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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김영삼의 '세계화' 글로벌라이제이션, 자본의 세계화와 노동억압 정책

by 원시 2015. 12. 15.

언론기관과 연구소에 근무하시는 어떤 페친이, 김영삼 추모 언론에 대한 문제점들을 적으셔서, 몇 마디 적어봅니다. 고인의 '정치적 노고'는 그 기여대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고, 특히 이명박-박근혜의 패권주의적 정치와 노골적인 재벌-자본측 밀어주기와 반-노동자정치, 언론 미디어의 싹쓸이 탄압 등 정치적 배경 때문에, 반-박근혜 정서가 김영삼의 서거와 추모 속에 '투영'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평하게 김영삼의 정치적 과오와 업적은 나눠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건 정치적 논평의 상식이니까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약간 무덤덤한 평가일 수 있겠습니다. 몇 가지 메모를 하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 시대의 오류들


1.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한국의 강자와 부자들은 세련된 소비자로, 초국적 자본은 자유로운 이동, 한국노동자들과 아시아 노동자들은 더 값싼 노동력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노-노 갈등과 노-노 내부 임금 격차가 커지게 된 출발점이고, 이건 군부시대 32년간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쑥고개 넘어가는 버스 속, 1995년, 김영삼은 호주 다녀오면서, "우리도 세계화다 !" 그 이후로, '자본의 세계화'와 '노동억압정책'은 날치기로 발전하고, 당시 '자본주의 시장 만세'논리와 '어메리칸 스탠다드' 금융화가 정책적 기조로 자리잡고, 재벌이 금융권,은행업을 직간접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난 97년 IMF 위기에 대해서 김영삼정부에게 약간 과도한 책임을 부가한 측면도 있다고 보지만, 그 빌미가 된 시점이 YS식 95년 세계화,한국자본가의 내적 관점에서 봐서도, 정말 '깡통' 준비에다, 일상생활에서는, '영어'와 '해외 여행' '해외 연수', 바람이 불고, 그 때부터 대학생들이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영어 연수붐이 불었다. 이 때부터, 취직자들이 자기 돈 내고, 미리미리 자기 노동력 가치를 올려서 '노동자-노동자' 갈등을 취업 직전부터, 그 전투를 벌이는 계급내부 자기 파괴, 즉 정체성 훼손이 무지막지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직장 구하는데, 기업이 져야 할 부담을, 한국 대학생들이 1년에 3천만~4천만원씩 어학연수 부담을 지고, 이 돈이 없거나 부족한 구직자들은 '취업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정치적 측면, 김영삼 통치 행태), 한국 자본주의 발전정도와 시민사회 민주주의 발달 정도 (87 6월 항쟁을 경험한 이후)를 고려하면, 김영삼 개인 통치가 아닌, 상도동계라는 반-박정희 정치세력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 정치 경제를 설계하는 싱크탱크'라도, 1개가 아닌, 4~5개는 만들어서 정치를 했어야 했는데, 김영삼은 사실 박정희 '카리스마'를 흉내낸 것에 불과했다.


1995년 세계화 만세삼창 이후, 20년 후, 지금 한국은 어떤가? 한국전쟁이후, 최고로 민심이 살벌해지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자살하는 '인의예지'가 완전히 실종된 자기 파괴적인 나라가 되었다. 박근혜를 '칠푼이'라고 했던 김영삼, 92년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고, 95년 "이제는 세계화이다. 글로벌이다. 영어다"의 검은 그림자는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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