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이진경 논리전개의 결함들 . 이진경의 주장은 아주 간단하다. "조국이 장관 자격이 있고, 문재인의 장관임명이 국민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이다. 주장은 명료한데, 가져다 대는 논거들은 개념들이 불명확하고 자의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다.  



(1) 이진경은 도덕(morality)와 윤리(ethic)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서양철학 윤리학이나 일상생활에서는 '도덕'과 '윤리'는 동의어로 쓰인다. 헤겔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을  '순수 테러주의(나만 옳다는 신념)' '비역사적' '비현실적 무능력'이라고 비판하면서  근대 개인의 '도덕 Moralität'와 사회 '윤리 Sittlichkeit'를 구별하기는 했다.


 이진경이 이런 칸트와 헤겔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덕과 윤리를 구별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니, 굳이 '도덕'과 '윤리'를 구별할 필요없다. 


(이런 흥미로운  칸트-헤겔 논쟁을 아주 긴장감없게 발전시킨 것이 미국 롤즈의 입장인 political liberalism과 communitarianism 간의 논쟁이다.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 '정의론'이 100만부 팔렸는데, 후자 범주에 속함. 샌델보다 더 심오한 사람이 그 스승인 알스데이르 맥킨타이어이다. 스코트랜드 사회주의자였으나 소련에 실망해 미국으로 넘어가 헤겔 윤리학을 발전시켰다. ) 


(2) 이진경은 도덕의 범주는 '선과 악'이고, 윤리는 '좋음'과 '나쁨'이라는 범주를 쓴다고 주장했는데,이것도 별로 정확하지 않다. 그러한 구분을 하지 않고, 도덕과 윤리는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의 판단 기준이다. 


우리가 '행위'의 옳고, 그름 (시비지심 right or wrong), 좋고 나쁨(good or bad)를 판단할 때, 도덕과 윤리는 필요하다. 윤리학자나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보틍 사람들이 다 아는 내용이다. 


어원만 보더라도, '도덕'과 '윤리'는 동일하다. morality 모랄리티를 '도덕'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의 어원인 라틴어 moralis는 '우리의 행동 방식이나 태도, 관행과 관습을 뜻하는 매너 manner, 커스텀 custom'이라는 뜻이다.


'윤리'로 번역한 ethics 의 그리스어는 에토스 ethos 이다. 이는 character, custom 기질 특질, 관행과 관습을 의미한다. 실제 영어화된 단어 에토스는 '한 개인이나 집단이 공유하는 행위 원리와 믿음 체계'를 뜻한다. 


(3) 이진경은 조국 법무장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윤리주의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국에 대한 '도덕' 과잉을 버리고, 조국이 국민과 민중에게 '공익'을 주는 능력, 정치가로서 탁월함 (excellence) 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주장도 정치적 행위와 도덕-윤리와의 관계가 뗄래야 뗄 수 없기 때문에, 이진경의 주장은 지극히 개인이 고안한 이론이거나, 누구나 보편타당하다고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4) 이진경은 조국비판론자들의 논거들을 회피해버렸다. 혹은 '도덕 과잉론자' '현실 정치를 모르는자'로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국 장관 자격없거나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도덕 과잉'에 빠져서, 윤리학자이기 때문에 조국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조국의 의혹들(자녀 특권층 논란, 웅동학원 재산 투명성, 재산 증식과정과 사모펀드 투자 문제점)의 정치학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고, 조국이 그 동안 주창한 정치적 주장들과 상충하기 때문에, 그 충돌을 조국이 '정치적으로 ' 해명하고 책임져라는 것이다. 이것을 '도덕 과잉'에 빠졌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5) 조국의 사회주의론과 민주주의론은 '연대와 협동'에 기반한 것이고, 그러한 연대와 협동이라는 '행위'가 좋고, 옳은 이유는 조국의 '윤리학' '도덕'에 기초하고 있다. 


조국의 정치적 발언들과 책들 안에는, "당신들이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만을 열심히 추구하라.그렇게하면 당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의 결과들이 산출되어, 개인들의 총체적인 합인 사회에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라는 아담 스미스 전제가 나오지 않는다. 


나경원과 황교안의 정치행위는 그들의 '도덕과 윤리'체계에 기초하고 있다.  도덕-윤리와 정치를 분리시키는 이진경의 논리는 실제 정치 전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6) 이진경의 주장은, 조국 장관이 장관직을 수행하면 '조국의 능력 증진'에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입증 부담이 너무 크다. 이러한 이진경의 개인적인 '소망' 때문에, 만약 수천만명 국민들이 조국 장관이 '훌륭한 탁월한 정치가'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사실 거창한 '윤리주의적 전환'이라는 말도 필요하지는 않다. 이미 아테네 소크라테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와 근대 교량 시대 사람인 마키아벨리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이 정치 지도자의 '탁월함' '정치가로서 덕목들 virtues ' 개념이 있었다. 


이진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마 '정치가의 덕목과 능력'이었을 터인데, arete 아레테 (덕성, 덕목, 능력, 기능) 도덕과 정치학이다.이것은 공자 맹자가 강조한 '군군 신신 자자'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것과 내용상 동일하다. 


그런데 국민 60%가 지금 조국 장관의 탁월함, 덕목들 (arete, virtue)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상태이다. 


이진경의 마지막 문장 '나는 지지하는 것이 바르다 right (도덕적으로 옳다)'고 했는데, 정작에 자기 자신은 '도덕'과 '윤리'에서 사용하는 '옳음, 바름 righteous'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조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도덕 과잉'이라고 비판하면서, 자기 주장은 '도덕적 단어'에 갇혀 있다. 


(7) 정치학은 윤리학과 도덕에 기초해있고, 정치적 행위들은 우리 모두 윤리와 도덕에 기초해있고, 행동 결과도 도덕과 윤리 척도들에 따라 평가받는다. 


윤리학 도덕 없는 계급투쟁은 개 돼지 먹이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 논란에서 '신분제 자본주의'와 '교육 차별'이 가장 큰 주제로 대두된 것은, 조국 장관이 평소 주장한 '연대와 협력'의 사회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행동은 하나이다. 이론은 여러가지다. 머리가 복잡한 이유다. 하지만 행동과 이론은 수미일관해야 하고, 일이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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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it.ly/2o7cdct


(10월 6일, 한겨레 21 ) 이진경


조국에 대해 사람들이 지지를 주저하는 이유 가운데 큰 것이 도덕적 판단인 것 같다. ‘(자신이) 한 말과 다르게 어떻게 그렇게 살았냐’고 하는데 그런 평가를 할 만한 여지도 있다. 다만 모럴(Moral·도덕)과 에시크(Ethic·윤리)는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의 범주는 선과 악이고, 윤리는 좋음과 나쁨이라는 범주를 쓴다. 지금 많은 경우 선악으로 평가하는 것 같은데, 나는 윤리주의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일반 국민, 민중의 관점에서 어느 것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관점에 서야 한다. 누군가의 능력을 증진하는 게 좋고 감소시키는 게 나쁘다고 본다면, 조국을 버려야 할까 지지해야 할까. 나는 지지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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