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도시 변천사(서울)

서울 도시 변천사 연구자, 손정목 (2015년.경향)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권.

원시 2025. 11. 27. 20:25

서울시 연구자. 손정목 소개.

 

언론보도.

 

------------

 

 

“일제 정책 답습한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 무식했다”

수정 2015.01.02 21:58

펼치기/접기
허남설 기자
‘근·현대 도시계획 산증인’ 손정목 전 교수

▲ “일제 ‘관 주도 개발’ 그대로 모방… 당시 구획정리 방식 비판 많지만
서울 인구 폭증에 토지 강제수용 시대상황서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현대 도시계획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해방 후 도시개발 공무원들이 식민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관 주도로 지주들로부터 엄청난 토지를 빼앗아 밀어붙인 서울 강남 개발에 대해서는 “무식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가난’이란 단어와 ‘다른 도리가 없는 일’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손 전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 내에 있는 ‘손정목문고’에서 이뤄졌다. 서울시립대는 2009년 손 전 교수에게 책들을 기증받아 문고를 설치했고 80대 노(老)교수는 매일같이 나와 연구를 한다고 했다. 방문 당시 신문을 읽고 있던 책상에는 책과 원고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초빙교수는 지난달 24일 시립대 중앙도서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를 상세히 설명하며 그동안 품어왔던 생각들을 열정적으로 풀어냈다. | 김영민 기자

그는 1934년 조선총독부의 신시가지계획에 대해 “당시로선 일제도 도시계획이란 개념 자체가 상륙한 지 몇 해 안되던 때”라며 “그들도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가난한 때였기 때문에 (관 주도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당시 북촌(조선인 주거지)과 남촌(일본인 주거지)의 도시계획상 차별을 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에 (조선은) 도시계획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며 “일제강점기를 통해 (도시계획의 작동방식을) 알게 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권력자가 누구냐에 따라 개발이익이 같은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 간에도 차별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손 전 교수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와서야 새롭게 도시계획과 권력의 작동방식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손 전 교수는 해방 이후 토지구획정리는 일제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임을 정확히 지적했다. 손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에서 “일제하의 철저한 관 주도형 토지구획정리사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전문가들까지도 ‘구획정리는 관 주도로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일반화됐다”고 서술했다.

손 전 교수는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영동구획정리사업)에 대해선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말도 못할 정도로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엄청나게 빼앗았다”며 “그때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 모두 엄청난 부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땐 (다들) 무식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구획정리 방식에 비판이 많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현옥 서울시장이 부임할 때(1966년) 이미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이 나왔다”며 “그때 서울 인구는 300만명에 불과했지만 곧 1000만명이 됐다. 자꾸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했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강남 개발에 얽힌 비화도 들려줬다. 원래 왕십리~여의도~영등포 구간으로 계획됐던 지하철 2호선이 지금의 순환선으로 바뀐 배경을 언급했다.

“어느 날 구자춘 시장(1974~1978년 재임)이 직원들을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하더니 강남을 지나는 2호선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해’라고 지시했다. 그것이 거의 100% 실현된 것이 지금의 2호선이다. 2호선이 생긴 뒤부터 강남으로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구 시장이 머리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강남 개발 당시 아슬아슬했던 심정도 털어놨다. 그는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 지나친 계획이었다는 말이 많았다. ‘손정목이가 강남 개발 때문에 형무소에 갔다더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손 전 교수는 최근 한국의 도시계획·개발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는 인구가 매일 늘었지만 지금은 인구가 줄고 있는 시대”라며 “매일같이 뭔가 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럼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손 전 교수는 저서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가 꽂힌 문고 한편으로 데려갔다. 그는 “이게 바로 내 책이다. 하지만 이제 한문을 안 쓰고 한글세대가 되면서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며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내가 쓴 것 중 제일 형편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도시계획을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연속된 역사가 아니라 단절된 것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경계가 담긴 말이었다.

■ ‘손정목’에 대한 후학들 시선
“전인미답의 업적” “개발독재 방식 눈감아” 평가 엇갈려

손 전 교수의 저술들은 도시계획이나 도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논문에 자주 인용된다. 그만큼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 손 전 교수의 위상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가 행정가로서 했던 과업이나 연구자로서 내놓은 견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손 전 교수의 업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는 학자가 또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중잣대’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손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 때 시행된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조선인·일본인에 대한 공간적 차별에 대해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며 “하지만 이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해방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개발 방식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하는 등 모순된 자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도 비슷한 맥락에서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그는 “손 전 교수가 일제강점기에 대해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이 공직생활을 할 당시 도시계획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상황 논리를 들어 신랄한 비판을 하진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는 “손 전 교수가 최고권력자의 욕망·기호·취향이 도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암시를 충분히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 도시사 연구에서 손 전 교수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라며 “일반 역사 논문과는 다르게 ‘이야기 스타일’로 쓴다는 점 때문에 전인미답의 방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학계에서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손정목은 누구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 명예교수(86)는 한국 현대 도시계획·개발사의 산증인이다. 현재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와 학생들 사이에서 손 전 교수의 저서는 필독서로 꼽힌다. 그가 7년간 서울 도시행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과 방대한 자료 취재를 통한 분석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도시사회연구>(1977), <한국 현대도시의 발자취>(1988),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1990) 등 전문 연구서적이 대표적이다. 또 그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2003),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1~2> 등 대중적인 저술 활동도 했다. 그가 남긴 글은 원고지 20만장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약력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195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예천군수, 경상북도 지도과장을 거쳤다. 1970년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에게 발탁돼 1977년까지 서울시에서 일하며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1977년 서울시립대(당시 서울산업대) 교수로 부임해 도시행정대학원장 등을 거쳐 1994년 퇴임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