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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3

백기완의 길( 1955~1975까지) 농촌계몽, 자유대중당, 민주당, 긴급조치 1호 15년 선고, 석방, 다시 중앙정보부 연행 설 이후, 백기완 선생의 별세 소식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백선생이 걸어온 현대 정치사의 길은 어떠했을까? 잠시 신문을 찾아본다. 1955년 (23세)부터 백기완 선생은 일간지에 등장했다. 1975년 2월 긴급조치 구속자 석방까지, 백기완 선생 관련 신문 기사들이다. 1955년, 7월 19일자 동아일보. 신흥(新興: 경희대 전신)대 백기완 군 외 31명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2주간 강원도 벽촌지방을 순회하면서 문맹퇴치 운동을 벌인다는 기사. (* 동명이인인지 확인 필요) 1963년 2월 28일자. 백기완 (31세),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시국 수습안 강연회, 자유대중당을 대표해서 백기완 선생이 발표를 하다. 1965년 8월 14일자. 박정희의 한일 협정 비준안이 통과. 1965년 8월 14.. 2021. 2. 15.
1986.02.15. 옛신문. 치안본부 전국 114개 대학 압수수색. 이대 모의수류탄 2개, 서울대 상복 10벌 메모. 옛 신문을 읽다가. 2021년 2월 15일. 35년 전 신문. 동아일보 1면. 전두환 노태우 정권 하에서 대학은 늘 감시자가들이 있었다. 학교 교직원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두환 노태우 검찰,경찰의 협조자들이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학교 직원들은 전노 독재정권에 협력했다. 압수 수색 용품들이 흥미롭다. 이화여대 모의 수류탄 2개. 서울대 상복 10벌. 35년이 지난 지금, 대학은 어떤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있어야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다. 2021. 2. 15.
백기완 선생 유언 글, 임종 직전 남긴 3 문장 임종 직전 백기완 선생이 남긴 글, 3가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 “노나메기 !!!” ※ 노나메기 뜻풀이 :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 관련 글 1. https://bit.ly/3uga6Ai 백기완의 길( 1955~1975까지) 농촌계몽, 자유대중당, 민주당, 긴급조치 1호 15년 선고, 석방, 다시 중앙정보부 연행 관련 글 2. https://bit.ly/3rZWvuL 백기완의 길 (2), 1979년 YWCA 직선제 실시 데모, 고문 후유증 ~ 1987년 대선 후보와 김대중 김영삼 단 백기완 선생과 한국 현대 정치사 . 백기완의 길 (2), 1979년 YWCA 직선제 실시 데모, 고문 후유증 ~ 1987년 대선 후보와 김대중 김영삼 단일화를 ..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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