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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1공화국

[위헌, 독재 단어 오용]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1954년 이승만 식 위헌

by 원시 2019. 5. 2.

Nakjung Kim

 

March 16 ·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 시민이 판사 출신 나경원 의원에게 헌법을 강의해야 하는 '웃도 울도 못할 일(1954년 12월자 경향신문 사설 제목)'

 

자유한국당 정치 스타일- 이승만 시절 '난투극' 정치가 되돌아 온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새구호 "#위헌,위헌,위헌" 그 위헌의 유래. 이승만 사사오입, 사람 엉덩이를 잘라내 반올림해버리다. 기가 막힌 수학자들.

 

양승태의 정신적 지주는 위헌을 직접 행동과 테러로 몸소 보여준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1954년, 박정희는 1969년과 1972년 위헌을 자행했다. 나경원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어떻게 위헌을 교묘하게 했는가를 더 배워야 한다.

 

- 최근 온라인은 이미 백색테러 수준이고, 광장에서 거의 365일 열리는 극우집회는 이승만 독재시절 테러단체들을 연상케한다. 이정재 임화수 정치 깡패들을 '중소 기업' 수준으로 키운 게 이승만-이기붕이다.

 

 

- 다시 보는 1954년 이승만 식 위헌. 

 

이승만은 1954년 11월 27일에 48년 제헌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종신대통령을 획책했다. 원래 제헌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의원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사진 - 1954년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경향신문 1954년 12월 1자 사설 (웃도 울도 못할 일) 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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