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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노동자 자주관리 ,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땅(떼흐) 마담, 생산성 향상이 계급투쟁을 약화시키는가?

by 원시 2012. 7. 16.

철이님/ 4가지 주제로 조금 확장: 땅(떼흐) 마담, 생산성 향상이 계급투쟁을 약화시키는가?
원시

http://www.newjinbo.org/xe/2773992009.03.16 18:58:195706



철이님의 문제제기: [자본가]도 노동한다. 기계도 가치를 창출한다. 

[연관 주제 1: 노동자의 자주관리] 

조금 실천적인 주제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노동자 자주관리 (진보신당 당 강령 세부 조항을 보니까, 노동자 자주관리라는 표현을 직접 썼더군요)와 관련될 수 있는데요. 실은 제가 아는 몇 분이서, 노동자 자주관리를 실험했습니다. 자동차 수리업체를 노동자 7-9명이서 같이 공동인수인계를 했습니다. 몇년전에 아르헨티나에서 유행한 "노동자들의 공장 인수"처럼요. 

그런데, 결과는 망했어요. 회사 창립, 고사 지내고, 시루떡 돌릴 때까지는 정말 저도 마음이 부풀어있었고, 기대가 컸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무의미하다 이거 아닙니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를 "계획경제"에서 찾는데요, 한편으로는 일리도 있지만, 이미 수정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건,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건 뭐건 간에) 체제 하에서, 계획을 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미 삼성, LG 경제연구소가 있듯이, 과잉생산- 가치 현실화의 위기를 사전 예방하고, 생산-유통-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자본가들도 이제 "제 멋대로 무한 경쟁"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게 말과 표현이 달라서 그렇지, 구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 (planning board)와 유사한 측면도 많다고 봅니다. 

대안의 경제를 생각하더라도, "경영자" 그게 노동자 대표건, 전문 경영인이건, 소위 경영자 (manager)에 대한 논의는 필요할 것입니다. 


[연관 주제 2]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구분:

해리 브레이버만 (Harry Braverman)이 [노동과 독점 자본 : 20세기 노동의 타락]에서 설명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non-productive labor)와의 구별과 연관될 것 같습니다.

생산적 노동은 "자본가에 의해 고용된 노동자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을 지칭하고, 비생산적 노동은 직접적인 잉여가치 창출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생산 양식을 유지/재생산하게끔 하는 노동을 가리킵니다. 맑스가 말한 M-C-M' 에서 M' (s + v + u ) 잉여가치의 분배과 관련된 노동을 비생산적 노동이라고 해비 브레이버만은 설명합니다. 

물론 자본가의 노동이 비생산적인 노동 범주에, 개념 정의상, 포함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노동" 전반에 대한 범주 구분을 할 때, 생산/비생산적 노동을 구별하는 전략도 생각해볼 만 하지 않을까요?

[맑스의 답변 : 자본 3권: 소위 삼위일체 공식]

철이님의 일관된 주장은 맑스가 [자본 3권]에서 설명해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맑스의, 혹은 맑스주의자들의 [지대]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있어왔고, 지금도 우리가 또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만.

"자본은 이윤을 창출하고,
토지는- 지대를 만들고,
노동은 - 임금을 낳는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신비화이고, 사회관계들의 물신화이고, 물질적 생산관계들과 이러한 생산관계의 역사적 사회적인 특질들을 구별하지 않고 혼동하는 것이다. 사회적 특성을 지니고 또 동시에 단지 사물들인 "자본"이라는 신사와, 땅(떼흐)라는 마담에 의해 고통받는 주술과 같은, 뒤틀리고 전도된 세계이다.... 이러한 삼위일체(자본-이윤/ 토지-지대/ 노동-임금)는 이들 간의 내적인 연관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또한 이 삼위일체 공식은 지배계급의 자기 이해관계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이 삼위일체는 지배계급의 소득의 원천의 영구적인 자기 정당화와, 자연적 필연성을 설파하기 때문이고,하나의 도그마로 확립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미]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 계급투쟁 물타기와 생산성 향상과의 관계:

1970년대 독일 하버마스가 [사적 유물론의 재구성]에서, 반성적 노동 (reflexive Arbeit) 개념을 쓰면서, 맑스의 노동가치론이 후기 자본주의에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후기 자본주의는, 과거 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와는 달리, 교육과 같은 반성노동이 맑스식의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맑스가 말한 단순 노동자들의 근육/육체노동으로 만들어진 잉여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잉여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성 향상) 맑스의 이윤율 경향적 저하 (TRPF)를 상쇄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맑스의 이윤율 p' = s / v + c = s/v * c/v + 1 에서 s/v 부분을 증가시키는 요소로 반성적 노동, 교육, 과학기술 발달을 듭니다. 물론 맑스도 이윤율 경향적 저하를 가로막는 요인들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만. 

그리고 실제로, 독일이나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체제 하에서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자본가의 이윤율 상승 유지, 이 두가지를 다같이 만족시키는듯이 보였습니다. * 계급투쟁이 사회위기로까지 폭발하지 않으니까요) 노동자계급의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의 포섭, 코포라티즘의 정치적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의 정형적인 토론 주제, 논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철이님이 주장하는 것 [자본이나 기계가 노동가치를 생산한다]을 들으면서, 사고를 확장시켜 봤습니다.

아니, 철이님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철이님 주장의 정치적 효과나, 정치적 통찰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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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0.00 00:00:00철이

원시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좀 미뤄야겠습니다. 으... 가치증식 노동을 해야 먹고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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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0.00 00:00:00원시

철이님/ 하하...가치증식 !! 에서 넘어짐 천천히...편안하게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철이님이 제기한 주제들가지고 지난 60년간 길게는 100년간 난리를 쳐 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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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0.00 00:00:00철이

원시님, 이제야 답변 올립니다. 제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재정립하는 데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것에 생태주의 관점을 통일시키는(하나 더 덧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작업과 관련된다는 생각입니다.

 잉여가치설에 뭔가 현실과 맞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그것에 아직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 운동이 새롭게 변화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 또는 그것의 극복이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누가 더 많이 갖느냐의 분배 문제 가지고 진행하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 사회운동, 그렇게 더 많이 갖겠다는 투쟁은 필연적으로 다른 더 소외된 계급을 더욱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특히 자본의 확대재생산 경향을 더욱 부채질함으로써 환경파괴의 원인이 된다는 점 등이 제가 지금 대충 갖는 생각입니다. 정립하는 과정이지요.

 다른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데, 이런 생각과 연관하여 이곳 쟁토방에 제가 올렸던, 제가 바라는 대안사회(사회주의)의 상에 대한 글 "공유민주주의"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파편화되고 낮은 수준의 생각이지만 계속적인 공부와 사유작업을 통해 극복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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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0.00 00:00:00철이

원시님이 하신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변해보겠습니다. 1. 노동자 자주관리 문제는 저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특히 제가 구상하는 "공유민주주의 사회"의 경제 주체로 협동조합, 공공기업, 국유화 기업 등과 함께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기업들로 이루어진 경제, 사회체제의 주요구성 인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히, 흔히 제3의 길이라 이야기되고 있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어떤 비슷한 기업들이 있는지 조사하고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쉽게 생각할 문제는 절대 아니죠) 2.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구분에 관한 질문은 제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해서 별다른 답변은 어렵겠습니다. 단,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범주 구분 전략보다는) 자본 소유에 따른 계급 구성과 차별의 발생(저는 우리 사회를 혈통신분제는 넘어섰지만 자본신분제 사회로 보고 있습니다)에 더욱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좋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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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0.00 00:00:00철이

다음 이야기로, 하나 건너뛰어서 [정치적 의미]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 계급투쟁 물타기와 생산성 향상과의 관계는 제 눈에 띄는 이야기가 하나 있네요. 하버마스가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생산성 향상)로 이윤율 경향적 저하를 상쇄한다"고 말했습니까?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과 굉장히 밀접하네요. 아니 똑같은 생각이네요. 왼쪽날개님과 쪽글대화에서도 제가 한 이야기지만, 일단 마르크스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상쇄하는 자본가들의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를 예로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불변자본 비용의 절약이 있지요?(정확한 표현입니까?) 그런데 불변자본의 절약 정도로는 지금껏 자본가들이 그토록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큰 관심을 갖고 비용을 투자한 사실을 설명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물론 생산성 향상은 특별잉여가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상쇄노력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데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구요. 만약, 자본도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저의 생각이 맞다면, 마르크스의 불변자본 중, 제가 마구 만들어낸 개념인 <생산적 생산수단으로서의 가변자본>이 원래 가변자본(노동자)으로 옮겨져 함께 가변자본의 항을 형성하면, 과학기술 발달이 어떻게 이윤율 저하경향을 상쇄하는지 설명이 되며, 그간 자본주의 역사에서 보여준 현실과도 정합성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죠. 

하버마스가 과학기술이 상쇄요인이 되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 있습니까? 혹시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또한 우리 노동운동 문제에 있어서도 일부 노동자들(대기업, 민주노총의 일부)의 자본에 대한 포섭도 비추어 생각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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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0.00 00:00:00철이

마지막으로 [맑스의 답변 : 자본 3권: 소위 삼위일체 공식] 문제. 제일 할 이야기도 많고 생각도 복잡한 문젠데요... 마르크스의 말, <자본은 이윤을 창출하고, 토지는 지대를 만들고, 노동은 임금을 낳는다

.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신비화이고, 사회관계들의 물신화이고, 물질적 생산관계들과 이러한 생산관계의 역사적 사회적인 특질들을 구별하지 않고 혼동하는 것이다> 일단 토지는 지대를 만든다는 아웃시키고요(토지는 사회화가 맞고, 그 사적 점유, 사용에 대해서는 지대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게 토지-지대의 필연성을 뜻하지는 않죠). 자본이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태까지 별 의문을 갖지 않는 명제였죠. 하지만 자본(생산적 생산수단)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맞다면 마르크스의 말은 틀렸거나 굉장히 정치적 수사가 되는 거겠죠. 그러나 운동은 거짓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도 아니구요). 저는 접근을 달리 해야 한다고 봅니다. 누가 노동했으니, 누가 얼만큼 가져가야 한다는 것에서 중심이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 이동 방향은 좀더 논의를 전개시키며 찾아보고 정립했으면 합니다.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생산성 향상의 원리2 - 자본, 과학기술, 기계의 물신성에서 탈피]라는 제목으로 구상하고 있는 새 글을 봐주세요.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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