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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65

노회찬의 길, 진보정당 개척사 - 1989년에서 1999년까지 신문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한국 진보정당의 장인 (마에스트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에 보도된 진보정당과 노회찬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거의 처음으로 대중 언론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89년 12월 26일 (한겨레 신문)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되기 전까지 조중동 등 보수 일간지는 노회찬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인민노련 탄압 이후, 인노련 재건 사건으로 노회찬 (33세)은 권우철, 차명진 등과 더불어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 1990년 3월 30일, 한겨레 신문에서 노회찬과 인노련에 대해서 '혁신세력'인가 이적단체인가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다뤘다. 노회찬과 인노련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노동자들에.. 2018. 7. 26.
손석희 앵커의 노회찬 의원 추모, 손석희 님 고맙습니다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가 삼일 연속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추모했다. 노회찬 의원과 동년배라서 그랬을까? 손석희 앵커와 노회찬 의원과의 마지막 인터뷰의 씁쓸함 때문이었을까? 손석희 앵커 앞에서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간 노회찬 의원도 손앵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왜 노회찬 의원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는지도, 또 그가 죽음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었으리라. jtbc 손석희 앵커의 속정과 진보정당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 고마운 일이다. 손석희 앵커는 다음과 같이 노회찬의 유서를 낭독해 주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노회찬) 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http:.. 2018. 7. 26.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빌며 - 윤동주 시인의 '길' 정치가의 말의 품격보다도 더 소중한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한 단계로 올려놓았던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나도 힘들어, 우리도 어려워' 그런 한 순간에, 우리는 노회찬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믿기도 힘듭니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길을 떠나버린 진보정당 마에스트로 노회찬, 그가 밉기도 합니다. 광주 518 도청문을 굳게 닫았던 사람들처럼, 당신의 양심의 문을 굳게 닫아 모든 적들을 예단해버렸던 그 외로운 선택 앞에, 부담을 나눠 짊어지지 못한 자책감은 길고도 진하게 남을 것입니다. '꿈이 뭐냐고 물었죠?'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하는 것'이 노회찬 의원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첼로보다도 피리를 잘 불었다는 소년 노회찬, 단아한 어머니를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수줍.. 2018. 7. 26.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다. 노의원 어머니 원태순 여사께서 본 노회찬, 수의번호 336번 노회찬 어머니 원태순 여사 인터뷰 (2004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시 사무총장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한국 진보정당의 마에스트로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회찬 의원이 세상과 스스로 이별했다. 2009년 12월 말 노회찬 대표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어머니 원태순 여사를 알게 되었다. 내 직감과 고백이다. 노회찬의 배후에는 어머니의 심성이 있었다. 노회찬 어머니께서는 아들의수의번호 336번을 기억했다. 노회찬 의원이 1989년에 인민노련 조직사건(*정확하게는 인노련 재건사건)으로 구속되어 1992년 4월에 출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 원태순 여사는 노회찬의 교도소에 흩날리던 낙엽들을 모아 책 속에 넣어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도소 앞 꽃집 화분에 아들 수의번호 336번을 새기고 분재를.. 2018. 7. 26.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구간 용접했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 별이 되다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며: 노회찬 의원이 서울시민들에게 남기고 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구간.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이 별세했다. 노회찬은 말의 품격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높였다. 노회찬이 믿었던 한국 민주주의 품격이란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시민으로 인정받고 자기 목소리를 '법'으로 만들고, 시민의 세금으로 그 법을 직접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노동자와 시민이 정치주체가 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직접 용접공이 되어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노회찬의 말의 품격과 위트는 광범위한 독서와 그의 노동현장 실천에서 창조된 것이다. 노회찬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구간 H빔 용접공이었고, 서울 시민들에게 이 선물을 남기고 이 세상과 작별했.. 2018.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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