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20. 10. 27. 21:23

생물학에서 '진화론'은 삶의 진.선.미와 달리 그 뱡향이 없다는 게 특징적이다. 정치와 문화적 삶에서, '진화론'은 굉장히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자와 가해자의 범죄가 침팬지 힘자랑 게임으로 퇴락하고 만다. 


생물학적 사회진화론, 사회적 다윈주의 용어 "우월한 유전자" 보도, 조선일보, 이건희 손녀 보도, "이건희 장례식장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기사를 보다가.


'우월한 유전자' 라는 단어는 인종차별주의다. '엄친아' 라는 말도 은폐된 생물학적 사회진화론 용어이기 때문에, '우월한 유전자'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해서는 안된다. 타고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결정론'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가 '우월한 유전자' 이다. 


경제적 부, 정치적 권력, 사회적 신분이 중산층 이상인 자를 가리키는 '엄친아'라는 단어도 이와 유사하다. 


'돈 없는 너희 부모를 탓해라. 부자 부모를 가진 것도 개인 능력'으로 치부된다.


TV 광고나 일상 생활에서, 친구와 연인끼리도 '우월한 유전자'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현실을 보면, 1997년 IMF 긴축독재 이후, 한국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신자유주의 논리가 삶 그 자체가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재용 딸, 이씨, 인터넷 반응을 차용, '우월한 유전자'

초웃 로즈메리 홀 (Choate Rosemary Hall) 이라는 비싼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소개. 생활비를 제외하고 1년 학비가 6만 달러가 넘는다 (6천 800만원).

전 세계에서 교육 차별이 심한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의 교육 개혁의 모델이 전혀 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우리는 1년 학비가 6천 800만원인 고등학교가 아니라, '0원'인 공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100세 시대에 최소한 대학 4년까지는 무료 자유 교육 시스템을 형성해야 하는게 시대정신이다. 


또래 아이들이나 국민들이 이런 특권층을 부러워하는 것으로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기자 정신은 실종되고, 사장님 회장님의 '종'으로 전락해버렸다.


세습 신분을 고착화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씁쓸한 단면이다.


21세기에 다시 타고 태어난 '신분을 타파하라'고 외쳐야 하다니.


 


 





이건희 장례식장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김강한 기자


입력 2020.10.26 10:15



지난 25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온 이 부회장의 딸 이원주양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마스크를 써 얼굴을 반쯤 가린 상태였지만 또렷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이 드러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우월한 유전자가 입증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원주양은 2004년 생으로 올해 16세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용산국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명문 보딩스쿨 ‘초트 로즈메리 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주양은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었다.


사진 속에는 이양이 다른 10대 청소년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현재는 계정을 탈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양은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서 역대 최연소로 호두까기 인형 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때는 한국발레연구학회 콩쿠르에서 동상, 6학년때 한음무용콩쿠르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빈소에 들어가는 이양의 모습을 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버지인 이재용 부회장과 어머니인 임세령 대상그룹 전무의 장점만을 섞어 놓은 얼굴” “연예인급 외모” “성인이 되면 어떻게 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장례식장에 신고온 힐은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궁금하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과 임 전무는 2009년 이혼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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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과사람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저희 블로그도 들러 주세요 ^^
    오늘하루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2020.10.29 12:10 [ ADDR : EDIT/ DEL : REPLY ]

정책비교/국제정치2020. 10. 27. 19:36
1. '우월한 유전자' 단어는 히틀러의 '아리안 종족 우월주의'를 떠올린다. 고 1때 읽은 게오르규 소설 '25시',  시골 청년 요한은 독일과 소련 점령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예수도 그 어느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는 시각 '25시'에 기독교 이름 '요한'은 살아야 했다. 

유태인이라 모함받아 독일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렇게 착취당하다가, 어느날  나치 한 장교가 요한을 독일 순수 혈통 우월한 유전자 '아리안 족'으로 선발해, 수용소에서 노동자 감시원 간부 '완장'을 차게 된다.  이 '어이없음'을  앤소니 퀸이 기가 막히게 연기했다. TV에서도 방영된 영화 '25시'에서 요한 역을 맡은 배우가 '사막의 라이언' 에서 리비아 해방군 지도자 '오마 목타르'로 나왔던 앤소니 퀸이었다.

당시 게오르규와 '25시'는 미국과 소련 냉전 대결 체제 하에 있었던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게오르규가 독일, 미국, 소련 등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들과 애환을 쉽게 나눴다. 게오르규는 한국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책을 쓰려고 했다.

독일 제국주의와 소련 팽창주의에 고초를 겪은 동유럽, 중유럽 국가들에 대한 재평가는 필요하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1968년 프라하의 봄' 을 언급할 때 자세히 하기로 한다.  한국 좌파나 진보의 정서는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보다 동유럽,중유럽의 반체제 인사의 정서와 오히려 비슷한 측면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월한 유전와 IQ 성적의 기원>

고등학교 때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잘 몰랐다. IQ 검사 기원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군대를 유럽에 파병할 때, 그 자격을 심사할 요량으로 미군부가 실시한 시험이었다. 또한 지능검사 IQ 시험을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람들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내 주변에는 IQ 160 인 사람도 있고, 나도 한 때 IQ 높다고 형제들 사이에서 괜히 한번 거들먹거린 적도 있었는데, 부끄러운 과거 아닐 수 없다.  

2.  나치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의 우월한 유전자 '레벤스본' 프로그램

나치 히틀러와 하인리히 힘러. '레벤스본 Lebensborn(생명의 기원, 원천)' 프로그램과,
 노르웨이 태생 프리다가 스웨덴 '아바' 멤버가 되기 까지.

스웨덴 밴드 '아바' 멤버, 프리다는 1945년 11월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왜 스웨덴 밴드 아바 멤버가 되었는가?  

뮤지컬 마마 미아 음악으로 잘 알려진 그룹 아바의 '댄싱 퀸', 두 명 여성 가수 중에 한 명이 프리다인데, 나 역시 최근까지도 프리다를 포함 아바 멤버 전원이 다 스웨덴 태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1945년생 프리다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가, 할머니 '아니'가 프리다를 데리고 스웨덴으로  '피란' '망명'왔다. 프리다의 엄마 '지니'는 노르웨이 사람이고, 생부는 나치 친위대 SS 장교였다.  

할머니 '아니'는 독일 점령군이 물러가자, 자기 딸 '지니'가 독일군인 딸을 낳았다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고자 스웨덴으로 피란갔다.  

프리다의 출생 역시 '우월한 유전자'와 연관이 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을 가진 '레벤스본 Lebensborn 프로그램.'은 히틀러와 그 부하 하인리히 힘러가 가동시켰다.  히틀러가 아리안 (Aryan ) 종족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시키기 위해, 선발된 '순수 아리안' 여성들과 주로 독일 나치 친위대 (에스 에스) 군인들과 '접'을 붙여 (sire), '우월한 유전자' 2세들을 생산해냈다. 

1936년 20개 레벤스본이 실제 운영되었다. 레벤스본에 '엄마'로 선발된 여성은, 블론디 머리카락 색깔에 푸른 눈동자를 소유자였다. 당시 이런 여성은 '인종적으로 순수하다'고 평가받고 각종 물질적 사회적 특권도 받았다.

이들과 접붙이 대상 (아빠)는 주로 나치 친위대 에스에스 SS 에서 차출되었다. 독일 전역 레벤스본에서 약 8천명의 '우월한 유전자' 신생아가 태어났다고 하는데,정확한 수치는 모른다. 이들 생물학적 엄마의 60%는 당시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던 '미혼모'였고, 나머지 여성은 에스에스(나치 친위대 슈츠 슈타펠) 소속 군인의 부인들이었다. 

그런데 레벤스본은 독일에만 있지 않고, 노르웨이, 프랑스, 벨기에서도 운영되었다. 그 이유는 가관인데, 에스에스 출신 하인리히 힘러가 노르웨이 블론디-푸른 눈에 병적으로 꽂혀, 그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인리히 힘러는 독일 점령지 에스에스 장교들에게 노르웨이 여성과 '접붙이기'를 장려했고, 신생아들을 친위대가 교육시키려고 했다. 

당시 노르웨이는 유럽 국가들 중에 최빈국 등급에 속했고, 독일의 점령하에 있었다. 이러한 조건들을 나치 힘러가 악용해, 노르웨이 여성들이 '우월한 유전자' 아이를 낳아주거나, 나치에 '기부'를 하면, 재정적인 지원을 해줬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래 아바 멤버 프리다가 '레벤스본' 아이로 태어났다. 프리다의 엄마였던 지니 Synni 가 당시 독일 점령군 나치 친위대 알프레드 하제 (Haase)를 만나 낳은 신생아가 바로 미래 아바 (Abba)의 멤버 프리다였다.

프리다는 독일 패망 후, 1945년 11월에 태어났다. 프리다의 엄마 '지니'는 당시 19세였고, 프리다의 독일 이름은 '티스커바나스 Tyskerbarnas' 였다.  
프리다 본명은 아니 프리드 룅스타 (Anni Frid Lyngstad)인데, 엄마 지니 성을 따랐다.
 
하제는 독일이 패망하자 독일로 돌아갔고, 엄마 지니와 딸 프리다는 노르웨이에 남았다. 프리다는 아빠가 독일으로 돌아가다가 배가 전복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고 한다. 

독일군이 노르웨이에서 물러가자, 독일군 하제 사이에 낳은 아이 때문에 '조국의 배신자'라는 사회적 지탄과 비난을 우려한 프리다 할머니 '아니'는 프리다를 데리고 스웨덴으로 먼저 도피했다. 

엄마 지니는 나중에 스웨덴으로 도망와  세 여자가 같이 살았으나, 1947년 엄마 지니는 콩팥이 좋지 않아 21세 나이로 사망했다.  할머니 '아니'는  손녀 프리다와 같이 살기 위해  바느질 노동을 해야했다.    

당시 스웨덴은 아바 '프리다'와 같은 '레벤스본' 출신 아리안족 우월한 유전자 수백명을 수용하기로 했다. 노르웨이는 이들을 스웨덴을 비롯, 브라질, 독일, 오스트랄리아 등 다른 국가로 보냈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바가 전 세계에 알려진 후, 1977년 프리다는 생부 알프레드 하제를 최초로 상봉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 참조) 

히틀러와 미치광이 하인리히 힘러의 '우월한 유전자' 프로그램이라는 반인륜적 범죄 속에서도, 노르웨이에서 스웨덴으로 망명한 다음, 문화인으로 대중예술가로 살아남은 사람이 아바의 '프리다'였다. 하지만 대다수 '우월한 유전자' 아리안 족들은 '프리다'처럼 살지 못한 채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히틀러와 힘러의 '우생학' 집착은  우수종자 돼지, 강아지처럼 '접 붙이기'를 넘어서, 직접 아이들을 납치했다.  1939년 이후 하인리히 힘러는 아리안 종족처럼 생긴 아이들을 여러나라에서 직접 납치해 왔다.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노르웨이 등. 폴란드, 러시아를 비롯 동유럽 국가들에서 20만명 아이들이 납치당했다.  


이들을 선별해서 '우월한 유전자 자격 미달자'는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버려졌다. 우월한 유전자로 선별된 아이들은 자기 이름 대신 독일 이름을 부여받았다. 마치 일제 창씨 개명처럼. 이러한 기록과 서류 대부분은 소각되었다. 폴란드의 경우, 1만명 중, 15%만이 생부모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이런 비극적 사실을 고려하면, 
전 세계적 밴드가 되고 스웨덴을 상징하는 '아바'의 프리다는 운이 좋았다고 할까? 프리다 할머니 '아니'가 하인리히 힘러가 그렇게 선호했던 노르웨이를 필사적으로 탈출해 스웨덴에 정착했기 때문에 아바 '프리다'의 성공은 가능했다. 


3. 우월한 유전자, 타고 태어난 천재, 엄친아에 환호하는 한국 언론들과 일상 시민들

'우월한 유전자'를 생산하기 위해 제 2의 '레벤스본'과 같은 범죄는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아름다운, 용감한 신세계 a brave new world' 의 알파, 베타, 감마 신생아 계급 이야기가 출판된 게 1932년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노동자에게 가장 가혹했던 '해고 자유'를 내세운 IMF 긴축 독재 이후, 지난 23년간 한국 사람들에게 '우월한 유전자'라는 단어는 마치 생물학 교과서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고, 이를 사회적 성공의 결정적 요소로 설명하기도 한다. 


'레벤스본'을 세워 블론디-푸른 눈 여성과 나치친위대 남자를 '접붙여' '우월한 유전자'를 생산해, 전 세계의 강력한 지배자 되고자 했던 히틀러와 그 따라지 하인리히 힘러가 한국에 온다면, '거 봐라, 레벤스본, 너희들도 좋아하잖아' 말할지도 모른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부터 시작해서, 타고난 천재, '우월한 유전자', '엄친아'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고,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우정을 가로막은 수많은 장벽들을 만들고 이를 즐기는 부류와 한탄하는 부류가 생겨났다.  1987년 유월항쟁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헌법' 하에서 합법적으로, 또 당당하게,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우월한 유전자'를 칭송하고 있다.  새로운 헌법이 이제 필요한 것 아닌가? 

타고 태어날 때부터 옆에 살아가는 내 친구 동료를 '있는 그대로' 친구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 이 '우월한 유전자' 맹신도들, 그들을 매일 매일 재생산해내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부터 우월한 유전자 이건희 손녀를 칭송하는 조선일보까지, 그 밑바닥에는 '적자 생존'을 사회적 윤리로 격상시키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이 깔려있다. 이 '우월한 유전자' 라는 신흥 도그마를 누가 즐기는가?  

 







(프리다와 그 아버지 알프레드 하제. 1978년 네덜란드 매거진 '팝 포토'에 실림

Frida and her father Alfred Haase in 1978 article from the Dutch Magazine Pop Foto.)



Adolf Hitler envisioned a perfect world filled with perfect people. He took drastic measures to eliminate those who did not fit in with his vision via the “Final Solution.” 


However, German citizens who did fit in with his view of perfection were bestowed with another fate.




Hitler enacted programs to streamline racial purity by forcing Jews, homosexuals and the disabled into concentration camps, sterilization and euthanasia.


 But for blonde-haired blue-eyed  German women who were deemed “racially pure”, they were given another “privilege.”


It was known as Lebensborn, a selective breeding camp to increase the birth rates of the Aryan race during the war years. Women were screened by doctors to ensure their Aryan heritage all the way up through their grandparents.


 Qualifying women were required to be free of disabilities or mental illness.



Members of the SS were encouraged to participate in fathering the children at Lebensborn facilities. 


There was also evidence of kidnapping children who looked close enough to the Ayran requirements and adopted by German families.


In total there were over 8,000 Lebensborn children brought into the world. It was another example of German eugenics and the architects of the program were placed on trial for war crimes following the war. 



This video goes deeper into the dark history of Nazi Germany’s Lebensborn babies.














What History Didn’t Tell Us about the Nazi “Super Baby” Breeding Program

BY MESSYNESSY APRIL 6, 2017




If there was one subject that could ever truly capture my attention at school, it was the monster story that was Adolf Hitler’s Nazi regime.


 I’ve admittedly always been a ‘bad reader’, but outside of class I devoured books on the war as a teenager and still to this day, there seems to be no end to its disturbing secrets buried beneath history’s hidden rocks. 


Today, I fell into another dark pool of World War II’s repressed footnotes by discovering the details of the Lebensborn breeding program … a story that I would only recommend for those who, like myself, have that insuppressible desire to learn history’s most uncomfortable truths.




Lebensborn, meaning “fount of life” was an SS-initiated program that encouraged anonymous births by unmarried “racially pure” women who were selected to breed with Nazi officers and secure the future of a “super race” for the German Reich. 


The program expanded into several Nazi occupied countries including Norway, France and Belgium, resulting in a shameful post-war ostracism of surviving Lebensborn mothers and the mistreatment of their displaced children across Europe after Germany lost the war.




FRIDA LYNGSTAD OF ABBA WAS A SURVIVOR OF THE LEBENSBORN



An estimated 8,000 children were born in Lebensborn institutions in Germany, up to 12,000 children in Norway and countless others across occupied countries where “super babies” had been selected become part of the German master race. 




(왼쪽에서 세번째가 프리다)


The most famous of the surviving Lebensborn children is Frida Lyngstad of the iconic Swedish pop band, ABBA (pictured third from left).




With their blue eyes and blond hair, Norweigans were regarded by the Nazi regime as especially Aryan. 


Heinrich Himmler, the head of the SS and the creator of the Lebensborn, favoured Norwegian women for his perverted program and set up the majority of its institutions in Nazi occupied Norway.




LEAGUE OF GERMAN GIRLS


독일 소녀 리그.






To counteract falling birth rates in Germany, and to promote Nazi eugenics, leaders of the League of German Girls were also instructed to recruit young women with the potential to become good breeding partners for SS officers.



A LEBENSBORN NURSERY



Young women who could prove their Aryan ancestry were given incentives for bearing Aryan children, including financial support and privileged treatment in maternity homes. For many Norwegian women, it became a survival strategy during the war, when their country was one of the poorest places in Europe. 


At a time when abortion was illegal, they could also have the option of leaving or donating their children in the Lebensborn’s special homes, where the child would receive special nutrition and an upbringing and education which reflected the Nazi way of thinking. The Iron Cross award was given to the women who bore the most aryan children.


A LEBENSBORN CHRISTENING


Due to destruction and widespread cover-up of Lebensborn records, it cannot be confirmed whether young girls were forced to mate with Nazi officers, despite strong suggestion that they were (sexual assault was almost official policy within the Third Reich).


 The program was undoubtedly however, a system of supervised selective breeding, and recently discovered records show that “some SS men did sire children in Himmler’s Lebensborn program”.


Just to remind us, I took the liberty of pulling up the definition of ‘sire’ : the male parent of an animal, especially a stallion or bull kept for breeding. 


In 1939, membership of the Lebensborn stood at 8,000, of which 3,500 were SS leaders.




HEINRICH HIMMLER PICTURED WITH HIS DAUGHTER IN 1938 IN BERLIN. (AP-PHOTO)



On 13 September 1936, Heinrich Himmler had written the following to members of the SS:


The organisation “Lebensborn e.V.” serves the SS leaders in the selection and adoption of qualified children. The organisation “Lebensborn e.V.” is under my personal direction, is part of the Race and Settlement Central Bureau of the SS, and has the following obligations:


1. Support racially, biologically and hereditarily valuable families with many children.


2. Placement and care of racially, biologically and hereditarily valuable pregnant women, who, after thorough examination of their and the progenitor’s families by the Race and Settlement Central Bureau of the SS, can be expected to produce equally valuable children.


3. Care for the children.


4. Care for the children’s mothers.


It is the honorable duty of all leaders of the central bureau to become members of the organisation “Lebensborn e.V.”. The application for admission must be filed prior to 23 September 1936.




Relationships between German soldiers and Nordic women in occupied countries were strongly encouraged, provided both parents were proven to be “racially valuable”. The program also accepted women of Aryan descent who were already pregnant or had already given birth and were in need of aid. About 60% of the mothers were unmarried and the Lebensborn allowed them to give birth secretly away from home without social stigma. In most of these cases, the mothers agreed to adoption, but not all were informed that their children would be sent abroad to Germany.



ONE OF THE LEBENSBORN INSTITUTIONS

 


The first of more than 20 Lebensborn homes opened in 1936, in a tiny village near Munich in 1941, the first institution abroad was opened in Norway.


A LEBENSBORN HOUSE IN FRANCE


In northern France, a home was opened in the town of Lamorlaye in 1944 where an estimated 200 children were born. The building (pictured above) now houses a branch of the Red Cross. The Lebensborn facilities included an on-site orphanage and offered adoption services. They were often established in confiscated houses and former nursing homes owned by Jews.




While the program initially excluded children born to foreign women and common (non-SS) soldiers for reasons of racial purity, the Lebensborn later expanded into countries with Germanic populations where parents and children were usually examined by SS doctors before admission. 


But in an even darker twist to the Lebensborn program, the strict requirements of racial purity were practically abandoned altogether by Heinrich Himmler when he took his mission to unimaginable extremes…




In 1939, under Himmler’s direction, Nazis began kidnapping thousands of children regarded as “Aryan-looking” from foreign countries, most notably Poland and Yugoslavia, but also from Russia, Ukraine, Czechoslovakia, Romania, Estonia, Latvia, and Norway – for the Lebensborn program.



Himmler reportedly said, “It is our duty to take [the children] with us to remove them from their environment… either we win over any good blood that we can use for ourselves and give it a place in our people or we destroy this blood”.


The policy of the Lebensraum had essentially given birth to the Nazi ideology of German expansionism and the regime’s plan for the genocide and ethnic cleansing on a vast scale. This was the real crime of Lebensborn, a seemingly helpful, almost innocent welfare solution for struggling women. How easily evil can disguise itself…



A NAZI NURSE SHARES THE LIGHT RAYS AS SCIENTISTS TRY VAINLY TO LIGHTEN THE HAIR COLORING OF SUPER RACE CHILDREN


An estimated 200,000 children were stolen from their parents in Poland, Russia and several Eastern European regions for the purpose of ‘Germanization’. 


They were categorised into groups from the “most desirable” to the least Aryan-looking. If they couldn’t be of use to help build Hitler’s master race, they were discarded and sent off to concentration camps. If a child was considered “acceptable” they would begin indoctrination, spending time at ‘re-education camps’ before being fostered out to German families or boarding schools where they could become culturally German. They were given new German names and forced to forget their birth parents and ancestry. Any children who fought against their indoctrination or resisted, met a tragic fate.




All records of these mass kidnappings were destroyed in the final stages of the war, which made it near impossible to locate and identify children or even know exactly how many were taken. The Polish government has claimed that less than 15% of 10,000 children were returned to their biological parents.



Of the Norwegian children that were born into or indoctrinated under the Lebensborn program, the Norwegian government was able to recover all but 80 after the war. Local communities who had lived in starvation for most of the occupation, sought revenge on both the mothers and children of the Nazi maternity homes where members had received the best treatment available.




The press reported on the unusually well-fed “super babies” that had received two baths a day. Lebensborn mothers were publicly beaten, shamed, ostracized and often sentenced to slave labour. 


The “superior” children who had effectively become German under the Third Reich’s program, were considered outcasts and placed in orphanages or even in insane asylums where they would be relentlessly bullied and abused. The Norwegian government itself even attempted (unsuccessfully) to deport the Lebensborn children to Germany, Brazil, and Australia.



Sweden took in several hundred unwanted children from Norway, including future ABBA singer Anni-Frid Lyngstad, whose father was a German sergeant. Her widowed Norwegian mother escaped persecution after the war and took Anni-Frid to Sweden, where their personal history could not be traced.




In 2008, a group of survivors brought a case before the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to fight the Norwegian government into admitting complicity in their mistreatment, revealing shameful details of the program’s aftermath. The case was dismissed with a compensation offering of £8,000 from the Norwegian government.



Associations have since been formed to help survivors identify their origins through documents administered by the International Tracing Service and the German Federal Archives. 




There are so many facets of war that have been under-reported, swept under the carpet and left out of the history books, in large part due to the fact that we find them uncomfortable to talk about. I consider this sort of taboo historical knowledge as further education; a most fundamental one, that can help us identify dangerous patterns in society and recognise early on when history might be dangerously close to repeating itself.



Archive image sources: Histomill, Bytes Daily, DW.com.


https://bit.ly/3jtmw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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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ims of Hitler's plan for a master race

Climate of shame suppressed discussion of Third Reich's social impact
German nurses take babies out for fresh air in the grounds of a former hotel in the Bavarian resort of Bad Wiessee in June 1945
German nurses take babies out for fresh air in the grounds of a former hotel in the Bavarian resort of Bad Wiessee in June 1945. Photograph: William Allen/AP
 in Wernigerode
Mon 6 Nov 2006 09.36 GMT

The Lebensborn Kinder - a long hushed-up aspect of Nazi history - were born in special maternity homes, places where mostly unmarried women and the wives of SS men gave birth to children with "good Aryan" blood.


Now in their 60s, a group of these children met this weekend in the eastern German town of Wernigerode, telling their stories in the hope of quelling the taboos and flamboyant myths about the murky Nazi institutions.


"It's high time to tell the truth," said Gisela Heidenreich, one of the 37 Lebensborn (source of life) children who travelled to the quiet town. 

"There's been too much talk about Nazi babies, women being kept as SS whores and tall blond people being bred."


The assembled group, who have travelled from far and wide, are notable for their diversity - a far cry from stereotypes of any unified Nazi master race. While a few have light blond hair, most are now grey.


Walking down the leafy streets after visiting Wernigerode's Lebensborn home, Gisela described the confusion she and her peers have suffered. 

Her eyes blazed as she spoke of the web of lies that dominated her childhood. 

First she was led to believe that her birth mother was an aunt. She was later told that her father, a married SS officer, was dead. She woke up to the fact that all was not as it seemed when she was four and heard her uncle refer to her as "an SS bastard".


"That was the first time that my world fell apart.

 My second shock came when I was a teenager and found out through mere coincidence that my father was alive," the tall, blond woman explained. 

"I've learnt that this feeling of deep uncertainty about my identity is typical of us Lebensborn children. So many felt that something was wrong before they discovered the truth."


For decades after the second world war a climate of shame suppressed discussion of the social impact of the Third Reich. 

That meant that many Lebensborn children only recently discovered their roots - especially those who grew up in the former communist east. 

Among those, some were astounded to read about their background in their Stasi secret service files, which were made public after the reunification of Germany in 1990.


The children represented a traumatic chapter in 20th century history and were often shunned by society. 


Kikki Skjermo, a lively woman who travelled here from Norway, described being stigmatised as a "Nazi child" during her childhood in a Norwegian children's home.


 When she later found her own mother she also met a wall of coldness. "She only touched me once, gently on the nose. I can remember that day so clearly," Kikki said.


The weekend meeting of the group called Lebensspuren (traces of life), is full of similarly painful stories. 


Since its creation four years ago, its members swap stories about tracing relatives and dealing with rejection and lies. 

There is the odd happy tale of reunited families, but for many it has been a battle against taboos and misinformation.


Folker Heinecke was only two years old when he was kidnapped in what is now Ukraine by Nazis because of his Aryan looks. 


He thinks his real name is Aleksander Litau. After growing up in East Germany, he was only able to search for his family when the wall came down.


He travelled to the rural town in Ukraine where records suggest he was found. "I walked around and, even though I have no memories of living there, it somehow felt strangely comfortable to me. I was sent to some houses where children were meant to have been kidnapped - but no one knew anything," the smartly-dressed 66-year-old said. "I'll keep looking."


Hartmut Mueller, who is sitting in front of him, nods and reaches over to hold Folker's hand. "I know what that's like. I know I've got two other siblings but I just can't find them anywhere."


In Wernigerode, the Lebensspuren organisers want to create a museum in the inconspicuous cream-coloured house that was formerly a Lebensborn home. The last Lebensborn baby was born there in 1945. 


It was kept as a maternity clinic for years afterwards - partly because the Nazi era equipment had been state of the art. When the home was cleared out in 1990, books were found listing the births which had taken place there.


Standing on its front lawn, a member of the Lebensspuren board stresses how important it is to document what happened, but always with a nod to the larger tragedy of Hitler's regime. The museum must remind future generations, "but certainly not stand as any sort of memorial", he says. "That is the crux of the dilemma for this generation. They are victims but at the same time, the children of criminals".


This unwieldy historical baggage impels Gisela to take her story to pupils in schools and colleges. 

"We all need to be aware of what happened, especially the younger generations," she said at the meeting. 

"The story of Lebensborn is so important because it's about families; mothers, fathers, children, it's something they can empathise with."


And for her - as with others gathered in the room - telling the truth is all-important. As she gives an impassioned speech to the crowded room, it is clear how her ruptured history has dominated her life. And her chosen career comes as little surprise - family therapy.


Backstory


Lebensborn, which means "source of life", was a programme created by Heinrich Himmler, Adolf Hitler's right-hand man. 


It was designed to boost the German population by encouraging citizens, especially SS members, to have more children.


 SS officers came under pressure to have four children, inside or outside marriage. 


Ten maternity homes were set up across Germany where 8,000 to 12,000 Lebensborn Kinder were born. 


Some stayed with their mothers, but many were adopted by families of SS officers. About 60% were born to unmarried mothers, the rest to wives of SS men. 


As the Third Reich expanded, Lebensborn homes were set up across Europe.


 In Norway some 10,000 babies were born, most fathered by SS officers to Norwegian mothers.


 There were also cases of children with "Aryan" characteristics being kidnapped from their homes in occupied territories.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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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20. 10. 27. 17:18

참고 자료

COVID-19 and the aviation industry-Impact and policy responses




원시 평가: OECD 보고서는 항공산업의 ‘공공성’ 확충이라는 관점은 좀 부족한 편임. OECD 국가들의 항공사 지원책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는 자료임. 이 문서작성자들은 친-시장적 입장에서 정부 역할을 주로 서술함. 정의당의 정책노선이나 관점은 되기는 부족한 글임. 


제목 코로나 19로 항공사 적자 증가, OECD 국가별 정부의 지원 대책 OECD 작성 보고서  (2020년 10월 15일: COVID-19 and the aviation industry: Impact and policy responses)



1.현실: 2020년까지 항공사 부채 규모는 28% 증가할 예정. 2020년 8월 현재  승객 킬로미터가 작년에 비해 75%로 소했다.


2.항공 교통 산업은 GDP 비중이 OECD 평균 0.3%로 적지만, 항공과 항공모함 제조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항공산업 전체 대출, 대출보증, 임금 보조지원, 정부산업지원 등 악화.

  

3. 3가지 종류 항공산업들 상호 의존도 

(항공기 제조사, 항공서비스 업체, 공항은 서로 긴밀히 연결) 

이유: 어떤 공항은 그곳을 허브로 사용하는 특정 항공사들에 의존.

공항 소유주는 사적 소유, 공적 소유 두 가지. (예를들어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일부를 소유하고 있음) 

OECD 국가들에서 공항 소유자의 4분의 3은 공적 소유임. 

항공제조업의 주 고객은 항공사이다.


참고 사항 : 항공산업의 14%가 다른 교통산업으로, 예를들어 철도산업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4. 2020년 OECD 국가들 정부 지원금 1600억 달러

이중 3분의 2가 직접 회사 원조

이중 25%는 임금 지원금


세가지 방식들

1) 특정하지 않은 포괄적 지원: 적자 회사에 돈 지원 (유동성 공급)과 노동자 고용 유지 목적을 위한 직접 현금 지원 


2) 항공 산업 부문별 지원: 오스트랄리아 : 정부가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반환해줌

연료 내국세, 안전관련 비용 면제 (2억 8500억 달러) 

미국의 경우, 항공사 노동자들 임금 지원 (320억 달러 임금 지원)
https://home.treasury.gov/policy-issues/cares/preserving-jobs-for-american-industry/payroll-support-program-payments


3) 특정 회사별 지원:  부분적 혹은 전면 항공사의 국유화 (이탈리아의 경우 알리탈리아 (Alitalia) 항공사, 독일의 경우 루프트한자 Lufthansa 등 규모가 큰 항공사가 이미 존재하는 곳.


공동체 손해 부분

비행기가 주요 교통 수단인 ‘섬’ 같은 지역 주민에게 타격.

항공사가 적자 발생하면 ‘탈탄소’ 투자가 힘들어진다.


5. 정부의 항공산업 개입 방향들 3가지.

1) 정부는 적자 항공사를 지원하되, 항공산업의 경쟁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2)정부는 항공산업 생리와 변화구조들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적자 회사는 시장 경쟁에 따라 처리해야 함) 3) 정부 개입은 항공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키셔야 한다.항공산업의 적자 때문에 ‘탈탄소’ 프로젝트가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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