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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2012

2012.08.25 기본소득, 마르크스의 물신, 사물화 개념

by 원시 2019. 1. 24.

2012.08.25 21:06


권문석님의 <기본소득> 관련 글을 읽고 - 마르크스의 <물신> <사물화>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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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석님의 주장은 기본소득을 좌파적으로 해석해서 노동해방의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입니다. 정책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나누기 등에 기본소득이 기여할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우선 기본소득이 어떻게 정치활동으로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 두 번째로는 한국 진보정당사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행정’이나 ‘입법’에서 어떤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복지정책들’과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특히 정치행위 주체들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의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봉사나온 SK 최태원 회장 사진, (마르크스식의) 교환가치의 자립화 형태인 “화폐”가 아닌 연탄이라는 현물을 동네주민들에게 나눠주는 행위와 ‘기본소득’과의 차이는 없어집니다. 우리야 당연히 “노동과정”과 상관이 없는, 그리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과 상관없는 정의관점, “필요”에 따른 분배를 정치적으로 주장해야 하고 그래야 하며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이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중간단계, 실천 지점들, 주체형성들에 대한 고민과 기본소득이 더 연결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본소득”이나 “복지정책들”이냐 어떤 선택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두 번째, 당에서 나온 글들 (홍세화 대표의 글들, 김상봉 상상연구소 이사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 등)도 정치적 개념들에 대해서 모호하게 사용하거나, 같은 당원들끼리도 한 개념이나 주장을 가지고 상반된 해석이나 결론을 내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건 새누리당, 민주당, 통진당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당보다 더 합니다만.(*이건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진보신당이나 한국좌파들이 ‘숭배’할 사람들은 없다고 봅니다. 독서야 ‘다다 익선’입니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권위’에 짓눌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마르크스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곡해는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물화’ ‘물신화’를 권문석님은 ‘숭배’나 ‘교조적 숭배’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권문석님이 기본소득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노동’과 ‘생산과정’과 상관없는 인간 삶의 질의 고양을 가져다 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어떤 근거로 기본소득을 비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르크스 주장과 기본소득은 상충하지도 않고, 오히려 서로 잘 맞는다고 봅니다. 20세기 서구 사회주의자들, 공산당들도 그랬지만, 마르크스의 ‘노동’ ‘계급’ 개념을 한국 좌파들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만 강조한 게 아닙니다. 노동과정(생산)과 비-노동과정(비생산)을 다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물신화라는 말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크게 2가지 의미로 씁니다. 하나는 유용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인간들의 관계들보다, 그 인간(생산자)의 노동이 만들어낸 상품 (A)와 상품 (B)가 현실[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나 시장]에서 우리들 눈에 드러나 보이고, 이게 실체적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권문석님이 말한대로 ‘비판’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근육과 머리를 써서 제작해낸 생산물들이 사람들로부터 독립되어 자립화된 상품이 되고 이 상품들의 관계가 오히려 그 상품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거꾸로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생산자들이 내가 만든 물건들 (상품들)이 누가 사용할까? 이런 것보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교환가치(화폐)가 생산자들의 생산목표를 거꾸로 규정하고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신화 (Ver-dinglichung: Ding 사물)의 의미는 위와 같습니다. 


따라서 권문석님이 “마르크스와 노동이 물신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 부분에서 ‘물신화’의 의미는 따로 규정을 해줘야겠습니다. ‘물신화’라는 말을 그냥 ‘교조 숭배’ 혹은 ‘독단적 믿음’을 의미하는 도그마를 뜻하는 것이지요? 마르크스가 ‘물신 Fetishism'를 설명할 때, 종교(기독교)의 신 개념을 예를들면서 인간의 머리 속에서 구상해서 만든 ’신‘ 개념이 오히려 인간들과 사회를 지배하는, 그래서 인간들이 ’신‘을 숭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물신화가 ’숭배‘로 사용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노동을 물신화하지 말라"는 문장에서 '물신화'를 굳이 여기에서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는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사냥을 즐기되 사냥꾼이라는 특정한 1개의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고, 물고기 낚시를 즐기되, 어부가 될 필요는 없고, 염소(양)를 기르되, 양치기는 될 필요가 없고, (문학,영화등) 비평을 하되, 비평가가 될 필요는 없는, 다시 말해서 ‘특정 노동’이 우리 인생 자체를 규정해버리지 않고, 우리 안에 잠재된 다양한 능력들과 재능들을 현실화하자는 마르크스의 ‘이상’을 오히려 강조하는 게 좋겠습니다.


좌파 정치는 위와 같은 마르크스의 ‘이상’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가? 꼭 마르크스를 한국 좌파 정치 운동에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겠습니다.


1개 직업도 구하기 힘든 실업대란 시대에 마르크스의 ‘이상’은 그야말로 ‘이상향’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2개의 직업(투잡), 3개의 직업을 해야 아이들 교육시킬 수 있고 학원에라도 보낼 수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 마르크스의 ‘이상’이 노동해방보다는 노동의 노예에 가깝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노동 문제를 정치화할 때는 이런 주제들도 다룰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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