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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신자유주의적 '퇴행적' 기본소득 도입 비판 - 캐나다 빈곤추방연대

by 원시 2017. 9. 20.

존 클락(John Clarke)


캐나다 온타리오주 기본소득은 ‘퇴행적’이고 ‘신자유주의’를 강화하기 때문에 캐나다 온타리오 빈곤추방 연대는 이 기본소득 정책을 반대한다.


캐나다 공공노조 (CUPE 큐피) 기본소득 반대 서명,

영국 “복지삭감 반대를 위한 장애인 협회(DPAC)” 기본소득 반대 서명

영국 노동당이 기본소득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 


1. 캐나다 “온타리오 빈곤추방연대 (OCAP)”는 왜 기본소득 도입을 ‘신자유주의적’ 공격이라고 명명했는가?

기본소득 정책들이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강화시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the English Poor Law, (영국 빈곤 구제법) 경우, 소득 지원 정책이 낳은 효과는? 최저 임금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는데 기여할 수준만큼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을 지원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복지삭감 ‘긴축’형 정부와 제도들이 ‘기본소득’을 호의적으로 바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보다 더 많은 평등,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의 교정 작업, 노동자들의 단체협약권 강화 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긴축정부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력 시장 바깥에 존재하는 최빈곤층에게 제공되었던 불충분하지만 자산테스트 이후 제공하는 보조금 대신에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이다. 


복지삭감 긴축형 정부에서 추진하는 기본소득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우선 이러한 기본소득은 고용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보조금 지급 효과를 낳을 것이고, 그 재원은 세금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또한 공공 서비스 복지 삭감이 그 기본소득 재원 출처가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본소득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특정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더러, 캐나다 ‘시민권’이 없는 수많은 이민자들은 ‘퇴행적 기본소득’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퇴행적인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향후 우리들이 관찰하게 될 광경은 쥐꼬리만한 기본소득을 껴안은 사회인프라의 쓰레기더미일 것이다.


기본소득과 관련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파일럿 프로젝트들은 이러한 우리의 우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2. '진보적 기본소득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하지만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이러한 퇴행적 기본소득 모델이 더 발전될 수 있고, 진보적이고 해방적 기본소득 형태가 가능하고, 현실적인 목표로 설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기술발달로 인해 ‘노동없는 미래’ 사회에 기본소득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결합되어 있다. 


다시말해서 기본소득이라는 보편적 소득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충분히’ 제공될 것이기 때문에 ‘임노동 소득’은 필요가 아니라 ‘선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사회적 실천과 행동들만이 이러한 기본소득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반면에 ‘진보적 기본소득’ 주창자들 대부분은 자본가들과 국가가 우리들이 대규모로 로비 청원을 하면 그 기본소득 정책들을 수용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 같다.


우리 (캐나다 온타리오 빈곤추방 연대)가 볼 때는, 현재 경제 체제의 변혁을 고려치 않더라도, 참다운 그리고 재분배 효과를 가져올 기본소득은 현재 경제 체제의 제약조건들 하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첫번째 지난 수십년간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굳혀진 사회체제 권력 관계는 불균형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전체 의제들을 뒤바꿀 수 있는 사회개혁들을 단행하는 것이 현재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 문제를 넘어서서, 진보적 기본소득론자들이 제안한 방식대로 경제 강제요소들(coercions) 제거해버린 소득 지원 정책들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되돌리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국가는 노동자계급들이 파업할 수 있게끔 무제한 파업기금을 제공하게 될 것이고, 자본주의적 고용 시장의 기초가 붕괴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어떤 가능한 사회 정책 입법화 능력도 뛰어넘는 혁명적 변화와 사회체제 형태 변화를 의미한다. 

만약 기본소득이 이러한 사회해방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슬프게도 진보적 기본소득론자들은 미국 실리콘 밸리 억만장자들이 옹호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긴축’형 정부들이 착수하고 있는 퇴행적인 기본소득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진보적 기본소득론자들이 ‘퇴행적’ 기본소득론자들과는 달리 다른 희망을 이야기하더라도 “암퇘지 귀가 비단 지갑이 될 수는 없다.(가치가 없는 볼품없는 것으로부터 소중한 것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원래: make a silk purse of a sow's ear 볼품없고 가치없는 것으로부터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내다 ;the sow’s ear will not become a silk purse)


진보적인 기본소득에 대한 신념이 적재적소에 위치하고 있지 못한다면, 우리가 전도유망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사회적 복지정책들을 갉아먹고 노동자 착취율을 강화시키는 악성 정책들에 저항해 싸우는 방어투쟁들을 전개해왔다. 


우리가 현재 제시할 수 있는 대안들은 광범위한 사회저항 운동을 만들어내는 강고한 행군,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저항하는 노동조합들을 새롭게 부활시키고 노동자 정치투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롭고 확장된 접근가능한 공적 서비스 확대를 쟁취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 권리를 증진시키고, 사회적 기준에 적합한 ‘임금’이 지급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소득 지원 체제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야 하고 (adequacy), 누구나 다 누릴 수 있어야 하고 (full entitlement), 인권침해적 규칙들이나 도덕적인 감시체제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개혁운동과 투쟁들 속에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른 사회상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우리의 운동은 진보적 기본소득론자들의 스펙타클 (거대한) 꿈을 꾸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 운동은 신자유주의를 회피할 수 있는 사회적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줄기차고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진보적으로’ 환영한다는 것은 매우 큰 실수이다.






https://ocaptoronto.wordpress.com/2017/09/18/the-neoliberal-danger-of-basic-in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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