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20. 10. 4. 18:55

마른 꽃을 보다가.


9월말 10월초는 땅 밟기가 좋다. 맨발로. 발바닥이 약간 차가운 기운이 남지만, 흙은 아직 부드럽다. 서울로 온 후로는 참깨나 들깨 널어놓은 그런 마당의 정취는 좀 희미해졌다.


사회적 ‘정의’ 개념에 대한 자료를 보던 차, 꽃잎이 책 페이지 사이 있네. 책 제목은 막시즘과 리버럴리즘 (1986)이고, 책 주인은 남자 선배였는데 꽃잎을 끼워두신 것같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넘겨받은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책 사이에 단풍 나뭇잎, 은행 나뭇잎을 끼워넣은 적도 있었는데, 요새 여유가 사라졌을까. 이제 그거 하지 않는다.


요즘 회상이나 회고가 좋을 때가 있다. 사실 이 책 저자들의 마르크스 공부방식은 나랑 맞지는 않는다. 분석(어낼리틱) 막시즘이라는 게 역사적 맥락을 거세하고, 표백제를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책 속 한 저자인, 지.에이.코헨은 토론토에 와서 강연을 한 적도 있었는데,별세한 지도 십여년이 흘렀다. 내 선생의 선생이었던 엘렌 메익신즈 우드도 그 남편도 이제는 68 시대의 열기를 흙 속에 남기고 갔으니까.


한 막이 내리고 새 막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 꽃잎도 책 속에서 마르고.


1920년, 100년 전, 막시즘 (소리나는대로 적은 말)과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시대정신의 주류였던 사회주의에 반대했던 폰 미제스가 소셜리즘이라는 책에서 당시 좌측으로 쏠린 지식인들을 통탄했었다. 그런데 그의 대안적 주장은 허탈했다. ‘소비자가 왕이다’였다.


여튼 폰 미제스가 보기에 마르크스나 엥엘스의 생각이 얼마나 빈틈이 많았겠는가, 그런데도 유럽 지식인들에게 마치 시대정신인양, 막스(마르크스)와 엥엘스를 모르면 대화가 안되는 양 하니, 그로서는 참 답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쓴 책이 ‘소셜리즘’인데, 사회주의 옹호나 지지 근거가 아니라, 비판서였다.


2020년, 100년이 또 흘렀다. 세계인구도 100년 전, 20억에서, 지금은 78억이 되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식과 정보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해체, 신자유주의가 30년 만세를 부르다가 2008년 미국 금융공황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대적 분위기는 1920년 폰 미세스가 통탄한 것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틀렸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지’와는 반대 분위기이다.


책쓰는 사람들은 가끔 애기들 같다. 한국 전경련의 정신적 우상, 프리드리히 하이예크(1899~1992)도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자, ‘거 봐라 내 말이 맞았잖아’ 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거의 평생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또 케인지 등살과 그늘에 지내야했던 하이예크는 1992년 별세 직전 1~3년 기간은 ‘내 말이 진리였다’고 아이처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진리란 그렇게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너는 틀렸고, 나는 맞고 그런 종류의 것도 아니다. 환호작약할 정신적 상황은 나에게 사치같다.


중국 공산당 시진핑, 러시아 푸틴, 일본 자민당, 평양 김정은 정부, 미국 트럼프로 둘러싸인 섬아닌 섬나라 한국을 생각하면, 옆 이웃 나라 자전거 타고 가서 데모하고 오는 유럽이나 서구 좌파에 비해 나는, 우리는 늘 어떤 벼랑에 선 느낌이다.


1920년 폰 미세스는 너무 애닮아하지 말고, 1992년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너무 기고만장할 것도 없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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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6. 19. 15:38

유월의 밤은 아까워서 자면 안된다.

이층 방은 서쪽 햇볕을 켜켜히 저장했다가 밤이 되어 품어낸다.

바깥과 온도차가 거의 15도가 넘는다.


여긴 백두산 위 쪽이니까,

일교차가 이렇게 큰 것은 이해가 간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 가슴이 차가울 정도로 시원하다.

길을 가르며

적막한 집들 사이로,

가로등이 드물어

검은 장막이 처져 있는 듯 하다.

어둠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밤길이다.


차이니즈 아저씨 한명이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급히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살면서 여러가지 빚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빚들 중에 하나가,

연인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밀리고 밀린,

그러니까 내장에 누적되어,

꺼내어 보기가 쉽지 않은,

그런 글 빚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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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4. 22. 19:18

심은하씨가 걱정이 되긴 했다. 내성적이고 얌전한 사람이 사고를 치면 외향적인 사람보다 더 큰 규모로 친다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심은하씨도 한석규의 밍기적 때문에 나름 속끓였다. 그래서 은하씨도 돌도 던지고, 유리창도 깨고 그랬겠지만. 그게 21세기 전 일이다. 98년 즈음 복지삭감, 노동자 해고 IMF 긴축 독재가 민심을 망쳐놨다. 이런 사회적 절망 분위기 탓일까? 심은하씨도 그런 비정한 광풍의 무풍지대는 아니었으리라.


그 후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심은하씨는 영화 출연도 하지 않고, 죄없는 사진관 유리창만 깨고, 아련한 아쉬움으로 퇴장했다. 사실 일에 치여 살다보니, 은하씨가 퇴장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른다.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415 총선, 위성정당 난리 통에, 그 심은하씨가 재등장했다. 사진관 유리창 사건의 아픔을 딛고, 얘들도 둘 낳고, 남편 선거운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뉴스였다.


코로나 19 때문에 마스크를 썼지만, 백합 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와는 딴판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와 아이스크림 나눠먹던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보수당이라 하여 홍준표처럼 “니들이 정치를 알어? 뭘 알어? 대구서도 1등 먹었다”고 뽐내는 사나이는 아니었다.

심은하씨는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건네는 싹싹한 동네 젊은 아줌으로 변신중이었다.


때론 정치는 말로,논리로,책으로,연구논문으로,페이스북에다 도표 그려가며 ‘사회과학인 척’ 하는 것보다는, 심은하씨처럼 유리창에 남몰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와장창 소리는 뙤약볕에 소나기 같은 시원함, 카타르시스였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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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4. 12. 11:53

시카고 갔다가 돌아오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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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앤 아버까지는 버스를 타다 , Ann Arbor, Michigan,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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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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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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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아버에서 기차, 암트랙를 타고 시카고 유니언 역으로 가는 길,

칼라마주 역을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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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오헤어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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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팻말 Kiss 'n' Fly , 시카고 오헤어 공항, 


에반스튼 Evanston, Northwestern 대학에서 버스타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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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9. 11. 2. 19:49

스마폰 시대, 잡지와 동인지의 부활 가능성.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 물] 창간한 한창기 선생 이야기.


49년 전통, 한때 50만부를 자랑하던 월간 <샘터>가 폐간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고 든 생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존 인쇄 매체의 퇴조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신기술과 신세대에 맞게 잡지나 동인지는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다 ‘작가’가 될 수 있는 스마폰 시대에 맞는 ‘소통, 매체’를 만들면 된다.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잡지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잠시 70년대 ‘잡지가 이럴 수도 있구나’를 보여준 것이 [뿌리깊은나무]였다고 한다. 강만준 교수의평가에 따르면,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 나무] 이전과 그 이후로 양분될 수 있다고 한다.


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뿌리깊은나무]를 폐간시키기 전까지 ‘가로쓰기’를 처음 했고, 필진들도 다양했던 [뿌리깊은나무]는 21세기에도 폰과 앱 기술을 만나 새로운 매체로 진화될 수도 있다. 이건 실천의 문제이니 앞으로 하면 될 것 같다.


몇 해전 부친과 대화를 하다, 한창기 선생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전쟁 휴전회담 중, 아버지는 순천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3학년이었던 한창기 선생과 하숙방에 같이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그 한창기에게 자기 장남을 맡긴 것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할아버지는 어린시절 가난하여 자기 어머니인 청주 한씨 친정 벌교 고읍리에서 일을 한 경험 덕분으로, 그 곳 한씨 일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창기 선생을 비롯, 한씨 일가는 자녀들을 순천중고등학교로 보냈다. 자기 장남 교육열이 높았던 조부는 모든 입시정보를 삼사십리 떨어진 벌교읍 고읍리 한씨 일가로부터 얻었던 것이다.


당시 중학 입학을 위해서는 초등 6학년들이 ‘지능고사’를 치렀다고 한다. 500문제를 푸는데 200개 를 맞추고 200개를 틀리면 0점이 되는, 즉 ‘감점제도’가 있는 가혹한 시험제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창기 선생이 순천중을 졸업하고 광주고등학교로 입학하기 전까지 같은 하숙방에서 살면서 ‘창기 형님의 지도하에 공부를 했다.’ 부친은 초저녁 잠이 많아 졸다가 한창기 형에게 꾸지람도 듣기도 했다. ‘창기 형이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를 했냐면, 천정에 솜방이를 매달아 놓고 거기에다 바늘을 꽂아서 머리까지 오게 한 후, 졸면 이마가 바늘에 닿게끔 그런 장치를 해놓고 공부를 했다’


한창기 선생은 순천고로 진학하지 않고 광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벌교읍 고읍리 한씨 일가들은 한창기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고 했다. 대학시절 영어를 잘 해서 이승만이 주는 장학금을 받고 청년 한창기는 미국에 체류하며 영어공부를 했고, 나중에 브리태니커 본사로부터 영어를 가장 잘하는 아시아인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런데 청년 한창기는 집안과 벌교읍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법조인 고시를 보지 않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 체인점 사업을 했다. 고읍리 청주 한씨 친척들의 실망은 대단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학,군대 갔다고 오고 결혼해서 우리들 키우느라, 한창기 형님과는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부친에게 한창기는 굉장히 특이하고 지독하게 공부하던 형, 보통 세상 사람들이 기대했던 삶과는 동떨어진 독창적인 형님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부친께서 한창기 선생이 평생 혼자 사시고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하셨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당시 순천 하숙방에 빨치산이 내려와 조부께서 이고 온 쌀을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을 같이 산 형님에 대한 인간적 아쉬움의 표명이었다.


한창기 선생은 1997년에 간암으로 별세했다. 부친께서 진즉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 물] 창간자가 한창기 선생이었다는 우리들에게 해줬으면, 살아 생전에 만나서, 그 비법을 전수받았을텐데 아쉽다. 왜냐하면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은 문화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고, 민주주의와 문화라는 주제를 ‘잡지’ 형태로 표현해낸 당대의 대중예술이기 때문이다.


한창기 (1936~1997) 주요업적

1976년 3월 월간 [뿌리깊은나무] 창간. 1980년 8월 전두환이 폐간시킴

1984년 11월. 여성지 표방, [샘이깊은 물] 창간. 2001년 11월 폐간.




한창기는 누구인가? 그를 다룬 책 [특집! 한창기, 2008,창비] 5페이지를 보면 “한창기는 직판 세일즈맨 제 1세대를 조직하고 훈육한 사람. 몇 세대 앞선 선진적 업적을 남긴 언론-출판인. 미시적인 관찰력으로 머리카락에 홈을 파듯이 글을 쓰는 문화비평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생동하는 광고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 심미안이 빼어난 문화재 수집가.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의 회생을 도운 비개비. 전통 의식주의 파괴없는 창조적 계승을 실천한 사람. 국어학자가 울고 가는 재야국어학자.”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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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얕은오름

    한창기 선생님의 업적을 더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소중한 이야기 잘 보고갑니다.:)

    2020.06.30 15:0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셨군요. 한창기 선생님이 10년만 더 오래 사셨어도 후배들이 많이 보고 배웠을텐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2020.07.02 16:03 신고 [ ADDR : EDIT/ DEL ]
  2. 얕은오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10년만 더 오래 사셨다면, 한선생님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셨던 분인데, 언론에는 모습을 많이 드러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 영상 속에서 지나간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한선생님 인터뷰 모습이나 영상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네요. 목소리를 단 한번도 듣지 못해서 아쉽네요. 그래도 많은 유산들을 남겨 놓으셨으니 그 업적들을 더듬어 가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0.07.13 14:36 [ ADDR : EDIT/ DEL : REPLY ]

수필2019. 10. 5. 05:26


남광주, 앵남, 화순, 득량, 예당, 벌교역,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갔던 길.
 노래는 일리노이 센트럴, 시카고, 칸카키, 뉴 올린스

흔들리는 기차안, 터널 안으로 들어갈 때 굉음, 녹색의자.
벌교 가는 길. 보성 지나 득량 예당 조성. 
그가 득량 (得粮)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 일이었다.
득량은 "식량을 확보하다"는 뜻이다. 

시카고 유니언 역에서 뉴 올리언즈까지 풍경을 노래한 '뉴 올리언즈 시티'라는 기차.

아이보는 엄마, 기차 노동자 풀맨 포터, 엔니지어, 카드놀이하는 노인, 기차안 사람들을 묘사.

가수는 알로 거쓰리. 

철로의 리듬과 함께 '뉴 올리언즈 시티' 기차는 미시시피를 거쳐 남쪽 바다까지 하루종일 달린다.

굿 모닝 아메리카 ! 하 와 유 ?  


노래 가사를 들으니, 요즘 같은 시절에 저절로 묻게 된다. 

굿 모닝 코리아 ! 잘 있느냐 ?

2개월 째 힘들다. 


노래도 위안이다. 이제 민중가요는 거의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기찻길, 철로의 리듬이 필요하다.

그도 나도 정치도, 민중도, 민주도 몰랐던 시절에 탔던 기차.


그는 득량 사람이다. '식량이 많아' 이름도 '득량'이다. 

득량역에는 난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본 것은 교문과 백골단 사이, 종로 을지로 명동 근처 전경 방패들 사이였다.


득량, 예당, 조성, 벌교, 그 익숙한 이름들, 그러나 내려보지 못한 그 득량사람.

득량역에서 한번 같이 내려 보자고 말 한마디 못한 채, 그는 떠나갔다.


그는 득량 사람이다. 식량이 많은 곳. 민주노동당 오재영 실장.

여전히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를 몰랐을 때나, 지금이나 

시티 오브 뉴 올리언즈 노래는 위안이다.

그는 득량 살암이다.  

 
8 years ago

‎Jae Young OH‎ to Nakjung Kim
October 4, 2011 at 3:06 AM · 

원시님의 담벼락에는 처음 글을 쓰네요^^ 얼마전 방문 기념해서 ㅎㅎ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신당 시절에 이르기까지..제 위치가 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소위 음지(?)에 있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제가 존경스러운건 아무리 인터넷이 전 지구적으로 퍼져있다고는 하지만, 국내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대응방침을 그렇게 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존경스러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2 Seo Mi and Cheol Myeon Youn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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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9. 3. 22. 15:55

너무나 큰 진리를 마주 대할 때는 공포심이 생긴다. 이런 정서는 어린시절부터 계속 되었다. 자디잔 지식의 진리나 참을 알아나갈 때는 '기쁨'을 느끼지만, 너무나 큰 진리와 진실 앞에서는 섬뜩함을 느낀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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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9. 1. 28. 22:30

Nakjung Kim 


January 28, 2015 at 12:45 PM · 


많이 알면 남에게 상처를 입힌다. (문자나 지식) 많이 배우면 전쟁을 일으킨다. 이게 노자 생각이다.


노자의 '상상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들 중에 하나, 생각하는 법을 알려준 한 문장이 있다. 그것은 문자, 언어에 대한 노자의 극단적인 공격이다. (유가와 법가와 비교해) 노자의 대안은 무엇이었나? 지금 우리가 쓰는 문자를 폐지해버려라는 것이다. 외국어는 더더욱 필요없다. 우리가 새끼줄 같은 것 (볏짚으로 만든 줄)으로 엮어서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하라는 것이다. 원시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문자를 많이 알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다른 동네를 침략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끼줄을 꼬아서 만든 것을 (결승 結繩)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당시 노자의 이 소국과민 (적은 나라 사람 숫자가 적은 지역 공동체)을 읽다가, 이 새끼줄 언어, 참 대단한 창조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사람 언어는 늘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말과 언어는 내가 통제할 수도 없는 제 2의 어떤 사람이 관장하고 있고, 현실이라는 과녁에 적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현실은 몰라서 많이들 당하고 산다. 영국 근대 사유의 첫 출발점이라고 프란시스 베이컨의 명제가 "아는 것이 힘이다." 이게 인류가 살아온 누적적인 길이고 주류 고속도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가 말한 새끼줄 언어 (결승)는 고속도로 옆 갓길처럼 또 사라지지 않고 도로의 전체 중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노자의 '정치적 이상향' 속에서 새끼줄 (결승)과 달리, 요즘은 문자 때문에 우린 사람을 덜 찾게 되고 안 봐도 되고 그렇다. 고립된 '자아'와 보내야 하는 '나와 나' 사회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여튼, 메트로폴리탄 속 '소국 과민'을 어떻게 건설하느냐? 그것은 여전히 문제이고 숙제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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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봤습니다

    2020.04.06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수필2019. 1. 26. 17:23

2011.02.17 18:08


(잠시 떠오르다) 어떤 한 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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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역은 늘 복잡했다. 지하철에다 그 밑으로는 차들이 많이 다녔다. “다음 정차할 역은 구로공단 구로공단역입니다. 띠로로록”  지금도 이 목소리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 그런데 가끔 공간이나 팻말 이런 것들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왼편에 큰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공장 겉벽은 색바랜 녹색 칠이었는데, 그 위에 커다랗게, 표어가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처음 그 표어를 보고 놀랬다. 아니 의분이 동시에 일었다. 표어는 학교 건물에나 <반공> <방첩> 혹은 <조국 통일> 이렇게 씌여져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굴뚝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공장 건물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이런 구호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분노 그 자체였다. '이렇게 처박아 놓고서'  


회사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손주임,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그렇게 부러워했던 전문대 나온 이대리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회사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보다는, 실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밤 9시, 10시까지 잔업을 하고, 토요일도 격주로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일요일도 200% 수당 때문에 한 달에 2회는 일하는 현실이고, 그야말로 여기 회사 사람들은 다 일하는 기계들인데, 이 사람들더러 조국 근대화 초석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고 같이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삼촌 고모뻘되는 사람들이 1공단, 2공단, 3공단을 꽉 채우고 있었다. 8시 56분, 57분 출근표 촬콱 굉음과 더불어. ‘서울가서 돈 벌어 온다더니’, 그들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표어를 보고,  속으로 ‘여기다 다 처 몰아넣어 놨구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서울에 오게 된 동기 자체가 계급적인 것인데, 표어는 애국주의였다. 


매일 출퇴근 길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표어와 마주쳤다. 이 표어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해석도 해보게 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그러니까,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고 수출 일꾼이다. 그 힘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러니까 그걸 한국의 자본이나 경영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게 애국주의 고취, 전시 자본주의 선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냥 진실을 그들도 엉겹결에 이야기해버린 것이다. 동원의 수단이었는데, 진실을 말해 버린 셈이다. 


여기에 있는 중소기업 자본가들도, 경영자들도, 국가도, 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데도 샤워기 시설도 없는 (우리회사 같은 경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어느 누구도 박수치면서 아 ‘저 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는 말을 하지도 믿지도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게 진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인 명령어나,  “인간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노동이다” 이런 문장처럼, 부인하기 힘든 그런 말이 되었다. 


 일당 16800원(시급 2400), 복만이형 같은 기술자는 3만원까지도 받았다. 복만 형이 참 부러웠다. 선반기술이 있어서 나보다 땀을 덜 흘리고 돈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땀은 많이 흘렸는데, 씻는 곳은 좁다란 부엌, 세수대야 놓고, 비누 하나에 그 많은 사람들이 퇴근 전에 손만 씻었다. 샤워실도 없었다. 땀 방울들을 씻어낼.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축구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럴 때, 엄청 큰 이야기 “조국 근대화”, 심지어 “민주화” “ OO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 표어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그 표어에 물음표를 붙였다가, 느낌표를 붙여보기도 했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고 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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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9. 1. 25. 13:49

2011.04.20 17:31


고모 일기를 보다


원시 

스치고 지나가는 노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933.html

모유수유 예찬론자의 고백 “다 좋은데 성욕 감퇴라니” / 생생육아 돈 없이 아이 키우기


=>  한겨레 신문 1면 기사이다. 정말 오랜만에 한겨레 신문에서 좀 잘한 신문 기획배치이다. 


언젠가 고향집 방을 정리하다가, 적은 회색 노트를 한 권 발견했다. 고모의 일기장이었다. 연필로 쓴 부분도 있고, 볼펜으로 씌여진 페이지도 있었다. 그 중 눈에 띄이는 게 하나 있었는데, 5월 어느날이었다. 


요지는 대강 이랬다. "오늘 점심을 간단히 먹고, <원시>를 업고 언니와 만나러 갔다. 학교와 집 중간 들판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논두렁과 들판에는 꽃들이 피어있고, 젖을 보채는 조카는 점점 무거워져 간다. 언니는 논가에 앉아서 <원시> 젖을 먹이고..." 


25년 전에 쓴 고모의 일기 한 쪽을 보고, 찡해졌다. 고모의 증언에 따르면, 젖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날아다니는 파리도 잡아먹으려고 손을 뻗고 그랬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람은 보통 자기 잘난 맛에 살거나, 대부분 베푼 것은 기억하고, 받은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 직장과 집 사이는 300-400 미터 정도 되었다. 점심시간에 고모와 어머니가 둘이 만나서, 들녘에서 젖을 먹이고, 한 여자는 집으로, 다른 한 여자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5월 들판의 논두렁 모유수유 광경, 짠하다는 생각이 들다. 


우리 일상은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하다. 정치는 이런 일상이다. 그 생활터전에서 "나"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너, 옆집,위 아래 집"까지 포함하는 공통의 문제들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 그게 관건이다. 지금은 비록 소수지만, 진보정당이나 정치적 좌파 정당의 승부처 역시 이러한 생활터전의 <정치>에 달려있다. 


한겨레 신문기사 (젊은 엄마의 모유 수유기)를 보면서, 이런 직장 여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당-홈페이지, 그런 이야기들이 제 1면 홈페이지에 뜨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다.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지하철 1량 기차에는 적어도 1개의 <화장실 크기의 모유 수유실: 전용 방>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50년간, 60년간의 진보정치의 핵심은, <도시공간>을 얼마나, 아이들, 엄마들, 여성들, 노인들,장애인들에게 친절한 (사회정의에 입각한) 도시를 만드냐에 달려있다. 







Comments '2'

chalie 2011.04.20 18:02

안타깝습니다. 공감을 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 안스러운지요.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마음속으로만이지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

채훈병 2011.04.20 18:38

저도 코끝이 찡하네요.


좋은 글 감사 1인 추가.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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