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21. 8. 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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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july 31. 
김학규(동작 당원)님의 "보리밥, 쌀밥, 혼식했나 도시락 검사" - 박정희 시절 이야기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당원들의 이런 이야기가 내가 바라던 제안했던 <인터넷 신문> 주제들이다.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반 아이들이 혼식했나를 검사하기도 했고, 반장에게 시키기도 했다. 


1. 박정희 흰쌀밥 금지 강조의 역설 - 흰쌀밥은 현미와 달리 나락 볍씨에서 껍질을 제거하는 과정 (정미소;혹은 방앗간)에서 영양소가 많은 부분을 날려버리기 때문에, 흰쌀이 현미쌀보다 영양분이 떨어진다고 한다. 


요새 오곡밥이나 잡곡밥, 현미밥을 의사들이나 영양사들이 권유하는데...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2. 여튼 흰쌀밥만 먹지 말라고 해서, 보리쌀을 따로 삶아서, 나중에 쌀밥을 한 다음, 그것을 섞어서 먹곤 했는데, ..., 지금 생각해보니, 밥하던 여자들만 생고생이었다.

흰쌀밥 (2)..... 인도나 아프리카 친구들은 쌀밥을 손으로 집어서 먹는다. 조금 친해지면 놀린다."이것들하~ 여기 젓가락 있다" 그런데 거기 지방 쌀은 끈쩍끈쩍한 쌀이 아니다. 쌀을 냄비같은 곳에 쪄서, 찬물에 헹군다음에 그냥 여러 반찬들과 같이 싸서 먹는다. 

 

우리가 먹는 쌀은 Sticky Rice이고, 이걸 손으로 먹을려면 손에 막 다 붙고 볼에도 붙고, 하기는 돌이켜보니, 흰쌀밥의 용도는, 미술 시간에 풀 대신 밥풀로 쓰기도 했다.

 

 다음에 인도나 아프리카 친구들과 밥먹으면 이걸 알려줘야겠다. '야들아 니네들도 어린시절 밥풀로 썼냐?"


이티오피아 Ethiopia 수도 '아디스 아바바 Addis Ababa'가 의미하는 것은, 해바라기라고 했던가..., 이슬람만 있는 게 아니고, 기독교인들도 꽤 많다. 언젠가 역사가 다시 돌아서 아프리카도 문명의 발상지로 복귀할 것이다.


흰쌀밥(3) 이광수 소설 <무명>. 쌀밥에 대해서 쓴 글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묘사한 글을 꼽으라고 하면 생각나는 게 춘원 이광수의 <무명>이다. 이광수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유구무원이다.


 하지만 386 학생운동가들 미국 유학가서 "그래도 미국 대학 시스템은 한국보다 낫지 않냐?"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춘원 이광수가 일본에 도착해서 그 느꼈을 "일본과 조선"의 격차의 충격 후, 생물학적 사회진화론까지 수용해버린 경우나, 난 50보, 100보라고 본다. 


이광수의 소설 <무명>에 보면, 독립운동하다가 감옥살이를 하면서, "흰쌀밥"이 먹고 싶어서, 그 상상을 하면서 쓰는 대목이던가? '사식'이라는 단어, <무명>, 윤기어린 흰쌀밥에 대한 동경, 가물가물 김이 나는, 약간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그 쌀밥 한 그릇이 감옥에서 얼마나 먹고 싶었는가? 그걸 생생하게 묘사했다.


한국 현대사 그리고 지금, 우리모두는 춘원 이광수 숙명과의 싸움이다. 이제 흰쌀밥은 아니고, 현미잡곡밥은 먹어야겠지만. 


요새는 쌀 소비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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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1. 6. 1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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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옷, 스타킹, 양말, 젖은 속옷까지 다 빨아 널어놨다.

녹색 나뭇잎에 반사된 햇볕이 매마르고 투명하다. 

하얀 스타킹에 반사되는 빛이 더욱더 하얗다. 

 

지난 주 며칠은 무덥고 마치 한국 몬순 여름날씨처럼 습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요 며칠은 다시 한국 10월 날씨처럼, 19도에서 21도가 되었다. 

 

21도에다 바람까지 부니, 이런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뭘 해도 좋은 날.

남은 몇 페이지 책장을 더 넘겨야지. 

 

날씨의 변화가 이렇게 쾌적한 흐름으로 계속 이어지길. 

 

쾌청한 소박한 삶, 상당부분은 자연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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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1. 4. 2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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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새벽에 눈이 오다.

 

지난 겨울에는 눈이 적게 내린 편이었는데, 4월 내내 날씨가 저온인데다 급기야 눈이 내리다.

3월에 따뜻한 날씨 때문에, 일찍 자라기 시작한 솔 (=부추) 잎 위에 눈이 쌓이다.

 

파도 심어놨는데, 내일 아침이면 다 얼어버렸을까? 살아남으려나? 

 

2월 초면 매화 꽃이 피던 남쪽 고향 집이 그립다.

3월이면 매화 향기가 집 대문에서 집 바깥으로 난 길까지 퍼지곤 했다.

특히 밤이나 새벽 공기가 조용할 때, 매화 향기는 자유를 만끽하며, 

코에 톡 하고 쏘일 정도였다. 

 

토론토의 날씨는 아마도 백두산 위쪽 간도나 북만주 날씨와 유사할 것이다. 

겨우 내내 밤이면 눈이 오기도 했다. 그 눈은 물이 되고, 물은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에는 아직도 너무 춥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고, 그 에너지 소비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다. 

 

솔잎, 부추잎 위에 눈이 척척 하고 달라붙는다. 

그래도 내일이면 솔잎이 다시 녹색으로 되돌아오리라.

 

강한 향기를 내품는 솔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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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1. 1. 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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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 조건.

쉽게 고쳐질 것 같지만, 뒤를 잠시 돌아보다. 정경심-조국 재판, 윤석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말부터 최근 정의당 일까지, 수 년이 흘러버린 느낌이다. 정치운동은 늘 새로운 배움이고, 자아의 풍성함으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머리 속으로는 생각해오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늘 어떤 ‘회한’을 남긴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 역시 많은 비판을 해왔다. 변명도 해본다. 대의와 튼실한 논거를 만들기 위해 그랬다고. “네 말이 조금도 틀림없고, 운동권으로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참 섭섭하구나” 그런 경우가 많았다. 


조국-윤석열-추미애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촛불 이후 느닷없이 민주당원이 되었다는 과거 학생운동 한 선배와 대화에서도 그랬다. 한국상식에 맞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별로 변한 건 없다고 그 선배는 느꼈을 것이다. 차마 그 분이 했던 말 그대로를 옮기진 못하겠다. 


최근 명진 선생이 자기 스승 스님 ‘탄성’과의 대화를 소개해줬다. 탄성은 평소 암환자들에게 ‘항암치료’보다는 부처님에게 기도하라고 강연을 했다 한다. 그런데 막상 70세 탄성이 위암 3기 진단을 받고, 막 항암치료를 받을 참이었다. 병문안을 갔던 그의 제자 명진은 탄성의 항암치료 결정이 평소 탄성의 지론과 모순됨을 지적했다 한다. 


명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탄성은 병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다. “네 말이 조금도 틀림이 없고, 부처님 제자로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참 섭섭하구나.”

 

이 이야기를 듣고서 나도 살짝 웃었다. 자조였다. 나에게도 참 섭섭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튼 자기 제자 명진의 지적을 듣고, 탄성은 항암치료를 받지 아니하고, 다시 절간으로 돌아갔고, 2 개월 후 별세(입적)했다고 한다. 명진은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자기 스스로를 ‘참 못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뭐를 어떻게 바꾸자, 대안이 뭐냐를 떠나, ‘회한’이 든다는 말하는 명진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실은 나 역시 ‘섭섭함’ ‘서운함’을 다 알고도, 일부러 그렇게 수 천번을 해 왔다. 마치 8대 0으로 9회초까지 지고 있다가, 9회말에 9대 8로 역전하는 야구팀의 주장처럼, 그런 모든 ‘서운함’ ‘섭섭함’은 9대 8로 역전하기 전까지 필수 드라마로 간주하면서. 깐에는 자신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호기를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명진은 불가의 세계에서 ‘큰 도를 깨침’ 게임을 하고 돌아다녔다. 위암 3기 자기 스승 탄성에게도 ‘자기 일관성’을 주창했던 것은, 탄성이 그만큼 큰 사람이라는 전제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큰 구분이 없는 ‘연기론’이 불가의 원리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 같다. 


죽음을 하등 두려워할 것 없어야 하는 그들의 숙명이라고 해야겠다. 이 가혹한 진리 게임 앞에서, 그 두 사람은 너무나 투명한 고드름 칼 싸움을 했다.


“네 말이 조금도 틀림이 없고” 그러니까, “네 말이 다 진리이고 진실이다. 내가 마땅히 그걸 수용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참 섭섭하구나” 이 말이 오히려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본다. 


아직도 난 상류에서 중류 정도, 하류의 그 안과 겉이 구분이 없는 둥근 돌이 아니라, 중류쯤에서 나뒹구는 돌임을 잘 알고 있다. 


방향도 없는 이야기이다. 

진한 회한이다.


이미 내가 다 스스로 인정해버리고, 많은 경우에 의도적으로, “네 말이 조금도 틀림이 진짜,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내가 생각해도 그렇고 타인이 생각해도 그렇고, 다 수긍하는 틀림이 없다”고 전제하고서 지금까지 달려와 버렸다. 그러니 왜 회한인들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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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1. 1. 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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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색깔을 인간이 흉내낼 수 있을까?
약간 황토빛 나는 구운 고구마 껍질 안쪽 색깔 같은 것. 습도 온도 식물 세포 구성 다양한 요소들이 저런 결과를 만들어냈겠지만. 인간의 시각과 결합해서 만들어 놓은 색깔.

그리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형성된 색깔.

다 제각각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의 시각과 카메라 렌즈의 차이.

색깔 자체는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수 있지만, 시각에 맺힌 물질과 생리적 현상인,이 색깔이란, 존재적 오묘함이다.

이만 고구마에 대한 감사를 마친다. 겨울의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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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12. 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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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등교하는 앞 집 여자 아이들. 초등학교 아이들이다. 눈 싸움을 한다. 골목길에서도 사이좋게 농구도 하고 노는 얘들이다. 눈을 뭉쳐 서로 몇 번 던지고 놀더니 같이 학교로 향한다.

이렇게 겨울이 시작되다.


초등 2 겨울,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논들을 가로 질러 오곤 했다. 눈으로 가득찬 논. 논둑 길도 눈에 쌓여 없어져 버릴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린 후였지만, 따스한 햇볕에다 하늘은 푸르렀다. 논 위로 걷다가, 1 미터 정도 쌓인 논으로 몸을 던져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다. 

 

눈 속에 파묻혀 숨을 쉬지 못할 것도 걱정하곤 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서 논에서 빠져나왔다. 

새하얀 침대같은 눈밭으로, 총총 걸음으로 백미터도 넘는 그 논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형적인 이유에서인지, 북쪽에 무등산, 그 뒤 백아산, 무등산 앞 만연산 등 여러 산들이 있는 탓인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사람들은 늘 자기가 걸어가던 길들이 있게 마련이다. 5월에는 아침 이슬로 가득찼던 논길, 형이 앞에 가면 내가 뒤에 가고, 내가 앞에 가면 동생들이 따라오곤 했던 길이다. 

 

흙길을 밟고 다니던 때였다. 서울로 온 후로, 또 다른 도시로 떠난 후 흙길은 더이상 밟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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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10.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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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꽃을 보다가.


9월말 10월초는 땅 밟기가 좋다. 맨발로. 발바닥이 약간 차가운 기운이 남지만, 흙은 아직 부드럽다. 서울로 온 후로는 참깨나 들깨 널어놓은 그런 마당의 정취는 좀 희미해졌다.


사회적 ‘정의’ 개념에 대한 자료를 보던 차, 꽃잎이 책 페이지 사이 있네. 책 제목은 막시즘과 리버럴리즘 (1986)이고, 책 주인은 남자 선배였는데 꽃잎을 끼워두신 것같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넘겨받은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책 사이에 단풍 나뭇잎, 은행 나뭇잎을 끼워넣은 적도 있었는데, 요새 여유가 사라졌을까. 이제 그거 하지 않는다.


요즘 회상이나 회고가 좋을 때가 있다. 사실 이 책 저자들의 마르크스 공부방식은 나랑 맞지는 않는다. 분석(어낼리틱) 막시즘이라는 게 역사적 맥락을 거세하고, 표백제를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책 속 한 저자인, 지.에이.코헨은 토론토에 와서 강연을 한 적도 있었는데,별세한 지도 십여년이 흘렀다. 내 선생의 선생이었던 엘렌 메익신즈 우드도 그 남편도 이제는 68 시대의 열기를 흙 속에 남기고 갔으니까.


한 막이 내리고 새 막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 꽃잎도 책 속에서 마르고.


1920년, 100년 전, 막시즘 (소리나는대로 적은 말)과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시대정신의 주류였던 사회주의에 반대했던 폰 미제스가 소셜리즘이라는 책에서 당시 좌측으로 쏠린 지식인들을 통탄했었다. 그런데 그의 대안적 주장은 허탈했다. ‘소비자가 왕이다’였다.


여튼 폰 미제스가 보기에 마르크스나 엥엘스의 생각이 얼마나 빈틈이 많았겠는가, 그런데도 유럽 지식인들에게 마치 시대정신인양, 막스(마르크스)와 엥엘스를 모르면 대화가 안되는 양 하니, 그로서는 참 답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쓴 책이 ‘소셜리즘’인데, 사회주의 옹호나 지지 근거가 아니라, 비판서였다.


2020년, 100년이 또 흘렀다. 세계인구도 100년 전, 20억에서, 지금은 78억이 되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식과 정보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해체, 신자유주의가 30년 만세를 부르다가 2008년 미국 금융공황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대적 분위기는 1920년 폰 미세스가 통탄한 것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틀렸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지’와는 반대 분위기이다.


책쓰는 사람들은 가끔 애기들 같다. 한국 전경련의 정신적 우상, 프리드리히 하이예크(1899~1992)도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자, ‘거 봐라 내 말이 맞았잖아’ 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거의 평생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또 케인지 등살과 그늘에 지내야했던 하이예크는 1992년 별세 직전 1~3년 기간은 ‘내 말이 진리였다’고 아이처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진리란 그렇게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너는 틀렸고, 나는 맞고 그런 종류의 것도 아니다. 환호작약할 정신적 상황은 나에게 사치같다.


중국 공산당 시진핑, 러시아 푸틴, 일본 자민당, 평양 김정은 정부, 미국 트럼프로 둘러싸인 섬아닌 섬나라 한국을 생각하면, 옆 이웃 나라 자전거 타고 가서 데모하고 오는 유럽이나 서구 좌파에 비해 나는, 우리는 늘 어떤 벼랑에 선 느낌이다.


1920년 폰 미세스는 너무 애닮아하지 말고, 1992년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너무 기고만장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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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6. 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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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밤은 아까워서 자면 안된다.

이층 방은 서쪽 햇볕을 켜켜히 저장했다가 밤이 되어 품어낸다.

바깥과 온도차가 거의 15도가 넘는다.


여긴 백두산 위 쪽이니까,

일교차가 이렇게 큰 것은 이해가 간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 가슴이 차가울 정도로 시원하다.

길을 가르며

적막한 집들 사이로,

가로등이 드물어

검은 장막이 처져 있는 듯 하다.

어둠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밤길이다.


차이니즈 아저씨 한명이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급히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살면서 여러가지 빚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빚들 중에 하나가,

연인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밀리고 밀린,

그러니까 내장에 누적되어,

꺼내어 보기가 쉽지 않은,

그런 글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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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4. 2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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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하씨가 걱정이 되긴 했다. 내성적이고 얌전한 사람이 사고를 치면 외향적인 사람보다 더 큰 규모로 친다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심은하씨도 한석규의 밍기적 때문에 나름 속끓였다. 그래서 은하씨도 돌도 던지고, 유리창도 깨고 그랬겠지만. 그게 21세기 전 일이다. 98년 즈음 복지삭감, 노동자 해고 IMF 긴축 독재가 민심을 망쳐놨다. 이런 사회적 절망 분위기 탓일까? 심은하씨도 그런 비정한 광풍의 무풍지대는 아니었으리라.


그 후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심은하씨는 영화 출연도 하지 않고, 죄없는 사진관 유리창만 깨고, 아련한 아쉬움으로 퇴장했다. 사실 일에 치여 살다보니, 은하씨가 퇴장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른다.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415 총선, 위성정당 난리 통에, 그 심은하씨가 재등장했다. 사진관 유리창 사건의 아픔을 딛고, 얘들도 둘 낳고, 남편 선거운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뉴스였다.


코로나 19 때문에 마스크를 썼지만, 백합 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와는 딴판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와 아이스크림 나눠먹던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보수당이라 하여 홍준표처럼 “니들이 정치를 알어? 뭘 알어? 대구서도 1등 먹었다”고 뽐내는 사나이는 아니었다.

심은하씨는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건네는 싹싹한 동네 젊은 아줌으로 변신중이었다.


때론 정치는 말로,논리로,책으로,연구논문으로,페이스북에다 도표 그려가며 ‘사회과학인 척’ 하는 것보다는, 심은하씨처럼 유리창에 남몰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와장창 소리는 뙤약볕에 소나기 같은 시원함, 카타르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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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0. 4. 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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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갔다가 돌아오던 길,




토론토에서 앤 아버까지는 버스를 타다 , Ann Arbor, Michigan,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 도착.













구름 위 






무지개 토론토


























앤 아버에서 기차, 암트랙를 타고 시카고 유니언 역으로 가는 길,

칼라마주 역을 지나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




정겨운 팻말 Kiss 'n' Fly , 시카고 오헤어 공항, 


에반스튼 Evanston, Northwestern 대학에서 버스타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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