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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국힘_한나라당_새누리당_자유한국당

박근혜 통치, 정윤회는 정말 최후의 보디가드일까?

by 원시 2014. 12. 8.

박근혜식 보수 정치 철학을 수립하지도 못하고, 심리적 보디가드 영화 찍다 임기를 마치다.


박근혜 정치관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총격 사망,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총격 사망에서 비롯된다. 박근혜 정치 심리학의 최고 목표는 무한한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이나 대구 구미도 믿지 않는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 제자인 김재규의 총에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22세 어머니를 잃고, 27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보통 여느 20대 여성이면 연애, 직장, 친구들과의 희로애락을 체험했을 것이다.그러나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20대를 보냈고, 그 상처는 세상 어떤 슬픔도 그 상처의 깊이를 초월하지 못한다. 


박근혜는 2014년 평화롭고 제도적인 정권 교체시기에도, 청와대에서 무사히 죽지 않고 걸어나가는 꿈을 꾸거나 반대로 목을 치러 들어오는 정치 세력들의 구둣발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 새롬이 희망이 두 진돗개는 이러한 잠재적 심리적 살해 위험을 방어하는 심리적 군대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대통령이라는 것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지배층이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어떻게 박근혜를 내세워 이어가고 확대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전수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는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 - 정치 동맹의 부품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의 개발독재 리더로서 기대는 박근혜 옹립자들도 새누리당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지배층 (자본과 결탁하거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지배층)은 사실 박근혜를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대선 3대 공약 '복지, 경제민주화, 창조경제'는 일종의 정치적 위장전술이었다는 것은 이미 예측가능했다. 2010년 빅텐트론을 들고 나온 386표 민주당계열 인사들에게 경고했듯이 박근혜가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로 나오면, (국정원 대선 개입이 있었지만)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박정희에게 많이 배웠다. 삼선 개헌할 때도 "이번이 마지막 표를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는 박정희, 그 이후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획책했다. 박근혜는 박정희로부터 국민을 속여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정신을 물려받았다. 이런 '속임수' 계략은 박근혜 몸에 배여있고, 거의 일체화되어 있다. 


박근혜는 이미 국정 조타, 나침반을 잃었다. 세계 경제 슬럼프를 고려하면 딱히 지금보다 경제가 좋아질 기미는 없고, 고용없는 성장도 어려운 판국이다. 이미 박정희식 성장은 포기했고, 그렇다고 해서 정의로운 '분배'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박근혜의 목표는 '지금 그대로, 무탈하게, 아무런 총성도 들리지 않고 딱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통치 governance' 스타일은 행정부 수장과는 거리가 멀다. 행정부 공무원들도 신뢰대상은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조응하는 관료주의적 행정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박근혜는 행정 관료가 아니라, 개인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그런 측근 밀실을 만들어놔야 가장 최악의 경우 최악의 죽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 보수파들의 나약함과 무능을 엿보고 있다. 박근혜는 대선 슬로건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라는, 핵심 보수 세력 35%를 응집시키고, 그 외곽 세력 중도보수 25%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박근혜의 보수철학이 목표를 애초에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박근혜 개인 통치 스타일이 1974년 어머니 총격 사망, 1979년 아버지 총격 사망으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복수' 정치로부터 자기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그 틀안에 갇혀서, '복수'를 대비하는 '보디 가드' 정치를 너무 열심히 실천해 버렸다는 점이다.


정윤회가 등장하는 이유도 그렇다. <비열한 거리>가 정치 속성이고, 고향 선후배도 부하도 못믿는 세계가 <청와대> 권력이자 정치라는 것을 박근혜는 잘 알고 있다. 진시 황제 순장, 그것도 자발적인 순장을 감행할 <보디가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정한 보디가드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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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진정한 보디가드는 누구로 판명날까? 이 아무것도 슬프지 않는 여자의 보디가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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