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책. 깻잎 투쟁기 (우춘희. 저자) 밥상에 오르는 깻잎 생산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 하루 1만 5천장 묶어.

by 원시 2022. 6. 27.

농작물 생산자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이주노동자의 ‘깻잎투쟁기’


입력 : 2022.06.27 03:00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깻잎. 들깨의 잎사귀를 부르는 말. 민트, 바질과 같은 꿀풀과 식물로 독특한 향이 있어 ‘코리안 허브’ 또는 ‘한국형 고수(향신료)’로 불린다. 육류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줄여주고 가격도 저렴해 상추와 함께 대표적인 국민 쌈채소로 사랑받고 있으며, 영양소가 많아 나물 반찬이나 장아찌, 깻잎김치 등 밑반찬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노지 밭에서 키웠는데, 요즘에는 비닐하우스에서 1년에 두 번 파종하는 이모작 방식으로 키운다. 병충해에 강해 쉽게 자라고, 어느 정도 자라면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잎사귀를 사람 손으로 하나씩 직접 따내야 한다.

우리 일상에 친숙한 식재료라서 그런지 비유의 대상으로도 많이 쓰였다. 1990년대 중·고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앞머리를 펼쳐 옆으로 달라붙게 고정시킨 헤어스타일을 ‘깻잎머리’라고 불렀다. 가르마를 기준으로 이마에 붙은 앞머리의 모양이 동그란 깻잎과 닮아서다. 어떤 물건이 아슬아슬하게 목표를 빗나가는 경우 ‘깻잎 한 장 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애인이 다른 이성 친구가 깻잎김치를 먹을 때 젓가락으로 깻잎을 떼어주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른바 ‘깻잎 논쟁’이 SNS 등에 유행하기도 했다.

깻잎은 어떤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우리 식탁까지 오는 것일까?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것처럼,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시골 할머니가 콩밭 한편에 심어두고 틈틈이 따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일까? 

 

아니다. 식탁에 오르는 깻잎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기계적 노동을 통해 재배되고 있다. 농어촌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는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공장처럼 사람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이 아니라, 교통편조차 열악한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 출판된 <깻잎투쟁기>(우춘희)는 참 귀하다. 이 책은 연구자이자 현장활동가인 지은이가 직접 깻잎밭에서 일하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비닐하우스에서,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하루 동안 손으로 따야 하는 깻잎 할당량은 열다섯 박스라고 한다. 

 

한 박스에 10개짜리 깻잎 묶음 100개가 들어가는데, 전체로 계산하면 하루 1만5000장이다. 1초에 하나씩 숫자를 세는 데만 꼬박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양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일해야 겨우 채울 수 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되어야 한다. 할당량에 미달하면 한 상자에 4000원씩 떼인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현장에서는 법보다 월급을 주는 사업주의 말이 힘세다.

낡고 엉성한 법은 없느니만 못하다. 비닐하우스 속 낡은 컨테이너에서 살면서 한 달에 수십만원씩 숙소비로 떼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든 8시간분만 돈을 받고 평균 2~3시간씩 무료 노동이 강요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잘못된 법 때문이다.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었던 농업 노동의 현실이 깻잎 이주노동자의 ‘투쟁기’로 생생히 전해졌다.

음식을 먹는 것은 가장 원초적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신선한 농수산물이 누군가의 인권과 맞바꾼 것이 아니길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