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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2008

니네들은 또 뭐가 다르냐? "뭐가 새로운 진보냐?" - 진보 개념 정의

by 원시 2018. 8. 26.

2008.03.18 15:52


니네들은 또 뭐가 다르냐? "뭐가 새로운 진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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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 보다가 잠시 쓴다.  "진보"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핵심 단어 "진보"를 원론적으로나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분명히 물을 것 같다. "너희들은 또 누구냐? 민주노동당과 뭐가 다르냐? 왜 따로 나왔냐? 뭐가 그럼 새롭다는 것이냐?" 


진보정치는 체험이다. 평등, 생태, 평화, 연대라는 4가지 가치들과 정치적 지향점들을 내걸었지만, 이것은 기계적인 나열이다. 서유럽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신좌파 내용들은, 사회복지체제 하에서 터져나온 신좌익 혹은 신사회운동들이다. 그 사회복지체제를 '보수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타협물이라고 비판하면서 나온 게 신사회운동들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을 포함해서. 한국의 진보운동은 두가지 과제들을 동시에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진보 내용은 어차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지만 말이다. 


지역 주민들은 민주노동당 자주파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잘 모른다. 왜냐하면, 집권당이 되어서 '종북주의(친-평양정부 노선)' '패권주의 (다수파의 무능과 횡포)'를 그 주민들이 겪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처럼 직접 동원되거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것도 아니다. 


지역주민들이 민주노동당에 표를 안주고, 권영길에 3% 준 이유는, 4년간 너희들 하는것 봤는데, "피부로 뭐가 와 닿는 게 없다" "뭐하는지 모르겠다" 등이다. 다행이다. 만약에 민주노동당 자주파 노선이 실제 인민의 삶의 공간 속에서 구현되었더라면, 한국 좌파는 30년 동안 지하운동해야 했는지 모른다. 


서설이 길어져 버렸다.


진보는 체험이다. 지역주민들이 체험을 해봐야 '진보'에 투자하고 기대도 할 것이다. 

진보는 자기 동네 다리 (철근 20개 넣어야 하는데 10개만 넣고 10개 값은 뇌물로 가버리면 이거 진보 아니다), 동네 학교 운동장, 어린이 놀이터, 아스팔트, 마시는 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체험이니까.


세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니네들은 무엇이냐? 뭐가 새로운 진보냐? 그러면 거시적으로는 "사회복지 망 건설을 통한 실질적인 민주주의 실현"과 "새로운 지역자치 운동의 주제들"의 결합이다. 


두번째는, 지역 주민 자치는, 자기 동네 역사를 모르면 불가능하다.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 (urbanization도시화)를 통해서 자기 동네 발달사, 변천사를 진보진영이 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청, 동, 군, 시 등 각 지역에서 진보신당의 '정책'을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지역 자치 분쟁은 "저기에 진달래 아파트 들어서서 집값 떨어지다 오르다"와 같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다리의 역사 (교량), 아파트 단지, 학교, 병원, 경찰서, 소방서, 시장, 다들 자기 역사를 지녔다. 새로운 진보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 진보신당"의 관점에서, 왜? 저 다리가 더 낫냐? 아파트가 더 낫냐? 이런 구체적인 논쟁을 하면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세번째, 진보 개념은 사실 관점에 따라 다르다. 노무현을 우리가 '사이비 진보'라고 비판했지만, 소위 자유 진보 (Liberal Progressive) 세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정치적 기획과 실천에서 차이를, 위에서 말한 체험의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진보' 개념이 현실에서는 힘을 못 얻는다는 것은 당연하니까. 지역에서도 정치적 기획을 하고 주민들 대상 사업을 펼치더라도 "왜 우리 내용이 더 좋은가? 더 나은가?"라는 윤리적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질 필요가 있다.


욕심내서 다 할 순 없고, 우리 것이 '하나'라도 더 낫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체험하게 만든다. 


중소기업체가 대기업 상품과 경쟁해서, 이길려면, 그 빈틈을 비집고 가야 한다. 

소비자들이 쉽게 자기가 쓰던 제품을 안 바꾼다.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다가, 롯데 초코파이 잘 안 먹는다. 

진보신당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 놓은 제품들을 (투표행위까지) 유권자들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구호부터 "총선 승리"만 외치지 말고, 국민들에게, 자기 주민들에게 '체험할 거리'를 이야기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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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원시 4.00.00 00:00


새로운 진보를 말하기 전에 "진보"라는 말의 의미를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다시 올린다.


 45784 [진보개념] 손석희-노회찬 인터뷰 중에서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4-04-20 21:13:07 조회 : 801 


진보라는 말이 나왔길래 잠시 생각해봅니다. 


⊙ 노회찬 /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 진보라는 말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 이 시대 진보는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 봐야된다고 보는데 민주노동당이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가치라는 것은 민족 문제에 있어서 그리고 분단문제 해결에 있어서 평화, 절대적 평화적 방식과 또 이 평화를 조속히 실현하는 문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 문제에 있어서 평등을 지향하는 것, 특히 사회적 재분배를 통한 평등의 실현을 중시하고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가보안법이나 여러 가지 반인권적인 제도와 관행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손석희 시선집중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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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사무총장님이 쓰고 있는 <진보>라는 것은, 정치적 가치로 좁게 쓰였다. 우리는 진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이고, 어떠한 고민을 더 해야 하며,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잠시 생각해 봅니다. 


첫번째, '진보'라고 했을 때는, __________보다 낫다 _________보다 향상되었다. 라는 말로도 씌이고, 예를 들어서 낫보다는 트랙터가 벼베기를 더 빨리 할 수 있고 많이 할 수 있다.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온 기술의 발달 결과로, '진보'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석유를 써야 하는 트랙터 도입으로 엔트로피와 공기 오염은 증가함으로 뭐 그게 '진보'냐? 라고 다른 각도의 '진보' 기준을 가져다 댈 수도 있습니다. 이 논의는 다른 논의이므로 여기서 배제하고요. 


진보는 '역사적으로 ____________발전했다."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는데, 그럼 '진보'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지금 세계 역사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가는데 (종착역) 그런데, 이런 진보의 방향과 역행하는 사회 세력은 누구냐? 이런 부분을 염두해 둬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진보'의 반대 세력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겠지요? 


<문제> 진보의 기준이 뭐냐는 것이 우선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엄밀하게 정의하고 '진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 발전기준이 뭐냐? 이런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부담은 분명히 있는 것이고, '진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실현되는 이성'이라는 강한 전제 위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이성>이라는 주제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어떤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은 할 수 있으니까요. 두번째 노선으로 갈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이성이나 어떤 역사 진보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도, 사회정의나 자유/평등/자립/통일 등 사회정치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그 운동의 기본적 이념은 윤리적 전제들을 깔고 있기 때문에, '진보'와는 다른 형태로 이념에 대한 정당화 연습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윤리라는 것은, 고정화된 삼강오륜과 같은 어떤 도그마가 아니라, 물질적-정치적 구조 변동이나 문화적 의식의 변화와 동시에 움직이는 인간의 판단의 기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안> 잠정적으로 전 '진보'라는 말을 가급적 구체적인 정치 용어로 바꿔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주장과 정치적 서술들에 대한 윤리적 정당화 작업 역시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과학 science >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합니다. 독일 말 번역어 Wissenschaft (인문과학, 자연과학 다 합친 말, political science 이런 것도 다 그런 맥락입니다)


 그런데, '민중적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과학적'인가? 그럼 산수나 '자연과학'과는 어떻게 다른 '과학'인지를 말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만들어 놓고 저질러진 실책을 다시 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요새는 그 '과학 과학 하시던' 분들이 다 어찌된 게 한나라당 가 있고 (김문수 일당) 그 보좌관에다, 또 반대로 __대장님을 외치던 분들은 '열린 우리당 꼬마 수령님들'이 되어있더군요. 그 과학의 결과 자칫잘못하면, 80년대 자칭 '과학적 사회주의'이름하에 지난 소련사회주의가 범했던 정치적 범죄 (특히 외교나 유 에스 알 내 소수민족 탄압은 거의 사회주의 이념과 정반대로 실천함...그 증거는 도서관 1 트럭분 책도 넘음)을 묵과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사회과학에서는 과학이라는 말보다는, '증거' '논거' '통계' '사회적 필드 조사', 그리고 그 전제들을 문제삼는 '윤리학' '관점' '직관'등으로 대체되어 있고, 이런 주제들을 더 자세히 다루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80년대는 데모하느라고, 소련이나 중국 북한에서 수입된 것, 혹은 일본 공산당원들이 보던 책 번역해서 봐서 정신없이 무반성적으로 거기 씌여진 '단어'를 외웠지만, 이미 그런 단어들은 지난 100년간 세계사와 국제 정치사를 반영하기에는 너무 그릇이 적고 개념들은 폭발되었다고 봅니다. 


아직도 과학 외치시고, 그 과학이라는 형용사를 '사회주의'와 결합시키려는 분들은 오히려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지구과학' 등이나 '수학'을 배우셔가지고, 수학적 사회주의, 혹은 생물학적 사회주의 이런 단어를 쓰는게 낫다고 봅니다. 


아예 정확하게 '예측'을 해버려야지요. 공리를 사용해서, 순서도로 알고리듬 만들어서, 답이 똑 떨어지게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과 동기, 규범을 수반하는 사회적 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에서 '연역적 가설모델'은 분명 한계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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