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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_리더십

운동권 행복 역설과 통합진보당 폭력 사건: 불행한 의식의 정치적 퍼포먼스, 그 메시지 2012 july 7

by 원시 2016. 8. 11.

2012.07.07 20:33

통합진보당 512 폭력 사건 (1) 불행한 의식의 정치적 퍼포먼스, 그 메시지

원시 조회 수 1088 댓글 4



통합진보당 5월 12일 중앙위원회 폭력사건은 불행한 의식들과 그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불행한 의식들의 주체는 행복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고,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말은 그 폭력사건은 우발적인 우연이 아니라, 또 일부 세력들이 아니라 전 참여자들의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잘못의 등급을 매기고 50보 100보를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시시비비를 따지고 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원인에 대한 제대로 진단들과 해법들은 아직도 나오지 않아 보인다. 불행한 의식들과 퍼포먼스는 계속될 것 같다.


이제 욕설이 되어버린 운동권이라는 단어, 아니 욕설은 아니더라도 식어버린 아이스크림 같은 낱말, 바로 이 운동권에는 행복에 대한 애증이 있다. 운동권 행복의 역설이 그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실현해야 하는 혹은 나보다 더 큰 공동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가거나 험난한 인생살이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1)


운동권의 행복 역설의 다른 측면이 있다. 나 자신이 ‘행복감’을 느끼거나, 직접 체험하거나, 스스로 기획해서 실천해보지 않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운동권의 ‘행복’을 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돌팔이 의사처럼 ‘만병통치약’을 팔 수 있지만, 그 진실성은 떨어진다. 자기도 자신하지도 못하는 ‘행복감’을 내 옆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할 수 없다.(2)


조금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 당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행복요소들을 자기들끼리 창출해내고 공유하고 직접 체험을 해서, 비당원들에게도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권 스스로 행복해야 하고, 정당 활동 자체가 전 사회로 퍼져 나갈 행복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운동권이 행복했는가? 현재는 미래는 이러한 운동권 행복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외부 적을 타도하거나, 바깥 지배자들과 경쟁하거나, 비슷한 정치조직들과 게임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은 철학적 토대를 갖춘 좌파는 이 운동권 행복 역설이라는 어려운 과제들을 매일매일 답변해야 한다. 이 답변이 바로 투쟁이고, 소통이기도 하고 새로운 정치주체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건 제국주의건 계급질서건,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더욱더 행복한 삶에 대한 우리들의 대안적, 창조적,생산적 실천과 떨어질 수 없다. 정치적 이념의 방향성이 뚜렷한 당은 우리의 ‘행복관’에 기초한 행복의 저수지 물이 정당에 늘 메마르지 않아야 한다.


난 이러한 두가지 운동권의 행복 역설의 관점에서 통합진보당 5월 12일 폭력사건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기 행복보다 더 큰 공동체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행복 역설 1도 아니고, 타인에게 권유할 행복을 먼저 내적으로 향유해야 한다는 '행복 역설 2'도 아니다. 불행한 의식들, 불행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정치적 퍼포먼스, ‘내가 이제껏 투자하고 희생한 게 얼마인데, 네가 무슨 권리로 내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에 지나지 않는다.


추상적인 ‘행복’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치정당에 대한 편견과 정치에 대한 좁은 해석에 대해 비판을 하고자 함이다. 길거리 투쟁이 아니라, 정치정당을 하면서부터는 24시간이 모두 다 정치적 행위이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는 시간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일부 진보파들의 위기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진보 좌파가 그동안 얼마나 적극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의미, 소위  콘텐츠라는 측면에서 비-당원들에게 권유할 만한 ‘행복’의 자기 내용이 없었는가를  전 국민 앞에서 뚜렷하게 ‘퍼포먼스’를 한 셈이다. 통합진보당이 아닌 다른 세력들, 좌파 단체들과 진보신당도 그 예외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이미  의식있는 진보적 시민은 다 아는 사실, 소위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다. 행복이라는 추상적 단어보다 정당의 책임능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 즉 ‘자기들 밥그릇도 사이좋게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갈등하는 다양한 계급계층들의 밥그릇을 ‘정의롭게’ 나눌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갖출 수 있겠느냐? 진보진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능력 평가들보다 더욱더 중요한 내부적인 평가와 교훈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행복’의 정치적 씨앗들을 우리 스스로 창출하고 잉태하고 퍼뜨릴 정치적 권능이 있는가이다. 선거, 거리투쟁, 선전, 라디오, TV 매체 활동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이러한 운동권 행복 역설들을 우리들 스스로 해결하고 답하는 것이다. 메마르지 않는 좌파의 정치적 샘물의 모세혈관들은 바로 우리 스스로 힘겹게 만들어낸 행복이다.


 

Comments '4'


조반유리 2012.07.07 21:52

원시님의 긴 침묵 끝에 드뎌~ 나오는군요~~ 기다렸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공감가는 글이네요, 특히 다음의 서술들은 더욱~ 


<메마르지 않는 좌파의 정치적 샘물의 모세혈관들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 힘겹게 만들어낸 행복>이라거나,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 당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행복요소들을 자기들끼리 창출해내고 공유하고 직접 체험을 해서, 비당원들에게도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권 스스로 행복해야 하고, 정당 활동 자체가 전 사회로 퍼져 나갈 행복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어야 한다>

 

저는 이런 행복의 씨앗을 잉태한 조직, 정확하게는 해방의 이념(비젼/이념 등)과 행복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매개할 조직으로서의 좌파정당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중의 집이나 대안공동체 등 대안운동들의 정치적 지향들과 함께 가는 "새로운 형식의 좌파정당"에 대한 프로그램, 그것도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실 민주당 개조 프로젝트나 확고한 선거정당의 길을 가는게 차라리 솔직한 답변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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