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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영어, 녀자 아나운서, 그 남편 금융맨들

by 원시 2014. 1. 28.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영어, 녀자 아나운서, 그 남편 금융맨들

원시 조회 수 772 댓글 1:2011.11.09 17:02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쟁과 평화> 소설이 너무 길어서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출판사인지 번역자는 누구인지도 생각은 나지 않고, 대략 상,중,하 3천 페이지 정도 되었다. 허벅지가 다 여물기 전에 읽은 탓도 있다. 올해로 허벅지 원년 27.9세. 당시 이팔 청춘. 읽어야 할 세계명작 목록에 올라와 있어서 한 3주 동안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줄거리가 도대체 기.승.전.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읽으면서도 <전쟁>의 비극, <평화>의 사도들, 이런 권선징악 구도가 언제 나오나 언제쯤 나오나 하다가, 그냥 끝나버렸다.


19세에 왕이되어 29세에 중원을 호령하다가, 39세에 세상을 떠난 광개토대왕, 못생긴 낙성대 별 강감찬 장군, 적군의 아들 관창을 살려준 계백 장군이랄지...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뭔가 산뜻하게 머리속에 남는 건 없을까? 3천 페이지 읽기만 했지, 아이들이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라고 하면 '아 복잡해~ 등장 인물들이 한 4~500명 되어서 이름도 못 외워' 그러자니, 참 체면이 말이 아니다. ㅜ.ㅜ.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것도 흉내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명작이라고 하면 명작인 줄 알고, 그것도 <세계적 Global 글로벌> 명작이라고 하면, 읽어야할 것 같고, 안 읽으면 덜 떨어지거나 뭔가 한 '축'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이보다 더 복잡한 나름 독특한 사연도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난 실은 <전쟁과 평화>에 앞서, <부활>을 읽었는데,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톨스토이가 묘사한 러시아 농부들 (농노들)의 삶과 그 생활상이었다. 김유정의 <봄봄>, 최서해 <탈출기>와 유사한 그 생생한 묘사가 많이 와 닿았던 것이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시간이 오래되어 다 까먹어 버렸는데, 2~3가지가 떠오른다. 아니 그 이후 계속해서 내 스스로에 던진 대화의 소재들이다.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 귀족들, 젊은 귀족 자제들이 많이 등장했다. <전쟁과 평화> 소설 배경이 프랑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할 당시였다. 그런데 러시아 귀족 아들들은 당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 방학? 이럴 때면 모스크바로 돌아와 <파티>나 <댄스?> 이런 것을 벌이곤 했다. 이 러시아 파리 유학생들은 이 <파티>에서 러시아보다 프랑스어를 쓴다.


이게 <전쟁과 평화>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톨스토이의 묘사였다. 사실 정치적으로 좌파도 우파도 아닌 톨스토이의 소설들로부터 내가 얻은 이러한 강렬한 인상들은 이후 소련, 중국, 북한에서 출판된 구-사회주의 교과서들에 대한 이론적 회의와 비판적 독서를 가능케 해준 한 요소가 되었다. 이 러시아 귀족 청년들, 파리 유학파들을 미래의 남편감으로 생각하는 러시아 귀족 따님들도 그 <파티>에서 프랑스어를 썼고, 프랑스어 어투와 발음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1812년에 러시아를 침략했으니까, 200년 전 이야기이다.


요새 말로 하면, 당시 프랑스 파리와 프랑스어는 "쿨" 한 것이고, 일종의 세련된 미적 감각의 "뉴요커"라고 할 수 있을려나? 한국의 MBC 유명한 여자 아나운서가 집에서 부부싸움을 영어로 한다는 게 뉴스이기도 하니까, 사람 사는 모양새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파들의 신문인 스포츠조선 http://bit.ly/vGOHK5 유명 아나운서 누구와 결혼했나?를 보면 "여성 아나운서의 결혼에도 트렌드가 있다. 2000년대 들어 해외 유학파 출신 금융인과의 결혼... 1) 매커리 증권회사... 2) 네덜란드계 증권회사의 펀드 매니저... 3) 하버드대 MBA 출신으로 홍콩의 유력 증권사 펀드 매니저...4) 미국 와튼 경영 MBA...5) 공통점은 영어, 금융 펀드 매니저, '개방적?' 해외 유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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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개인 사생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싸움은 하고 살아야죠...)

어떤 측면에서는 사람 살아가는, 인지상정은, 마치 침팬지가 바나나를 왼손으로 까먹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만큼이나 변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톨스토이 소설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그 러시아 귀족 청년들, 프랑스 파리 유학생들, 방학이면 모스크바에서 프랑스어를 쓰면서 어어쁜 귀족 따님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자존심과 자아 정체성으로 삼았던, 그 <문화적 빈곤국가> 러시아 귀족 청년들은,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와 맞서서 싸우다가 싸늘하게 죽거나 다치거나 돌아오지 못하거나 그렇게 끝났다.

옆길로 잠시 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그 귀족 청년들의 프랑스어 사용과, 잘난 척, 차별화 노선, 문화적 우월감 (정작에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게 혼자만의 자긍심의 발견이 아니라, 타인, 특히 여성들과의 짝짓기 문화에서 프랑스 자체가 계급차별의 무기가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톨스토이의 러시아 귀족청년들의 프랑스어 사용(문화적 빈곤감과 열등의식)이 내가 부닥칠 미래의 파노라마의 창 역할을 했다. 한자 문화권, 유교 문화권, 어린시절부터 한문을 학문이라고 가르쳤던 문화에다, 학교에서 외국어를 시험보고 성적처리했던 그 생활 문화를 다시 뒤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정치 세계는 이것보다 더 복잡하다.

한미 FTA 외교 통상 영어 문서도 잘못 번역해서, 노동자 농민들에게 민폐를 끼칠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에게도 불리할 수 있는 외교를 하고 있는 한국 친미-보수 우파들의 문제도 <문화적 빈곤>과 <열등의식>의 또 다른 버전이니까 말이다.


지금 러시아도, 한 때는 양극 체제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중심인 듯 했지만, 그게 70년 가지 못했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와 또 당시 수많은 러시아 소설들에서 발견된 서구 유럽 (파리, 베를린, 런던)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은 그 70년 동안에도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위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중에 하나가 유럽연합의 주변부 국가들이라는 표현이다. 어쩌면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의 운명, 개별적으로 다 그렇다, 주변부, 세계 중심부나 유럽연합 중심부(독일, 프랑스)가 아닌, 주변부, 혹은 그 주변부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


비탄도, 자책도, 중심부에 바로 점프하는 무모함과 허황됨도 아닌,

담담한 대화의 길은 없을까?


- 그리스 국가채무 위기와 그리스 민중들의 저항, 유럽 주변부 국가, 그리스의 정치적 운명을 생각해보다가...노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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