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52020. 3. 11. 11:29

Nakjung Kim

July 20, 2015 · 

민주노총에서 오래 일하신 염경석님이 "기본소득이 계급타파 운동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표명한 글을 보고 든, 3가지 메모


원시 Kyung Seog Yeom님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적어도 되겠죠?


(1) 기본소득은 "임노동" 관계를 초월했다는 점에서, "계급적 성격"을 어떤 측면에서는 논하기 힘듭니다. 이런 측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흥미롭죠? 그래서 실제로 캐나다 우파 보수당에서도 '기본소득'과 비슷한 '현금 지급'을 주장하기도 하고, 현재 다른 나라들에서 시행되는 시민권자면 무조건,즉 자산소득조사 (means-test)없이 월 40만원씩 시급하기도 하고, 또 명절 때 그 정도 돈을 주기도 합니다.


(2) 하지만, 기본소득 지지자들 중에 '사회주의적 이행' 전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이미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가장 발전된 단계, 공산주의에서 분배는, '노동시간'이 기준이 되지 않고, "필요 needs"가 그 척도가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앙드레 고르 등 68운동 이후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포스트 포디즘 체제 하에서, 임금-노동자, 임노동-자본의 관계 틀로 더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탈-포드주의 사회를 염두해 두고 정치기획을 구상했습니다. 

 (* Fordism 은 서구 유럽 사회복지 국가 체제의 경제적 토대였습니다. 사회복지가 가능한 물적 토대는 바로 대량 생산 대량 소비였고, 국가 행정 서비스 체제 확보해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계급 투쟁 폭발로 가지 않고, 타협점을 찾게 했지 않습니까? 실업보험, 대학교육 무상, 육아 보조금, 보편적 연금제도 도입, 의료 공공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니까요)


그런데 1971년~1973년 오일쇼크와 브레튼우드 협정 체제 해체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도입과 맞물려, 포디즘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앙드레 고르 Andre Gorz 같은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포스트-포디즘'의 생산양식의 특징, 노동자-자본가간의 권력 관계의 변천, 노동자 의식의 변화 등을 일본, 유럽, 미국 등 공장과 회사,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을 분석해 냅니다.


한국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아직 미진하거나 제대로 연구를 못한 부분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 변천사, 발전사와 기본소득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본소득'과 그 계급 차별 타파 운동과의 연계성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진보정당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이건) 이론이나 실천을 굉장히 폭 넓은, 유연한 리그 정당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 (군, 시, 구청, 전국 등)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그 혜택을 피부로 경험해야, 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를 알 수 있는데, 말로만 '선전문구'처럼,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2002년 민주노동당' 슬로건에 해당하는 기본소득만 세미나 열고 계몽주의적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이를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직접 행정업무를 통해서, 성남 이재명 시장처럼, 기본소득 개념을 실천할 의지를 가지고 집행을 할 필요가있고, 그에 대한 '정책적 평가'를 객관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냥 좋은 이야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현재 한국 공장, 회사,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 가정주부 등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프로그램을 우리가 만들지 못하면, 일자리 나누기, 청년실업 문제, 기본소득 등도 실천하기 힘들 것입니다.



(앙드레 고르, 책 제목이 노동을 다시 되찾아오다, 임금-기반 사회를 넘어서)

[기본소득과 정당 관계]


전 정당에서는 1개 주제로 올인하면 안된다는 입장이고, 현재 행정부 모든 부서들의 주제들을 다 이제 책임져야하고, 그 많은 주제들을 감당할 사람들을 직접 만들고, 그게 타고 태어난 생이빨이 아니면, 틀니라도 끼워야 한다는 생각이며, 치과 의사들처럼 이빨이 닳거나 빠지면 '고쳐서 써야'한다는 태도입니다.

기본소득 개념들이 정치적으로 폭발력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무슨 영화나 음악처럼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정치적 시그널이 다양한 계급 계층에 전달이 되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작년 기본소득 (2년마다 하는 국제행사임) 몬트리올 회의에 통역해주러 갔다가, 칼 폴라니(Karl Polanyi) 딸되시는 분이 "한국에 비정규직, 불안정 프레카리아트 노동자가 많냐고?" 물어보시던데, ... 그 분은 캐나다에서 사시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연금을 대략 2~4개 정도 드는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 회의장 바깥에 커피 숍에서 점심 먹다가, 은퇴한 전기회사 직원 (70세 넘음)에게 물어보니까, 연금 부어놓은 거 총액이 한 달에 우리 돈으로 대략 350~400만원 넘는 같더군요. 아니러니하죠? 기본소득이 필요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각 국가별로 도시별로 '연금제도', 그리고 각 년령별로 개인소득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보이더군요.

'서민에게 복지를, 부자에게 세금을 (재분배 re-distribution)' 그거, 분배도 아니고, 재분배 정치 구호 만든지 2002년 이후 13년 지났는데, 우리가 세금 정치학을 좌파적으로 잘 해석하고 실천했는지,  동네 정치 차원으로까지 가서 실천해야 합니다. 

뭔가 우린 기본적인 케인지안 정책 교과서가 만들어놓은 주제들에 대한 좌파적인 대안도 만들지 못하고 있어서 마음이 바쁘군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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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52020. 2. 12. 23:27

Nakjung Kim

December 3, 2015 ·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한국이 '미래담론'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같은 엉터리 지리학에 기초한 토목공사가 20-30년 가는 미래담론의 가로막았다. 그 이명박 교수 밑에서 송교수가 브레인역할을 하려다가 실패했지 않았던가?


송교수의 허공에 붕뜬, 빈껍데기 '시민성' 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첫번째 지금은 구한말도 아니다. 비유라고 해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구한말, 조선말기라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없다. 정치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빠지면 송교수의 글은 그냥 국민들 야단치기 종아리 걷어라는 것에 불과하다.


- 두번째, 노동자들이 자기 임금만 올리려고 하니까 '시민성'을 학습할 겨늘이 없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사회학 자체가 '열린 주제 분과 학문'이라는 무궁무궁한 장점이 있지만, 구체성에 근거하지 못하면 '붕 뜬 시인'이 되기 십상이다. 서울에서 자기 집이 없는 시민들은 점점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그 다음에 서울 경계선을 넘어 외곽으로 밀려난다. 노동소득이 부족하면 삶의 근거지가 박탈당하는 게 사회학적 현실이다. 


서울은 3층, 5층 연립주택, 상가 빌딩을 소유해서 '집세, 빌딩 임대세'를 받는 계층이 아니면, 월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 노동소득자가 아니면 인간답게 살기 힘들다. 물질적 기초적인 삶의 토대가 무너지거나 그 방어선이 뚫리면, 공동체의 미래를 토론하는 '공적 담론 공간 (동네 카페, 뮤지컬, 도서관, 랑랑 카바레, 노래방, 정당 토론회, 김제동의 톡투유 등)' 참여는 힘들다.


- 송교수 주장이 엄청나게 라디컬한 입장이어서, 비정규직이나 치킨집 짜장면집 자영업자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 대기업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성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면 저 '시민성'은 달라지는가? 그러나 이들도 노동강도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시민성'을 실천할 비-노동, 비-생산 시간은 많지 않다.


- 세번째, 범주 오류, 그리고 구체성의 상실, 서유럽 역사와 중국-한국사 차이에 대한 설명력 결여. 이 기사에 나타난 송교수의 서양역사에 대한 인식은 오류다.


서구 시민은 '국가'와 대결 속에서 시민성을 획득했는데, 한국(북한)은 국가를 구제하느라 '민족주의'에 처 박혔다고 그는 진단한다.


팍스브리태니카, 팍스아메리카나로 대표되는, 또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원인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서유럽국가들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팽창적 민족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건 역사가들의 공통적 견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조선은 그 서구열강의 '민족주의' 요소가 결핍되어 오히려 주권을 상실하는 '패전국'이 되었다. 35년간 일제 해방운동을 해야하는 게 조선이었고, 가장 큰 과제는 '주권 회복'과 '봉건적 질서 타파'였지 않나?


- 네번째, 하버마스의 '공론 토론 영역 (공론장:Öffentlichkeit )에 대한 기계적 대응과 도식들의 오류: 시민사회의 담론 공간의 발생, 성장, 쇠퇴를 논한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것을 송교수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교수자격 논문이 '공론장의 축소와 파괴'에 대한 것이다. 


17~18세기 절대왕정 군주에 맞서 칸트 (프러시아) 루소(프랑스) 존 로크 (영국), 토마스 페인 (영국) 등이 '공적인 토론의 중요성과 출판,표현의 자유를 획득'이야말로 계몽주의 정신의 기초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자유로운 이성의 놀이공간, 지적 공간, 공부 공간, 정치적 문화적 공간을 파괴하고 축소시키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이윤추구와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에서 파쇼적 권력과 무자비한 자본의 이윤추구 세력들과 저항하며 계몽주의의 기초인 '이성의 자유로운 토론' 공간을 확대하려고 노력한 집단은 누구인가?


4대강 만들었던 이명박인가, 아니면 시위 복면자를 테러리스트라고 한 박근혜인가, 대학생들 데모하면 위수령 발동해서 경찰도 아닌 군인들 투하해 총기로 위협했던 박정희인가? 박정희 퍼핏급에 해당하는 전두환 노태우는 생략하자.


- 송호근 교수의 글과 기사에는 '주어'가 명료하지 않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배층의 자기 반성과 정치적 퇴각, 양보 없이 중간층의 '정신'만 회초리로 갈긴다고 해서, 한국의 미래 비전과 담론이 생겨나지 않는다. 잘 해야, 중산층, 교양층들을 시민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재산축적만 하지말고' 시민사회를 이끌어 달라는 윤리교과서적 주문이다.


- 마치며, 우리는 계몽의 삽을 들어야 한다. 송교수의 말을 듣지 않았던 이명박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지형과 강의 구조가 다른, 너무나 다른, (독일은 스위스 알프스가 고지대이고, 북쪽이 저지대이지만, 중앙은 평평한 편이고 경사가 없어 완만하다.그래서 강에 배가 많이 다닌다) 한국 강에 보를 설치하고 운하를 만들어놓고 물을 다 썩게 만들어 버렸다.


다시 계몽의 삽을 들고, 4대강의 썩은 물을 다시 흐르게하자.


뉴스기사: 송호근 교수 "한국 현실, 구한말 패망 직전과 흡사"(종합)

"내부의 분열과 갈등에 밀려 미래 비전 논의 없어"

연합뉴스|입력 13.11.29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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