 현상은 아니다. 아직도 의문이다. 왜 윤상원은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철수하지 않았을까?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78세)님에게 물었다. 올해가 윤상원 선생이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올해 그럼 살아계시면 연세가 어떻게 되죠?” “쉰 다섯(55)인가? 쉰 여섯인가? 그럴.. 2018. 9. 5.
518 광주항쟁 당시, 미국 백악관 전두환 지원 결정 메모 닉 플랫 메모 518 광주항쟁 당시, 미국 백악관 전두환 지원 결정 메모 닉 플랫 메모 [사회] [5.18]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닉 플랫 메모' 전문 공개날짜 : 2017-06-19, 조회 : 2,060 *본 회의록은 2017년 5월 5일, 광주MBC 김인정 기자*강성우 기자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참석자인 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국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인터뷰 현장에서 취재진이 확보한 10 페이지 분량의 수기 메모를 토대로 취재진이 전문가들과 함께 복구한 것으로 당사자의 확인을 거쳤습니다. 이에 광주MBC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전문을 공개합니다. 번역본 파일다운로드 : 다운로드 바로가기 원문 파일다운로드 : 다운로드 바로가기 [번역] / 원문은 .. 2017.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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