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스마폰 시대, 잡지와 동인지의 부활 가능성.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 물] 창간한 한창기 선생 이야기.


49년 전통, 한때 50만부를 자랑하던 월간 <샘터>가 폐간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고 든 생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존 인쇄 매체의 퇴조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신기술과 신세대에 맞게 잡지나 동인지는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다 ‘작가’가 될 수 있는 스마폰 시대에 맞는 ‘소통, 매체’를 만들면 된다.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잡지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잠시 70년대 ‘잡지가 이럴 수도 있구나’를 보여준 것이 [뿌리깊은나무]였다고 한다. 강만준 교수의평가에 따르면,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 나무] 이전과 그 이후로 양분될 수 있다고 한다.


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뿌리깊은나무]를 폐간시키기 전까지 ‘가로쓰기’를 처음 했고, 필진들도 다양했던 [뿌리깊은나무]는 21세기에도 폰과 앱 기술을 만나 새로운 매체로 진화될 수도 있다. 이건 실천의 문제이니 앞으로 하면 될 것 같다.


몇 해전 부친과 대화를 하다, 한창기 선생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전쟁 휴전회담 중, 아버지는 순천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3학년이었던 한창기 선생과 하숙방에 같이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그 한창기에게 자기 장남을 맡긴 것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할아버지는 어린시절 가난하여 자기 어머니인 청주 한씨 친정 벌교 고읍리에서 일을 한 경험 덕분으로, 그 곳 한씨 일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창기 선생을 비롯, 한씨 일가는 자녀들을 순천중고등학교로 보냈다. 자기 장남 교육열이 높았던 조부는 모든 입시정보를 삼사십리 떨어진 벌교읍 고읍리 한씨 일가로부터 얻었던 것이다.


당시 중학 입학을 위해서는 초등 6학년들이 ‘지능고사’를 치렀다고 한다. 500문제를 푸는데 200개 를 맞추고 200개를 틀리면 0점이 되는, 즉 ‘감점제도’가 있는 가혹한 시험제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창기 선생이 순천중을 졸업하고 광주고등학교로 입학하기 전까지 같은 하숙방에서 살면서 ‘창기 형님의 지도하에 공부를 했다.’ 부친은 초저녁 잠이 많아 졸다가 한창기 형에게 꾸지람도 듣기도 했다. ‘창기 형이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를 했냐면, 천정에 솜방이를 매달아 놓고 거기에다 바늘을 꽂아서 머리까지 오게 한 후, 졸면 이마가 바늘에 닿게끔 그런 장치를 해놓고 공부를 했다’


한창기 선생은 순천고로 진학하지 않고 광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벌교읍 고읍리 한씨 일가들은 한창기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고 했다. 대학시절 영어를 잘 해서 이승만이 주는 장학금을 받고 청년 한창기는 미국에 체류하며 영어공부를 했고, 나중에 브리태니커 본사로부터 영어를 가장 잘하는 아시아인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런데 청년 한창기는 집안과 벌교읍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법조인 고시를 보지 않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 체인점 사업을 했다. 고읍리 청주 한씨 친척들의 실망은 대단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학,군대 갔다고 오고 결혼해서 우리들 키우느라, 한창기 형님과는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부친에게 한창기는 굉장히 특이하고 지독하게 공부하던 형, 보통 세상 사람들이 기대했던 삶과는 동떨어진 독창적인 형님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부친께서 한창기 선생이 평생 혼자 사시고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하셨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당시 순천 하숙방에 빨치산이 내려와 조부께서 이고 온 쌀을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을 같이 산 형님에 대한 인간적 아쉬움의 표명이었다.


한창기 선생은 1997년에 간암으로 별세했다. 부친께서 진즉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 물] 창간자가 한창기 선생이었다는 우리들에게 해줬으면, 살아 생전에 만나서, 그 비법을 전수받았을텐데 아쉽다. 왜냐하면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은 문화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고, 민주주의와 문화라는 주제를 ‘잡지’ 형태로 표현해낸 당대의 대중예술이기 때문이다.


한창기 (1936~1997) 주요업적

1976년 3월 월간 [뿌리깊은나무] 창간. 1980년 8월 전두환이 폐간시킴

1984년 11월. 여성지 표방, [샘이깊은 물] 창간. 2001년 11월 폐간.




한창기는 누구인가? 그를 다룬 책 [특집! 한창기, 2008,창비] 5페이지를 보면 “한창기는 직판 세일즈맨 제 1세대를 조직하고 훈육한 사람. 몇 세대 앞선 선진적 업적을 남긴 언론-출판인. 미시적인 관찰력으로 머리카락에 홈을 파듯이 글을 쓰는 문화비평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생동하는 광고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 심미안이 빼어난 문화재 수집가.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의 회생을 도운 비개비. 전통 의식주의 파괴없는 창조적 계승을 실천한 사람. 국어학자가 울고 가는 재야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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