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15. 11. 29. 16:38

2015. March 23 · Edited ·

도둑과 혈투를 벌인 염소, "우리 염소는 끝까지 버텼다"



어제 1400원 주고 헌 책방에서 <동물 백과 사진첩>을 하나 샀다. 어린시절 우리집 '염소'를 만났다. 반가웠다. 이름이 "자아넨" (스위스 자아넨 골짜기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염소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젖모양새까지 정말 우리집 염소랑 똑같다. 그런데 후회가 된다.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왜 우리집 염소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강아지는 다 일일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던가? 그냥 같이 산 게 아니라, 순번을 정해가며 집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개울과 산 밑에 염소를 데려다 놓고 해가 지기 전에 데려오고 그랬는데도. 그냥 이름이 '우리집 염소'였다.


그러니까 우린 염소 젖을 먹고 자랐다. 옆에 자료를 보니, 1년에 자아넨 염소께서 3000리터 젖을 생산해냈다는 것이다. 


염소 젖은 판매된 우유보다 훨씬 진하고 마치 콩을 갈아섞어 놓은 듯한 달콤함이 있다. 약간 데워서 소금을 조금 넣어서 마셨다.


난 염소 젖을 짜보진 못했다. 부친과 당시 나보다 키가 큰 형은 자랑스럽게 따뜻한 수건으로 염소 젖을 닦은 다음에 신묘한 손가락으로 젖을 짜냈다. 내가 조금 만질라치면 '우리집 염소'는 뒷발로 차고 움직이고 '메메메'거리고 난리가 아니었다. '가만 있어, 나도 해보자' 그러면 더 '메메메이앵앵'거리며 한바퀴돌면서 시위를 하곤 했다. 어린마음에 자존심 상했지만, 염소 젖을 얻어 먹는 것으로 그 나름 울분을 삼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우리집 염소'가 사라졌다. 도둑 맞은 것이었다. 담벼락은 있지만, 대문도 잠그지 않고 자던 집이었다. 그날따라 강아지들은 도대체 뭘 지킨거냐?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둑이었던 것 같다.



'우리집 염소'는 그 다음 날도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염소를 앞산에 풀 먹이러 가는 것 때문에, '니가 가라 형이 가라 동생이 가라' 싸우던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우리집 염소'를 도둑맞은지, 이틀 후인가 삼일째 되던 날, 동네 아저씨인지 우리 삼촌인지, 우리집과 앞산 사이 논두렁 밑 논에서 우리 집 '염소'를 발견했다. 그런데 '우리 집 염소'는 죽은 채 시신으로 돌아왔다.



어른들과 삼촌들 말로는, 논두렁에서 '우리집염소'가 끝까지 저항을 하며 도둑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자국이 있다고 했고, 추측으로는, 이 도둑이 '우리집 염소'랑 새벽 내내 그 논두렁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끝까지 저항을 하자, '우리집 염소'를 칼로 찔러 죽이고 도주한 것 같다고 했다.



'우리집 염소'는 그후 동네 이웃들에게 '염소 고기'로 분배되었다. 우리집에도 남은 고기가 왔지만, 우리들은 먹지 않았다. '누가 그랬을까? 진짜 그 도둑놈 새끼가 미웠다.' 사실 '우리집 염소'는 엄청 고집이 세다. 산에서 집으로 데려올 때도, 자기가 먹고 싶은 풀이 있으면, 손에 잡은 밧줄을 엄청 세게 자기 쪽으로 당겨서, 내 손바닥에 밧줄 자국이 벌겋게 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당시 체중은 20~25kg 사이 소년인데, 이 염소가 제 멋대로 고개를 돌리면 막 끌려갈 정도였으니까.



'우리집 염소'는 정말 예민한 동물이다. 그리고 영리하다. 그 여름 날 밤, 그런데, '우리집 염소'는 우리가 다 잠든 사이, 평소 자기가 가던 그 길목 논두렁에서 도둑놈 새끼랑 혈투를 벌이다가, 그렇게 숭고하게 우리들에게 '영혼'을 남기고 갔다.



우리 형제들과 가족들의 친구, 그 이름이 자아넨 염소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되었다. '일하는 염소'......

'다 먹었냐? 그럼 집에 가자' 니가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해 질녘 너 데리고 집에 오는 것은 참 고역이었지만, 너와 함께 걸어가던 논길, 산길, 개울 길은 그렇게 우리들의 친구였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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