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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로벌 슬럼프 서평

[미디어오늘] 세계적 하청 시스템, 위기는 극복된 게 아니라 변형됐을 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6.


세계적 하청 시스템, 위기는 극복된 게 아니라 변형됐을 뿐
[서평] 글로벌 슬럼프, 회복되는 경제 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이윤에 대한 청구권의 형태로 존재하는 자본가치 부분, 다른 말로 대출·주식·채권 등 다양한 형태로 표시된 지불 약속 증서는 자본의 미래 예상 수입이 하락함과 동시에 철저히 평가절하되고 만다. …… 미래의 특정한 날에 지불하기로 한 약속들이 서로 맞물려 수십 수백 군데서 어긋나고 만다. 나아가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자본의 발달과 함께 융성하게 된 금융체제 자체의 붕괴를 부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위기 상황을 초래한다.” - 칼 마르크스


19세기 쓰인 오래된 문장을 길게 인용하는 목적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특권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를 탁월한 예언가로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동역학에 대한 그의 분석을 곱씹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맥낼리는 오늘날 고통스러운 경제위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본다. 그는 이 위기가 20세기 헤게모니 국가 미국을 포함해 세계체계 중심부에 위치한 국가들과 그 주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본의 빚을 국가의 빚으로 바꾸는 자본-편향적인 위기 극복 과정을 두고 (오바마의 경제 자문위원 래리 서머즈를 인용해) ‘회복되는 경제 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문장을 반전시킨다. “인간의 삶에서의 후퇴가 있기 때문에 경제 통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백한 모순을 착목한 맥낼리는 지금의 위기를 ‘글로벌 슬럼프’(Global Slump)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와 그 특수한 정세(conjuncture)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은 좌와 우가 제각각 다르고, 2008년 가시화된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과 전망도 엇갈린다. 맥낼리는 ‘위기를 극복했다’는 주류경제학자의 견해를 단호하게 반박한다. 그는 유로존 내 국가들의 위기를 거론하며 “은행권 위기는 주권국가의 채무 위기로 그 형태가 변화된 (것)”이며 “위기는 형태만 변화되었을 뿐이다”고 단정한다.

맥낼리는 ‘만성적 위기론’을 주장한 급진적 정치경제학자에 대한 반론으로 1982년 이래 25년간 꾸준히 상승한 이윤의 추세를 보여준다. 좌파 지식인들이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한 이후 40년을 통틀어 불황으로 보는 분석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기술적·공간적 재구성을 무시하거나 혹은 철저히 평가절하했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반증’임과 동시에 ‘회복’인 것이다.

맥낼리는 자본주의 재조직화로서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세계적 하청체계의 강화’와 더불어 ‘금융화’로 보고, 이에 조응하는 통치전략으로 ‘노동 규율 강화’와 ‘인종·여성에 대한 억압’을 든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성과 인종을 기준으로 분할하면서 전체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세계적인 금융적 축적체계’이란 뜻이다. 그리고 맥낼리는 위기의 원인으로 ‘자본의 과잉 투자’, ‘이윤율의 저하’를 지목한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진단법과는 다르다. 브레너의 ‘장기 침체’나 하먼의 ‘공황’ 개념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팽창을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맥낼리는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세계경제를 이해할 때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몇몇 나라나 경제 대국들의 총합만을 살펴서는 안 된다는 것’, ‘세계 자본주의 평가는 국민경제 지표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것’, ‘2차 세계전쟁 이후 호황에 견줘서 이보다 못한 경우를 모두 공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5년간 신자유주의가 “⓵노동자 계급 조직들을 공격하고 개발도상국의 주권을 훼손함으로써, ⓶착취율을 증가시키고 제조업의 물리적 공간들을 재배치함으로써, ⓷거대한 전 지구적 신규 산업예비군을 창출함으로써, ⓸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대규모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⓹린 생산방식과 같은 작업조직과 노동 강화의 새로운 체제와 신기술들을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장 물결을 창출해 냈다고 분석한다. 또한 맥낼리는 “1980년대 초반 이후의 이윤율 상승 추세는 자본주의적 경기팽창 물결을 실증해 주었다”며 “이러한 변화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본주의 금융의 대대적인 재조직화가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맥낼리는 신자유주의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저항하는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시작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주변부 국가부터다. 볼리비아에서는 2000년 수도 민영화에 반대한 운동이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적녹동맹’에 원주민이 결합해 새로운 ‘계급’을 보여줬다. 과거 프랑스의 노예 식민지였던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에서는 2009년 초반, 수만 명이 수십 일 동안 대중파업을 해 최저임금 인상 등 더 나은 노동 조건을 만들었다. 2006년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에서는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빈곤에 저항했고, 스스로 ‘민중의회’를 꾸려 도시를 운영했다. 맥낼리는 이 투쟁을 1871년 ‘파리코뮌’에 빗대어 ‘오아하카 코뮌’이라고 한다.

중심부 국가에서도 저항은 이어졌다. 맥낼리는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국가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한다. 특히 흑인, 이주민, 노동조합이 결합된 새로운 운동주체들과 이들에 의한 새로운 운동방식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로 여기서 맥낼리는 자신의 역할을 끝낸다.

맥낼리는 ‘이윤압박설’이나 ‘위기순환론’에 빠지지 않고, 세계경제를 분석단위로 설정하고, 이윤율의 운동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든 ‘새로운 계급(투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세계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자본주의의 동역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윤율의 운동’을 주장의 주된 근거로 삼으면서도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이론적 모델’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맥낼리 자신에게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시간대가 부재하다는 데 기인한다. 그에게는 이윤율의 이론 궤도가 없기 때문에 경험적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슬럼프’는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강상구/문화과학사/2000)을 읽은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사 강의’(백승욱/그린비/2006),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윤소영/공감/2006)과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http://bit.ly/sFH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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