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정의당2015. 12. 18.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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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형제이니까, 무겁지 않아.


우리 갈 길이 끝없이 멀고, 
수없이 많은 구불구불 길.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 길을 간다.


하지만 난 나약하지 않아.
그를 등에 업고 그 길을 갈 만큼 힘이 세.
그는 내겐 짐이 아니야, 그는 내 형제이니까.
우리는 그 길을 그렇게 갈거야.


그 길에서 그가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해.
아무런 부담없이 맘 편히 가는 것, 
그게 내 바램이다. 
우리는 꼭 목적지에 함께 도착할테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나에게 짐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는 내 형제이니까.


내가 슬픔에 잠겨버리면, 
사람들 마음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버릴 수도 있어.


우리가 가는 길, 끝도 없어.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
종착역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희.로.애.락을 나눌거야.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고 해도
난 지치지 않을거야.
그는 내겐 무거운 짐이 아니냐, 
왜냐하면 내 형제이니까.


그는 내 형제이니까.
그는 나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야. 
그는 내 형제이니까.


(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 by Hollies)


2002년 12월 잠시 한국에 간 날, 10년 전 이즈음. 대선 전에 처음으로 그와 통화를 했다.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적대감이 전혀 들지 않는 ‘정치적 편안함’, 자기정당성에 도취되지 않은 운동권. 드문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 그냥 맘편히 (민주노동) 당사에 놀러 한번 와요"
"(망설이다가) 예, 한번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정확히 10년간 계속되었다.


2012년 11월 24일. 마지막 텍스트 메시지. 대화 순서가 바뀌었다.


"You should know I like you a lot, man. I will see you in Korea [죽지 말고 살아주오]"
"Thank you"


2006년,과 2007년은 그에게 시련의 해였다. 자기가 10년 넘게 지은 집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는 웃으려고 했지만, 그러한 노력 뒤안길을 암세포가 엄습해버렸다. 토론토에 한번 오고 싶어했는데, 초대도 못했다.


 2007년 4월 어느날 “서울 이재영”이라는 메일은 정치적으로 비관적이었지만, 말미는 늘 그처럼 낙천적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놀면 딱 좋은데 ^^. 어쨌거나 토론토에도 봄이 빨리 와야 하는데... 원시 돌아오기 전에 한국에는 봄이 올라나..." 그러나 2007년 이후 진보정당에 봄은 못 오고 말았다.


그에게 주어진 행복의 시간과 공간의 지속.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그의 미소일 것이다. 2012년 12월 12일. 그는 프로페셔널 운동권답게 전두환-노태우가 1212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날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에게 주어진 행복의 시간의 연장, 그의 미소가 구불구불한 계곡 사이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기쁨과 슬픔은 안개처럼, 바람처럼, 때론 비처럼 그 삭막한 여의도 빌딩들 사이로, 밤 10시 이후 정적이 흐르는 그 차가운 콘크리이트 철골 계곡 사이에 출몰할 것이다. 그는 맨 마지막 당 사무실을 정리하고 퇴근할테니.


우리들의 '영원한' 이재영 정책실장님 영전에 바치는 노래: 


http://youtu.be/7HFDAp8XVrk (그는 무겁지 않아, 내 형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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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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