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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문화

철학,경제학, 정치학 이런 단어, 서구 학술 용어 번역어 누가 만들었는가?

by 원시 2024. 1. 8.

 

주요 인물. 니시 아마네 (1829-1897)

 

니시 아마네가 참고한 영어학자.  노아 웹스터 Noah Webster (1758-1843)

노아 웹스터 작업 - British English 와 American English 차이를 사전으로 만들다. 언문 일치.

니시 아마네가 한 작업은, 기존 중국식 한자어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 근대적 용어를 만들었다. 메이지 유신 시절, 중국 주자학에서 탈피하기 위함. 언어와 문체를 바꾸는 것이 필수적임.

 

한문에서 훈독문으로 변화,

훈독문에서 구어문으로 교체.

 

독자와 생산자의 확대 - 일본인은 일본인의 말로 글을 써야 한다.

1) 장점 -일상에서 사용하는 '구어'를 문자화하는 '언문일치' 장점은, 독자 범위가 확대된다는 것임.

2) 장점 - 지식의  해방과 권위의 해체 - 역사적 사례. 마틴 루터 Martin Luther(1483-1546)가 일상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함.

 

중국 양계초(1873-1929 량치차오) 구화와 서기가 합치하는 속어로 책을 써야 한다. - 백화문 제창으로 연결.

 

참고 중국의 경우,

 

1) *백화(白話)는 당나라 대에 발생하여, 송, 원, 명, 청 시대를 거치면서 확립된 중국어의 구어체를 말하며, 이를 글로 표기한 것을 백화문(白話文)이라 함. 이에 비해 문언문은 (文言文)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것을 기초해서 작성된 글, 주로 지식인층이 사용함. 중국인들이  베이징에서 사용하는 일상언어로 글을 쓰는 '언문일치' 운동으로 이어짐)

 

 2) 1917년 1월, 호적 (후스 胡適)는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라는 원고를 발표하며, 난해한 문어 문학을 배격하고 대신 구어문에 기초한 '백화문학'을 제창. 신청년 2월호에는 진독수 (천두슈 陳獨秀)의 <문학혁명론>(文學革命論)이 발표. 중국 근대 '문학 혁명'이라 칭함. 노신(루쉰 魯迅)의 소설과 에세이는 이러한 '백화운동'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킴. 

 

데카르트, 뉴튼, 라이프니츠의 자연과학, 수학의 발달의 기초는 16세기 중반 상인들의 '상업수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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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경제학,정치학 개념어 번역. 누가 만들었는가? 

 

서평자. 김미연『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서양 학술용어 번역과 근대어의 탄생』(야마모토 다카마쓰 지음, 지비원 옮김, 메멘토, 2023)

 

원제: 백학연환

 

 

 

출처.426 역사비평 144 · 2023 가을-서평근대적 서구 지식의 기원과 연쇄,김미연

 

책 저자. 야카모토 다카미쓰(山本貴光, 1971~ )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서양 학술용어 번역과 근대어
의 탄생』(야마모토 다카마쓰 지음, 지비원 옮김, 메멘토, 2023)


이 책은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의 제자가 기록한 「백학연환(百學連環)」
(1870년경)에 대한 일종의 주석서이다. 

 

이 책에 관련된 인물을 세부적으로 따지면 먼저, 교수자인 니시 아마네, 

다음으로 당시 강의를 받아쓴 문하생 나가미 유타카(永見裕, 1839~1902), 

세 번째로 강의록을 해석한 이 책의 저자 야카모토 다카미쓰(山本貴光, 1971~ )가 있다. 

 

좀 더 자세히는 『니시 아마네 전집』을 토대로 이
책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집을 편찬한 오쿠보 도시아키(大久保利謙, 1900~1995)
를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 위치시켜야 하고, 현대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끔
옮긴 번역가 지비원의 역할도 강조되어야 한다. 

 

구태여 세부를 열거한 이유는
이 책에 여러 명의 목소리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넓게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학술용어에 다층의 시간, 공간, 인물이 포개져 있음을
환기하려는 의도이다.


니시 아마네가 ‘철학(哲學)’, ‘귀납(歸納)’, ‘연역(演繹)’ 등의 근대적 학술용어
를 고안한 내용은 그간의 연구에서 다뤄졌다. 이 책은 기존 연구에서 나아가
「백학연환」의 자원을 추적하는 성과를 보였다. 일례로, 저자에 의하면 니시 아
마네의 강의는 노아 웹스터(Noah Webster, 1758~1843)의 『미국 영어사전(An American
Dictionary of English Language)』을 참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아 웹스터는 1778년 예일
대를 졸업한 후 법률 공부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은 집안 사정 탓에
교직을 택했다. 그는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미국인과 영국인이 쓰고 말하는 어
휘가 다르다고 판단하였고, 이후 미국식 영어사전 작업에 착수하였다. 웹스터
는 어원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을 살폈다. 그 결과 『간
추린 영어사전(A Compendious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806)에 약 3만 7천 개의 어
휘를 수록하였으며 이후 『미국 영어사전』(1828)에 7만여 개를 실었다. ‘colour’를
‘color’로, ‘musick’을 ‘music’으로, ‘centre’를 ‘center’로 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위
‘미국식 영어’의 기원을 웹스터의 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사전만이 니시 아마네의 강의 자원은 아니다. 니시 아마네는 서구
의 지식 체계를 일본어로 설명하기 위해 『논어』나 주자학 등 한문 교양을 활용
하기도 하며 동서고금을 횡단하였다. 웹스터가 미국인과 영국인이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에 주목하여 사전을 편찬하였듯, 니시 아마네의 강의에도 ‘차이’
에 기반한 인식이 두드러졌다. 이 책은 웹스터의 사전에 여러 개정판이 있다
는 사실 정도만을 밝혀두었지만(154~159쪽), 더 흥미로운 대목은 웹스터와 니시
아마네가 전개한 인식의 유사성이다. 주지하듯 미국 영어의 기원은 영국 영어
(British English)에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인의 구어(口語)는 기원과 달라져 있었다.
‘차이’를 염두에 둔 웹스터의 시도는 일종의 언문일치를 위한 도정이었다. 게
다가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이룬 데 이어 문화적 독립을 이루겠다는 시
대적 요청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마찬가지로 일본 한자의 기원은 중국에 있다. 니시 아마네는 기존에 사용
하던 한자어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여 근대적 용어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어
휘의 발명은 전혀 다른 신지식을 전달하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한학(漢學)
의 언어로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근대적 서구 학지(學知)를 담기 어렵다는

판단이 전제되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미국의 시대적 배경처럼 주자학이라는
전통적인 학문에서 탈맥락화하려는 메이지 시기의 지적 움직임이 수반되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어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추측건대 웹스
터의 문자나 어순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 니시 아마네는 어휘뿐
아니라 언어 질서 전반을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신어(新語)의 창출은 언어의 재
편과 이어지고, 이는 문체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니시 아마네는 라이 산요(賴山陽, 1781~1832)의 『일본외사(日本外史)』에 대해 “정
말로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서적은 일본 고유의 문장[和文]으로 써야
했다”(281쪽)라고 비판하였다. 라이 산요에 대한 평가는 사이토 마레시(齋藤希史,
1963~ )의 연구에서 조명된 바 있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야마지 아이잔(山路愛山,
1865~1917)은 라이 산요의 한시문을 ‘지나(支那)’의 것이라 하여 ‘일본’적인 것과
구별하였고,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1863~1957) 역시 ‘부자유한 한문’이라 말하
며 ‘일본’과 분리하려 하였다. 이에 반해 모리타 시켄(森田思軒, 1861~1897)은 일상
적인 말에 가까운 한문의 일종이라고 평하였다. 

 

이들은 라이 산요의 일본적 정
신을 높이 사면서도 ‘한문’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였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보
통문’의 기준을 한문 위주의 시기에 둘 것인지, 훈독문이 분리되어가는 과정에
둘 것인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문제이기도 하다(사이토 마레시, 황호덕·임상석·유충희
역, 『근대어의 탄생과 한문―한문맥과 근대 일본』, 현실문화, 2010, 114~123쪽). 니시 아마네의
비판은 ‘한문’을 외부의 것으로 본 앞선 두 인물의 시각과 유사하고, ‘일본적인
것’을 보편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서 니시 아마네는 “일본에서는 이후 글[文章]을 쓸 때 반드시 일본 고유
의 문장을 써야 할 것이다. (…) 글을 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중국은 중국 문자를, 영국은 영국 문자를 (…) 일본은 일본 문
자를 써서 그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하는 것이 간요(肝要)하다”(284쪽)라고 주장
하였다. 

 

이는 중화(中華)와 한문을 상대화한 인식으로 볼 수 있는데, 웹스터가
영국 영어를 타자화한 지점과 상통한다. 타자를 설정함으로써 주체를 (재)구성
하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니시 아마네의 주장과 앞서 제시한 논자들
의 의견에는 한문에서 훈독문으로 변화되고 이후 구어문으로 교체되는 메이
지 전반의 사정이 내포되어 있다. ‘일본문’은 메이지 시기에 일본이 새로운 지
식 체계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더욱 부상한 논점이었다. 

 

‘일본 고유의 문장’이
읽고 쓰기에 편리한 방식이라면, 그전까지는 한문 위주로 글이 쓰인 까닭에 다
수의 독자를 포섭하지 못했다. 독자와 생산자의 확대는 곧 지식의 전파와 순
환, 재생산을 의미한다. 니시 아마네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
이다. 그리고 사이토 마레시가 말한 ‘한문맥(漢文脈)’의 개념을 상기하면, 전통의
해체 혹은 이탈을 통해 ‘국어’를 정립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읽고 쓰기에 유용한 언어를 강조할 때는 자연히 모어(母語)인 구어(口語)의
위상이 부각된다. 일상적으로 쓰는 구어를 문자화할 경우, 언문일치의 가능성
이 커지고 독자 범위가 확장된다. 나아가 지식의 해방과 권위의 해체라는 측면
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저자가 언급하는 것이 “속어혁명”(285쪽)이다. 이
책에서 거론된 대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일상적으로 쓰는 독일
어로 성서를 번역하여 종교개혁을 이뤘다. 마르틴 루터처럼 이 시기 유럽에서
는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라틴어가 아닌 속어(俗語)로 지식을 생산하는 사례
가 늘었다.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 1941~ )는 이를 ‘16세기 문화혁명’으로 해
석하는데, 예술가나 상인들이 속어로 자기표현을 시작하여 당시까지 라틴어
가 단독으로 지배하던 문화의 영역으로 월경(越境)해 들어감으로써 지(知)의 독
점 구조의 일각을 허물어냈다는 것이다(야마모토 요시타카, 남윤호 역, 『16세기 문화혁
명』, 동아시아, 2010, 689쪽). 구어를 중심으로 한 언문일치에 대한 논의는 서구에서
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중국의 경우,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구화(口
話)와 서기(書記)가 합치하는 속어로 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사이토 마레시
저, 노혜경 역, 『한문맥의 근대―청말=메이지의 문학권』, 소명출판, 2018, 116쪽). 이는 잘 알려
져 있듯, 백화문 제창으로 이어진다.


라틴어의 권위가 해체되며 생산된 지식은 17세기 과학혁명과도 연결된다.
「백학연환」에서 찾아본다면, 보통학으로 분류된 수학에는 “단순수학, 적용수
학, 산술, 기하학-삼각측법, 분해법-점찬(点竄, Algebra), 분해법상 기하학, 미분산
법, 적분산법”(489쪽)이 포함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에 의하면 해석기하학과 미
적분은 17세기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며, 이 근대
수학의 단서는 16세기 중반 상인들이 주도한 상업수학이었다는 점이 중요하
다(야마모토 요시타카, 431쪽). 

 

요컨대, 서구의 ‘속어혁명’은 근대적인 학술을 진흥시
켰고, 시간이 흐른 뒤 ‘실용’의 의미를 내포한 상태로 일본에 도착하여 전환의
시기를 알렸다. 근대적인 학지의 도착은 지식의 확장에 머물지 않고 언어를 재
편하기에 이르렀으며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결과적으
로 이 책의 저자인 야카모토 다카미쓰가 어휘의 기원을 추적하며 제시한 성과
는 근대적인 지식이 출현한 지점과 그것의 세계적 연쇄까지 닿아 있다.


‘백학연환’은 ‘Encyclopedia’의 번역어로, 지금의 ‘백과사전’을 지칭한다. 엄밀
하게 보면 니시 아마네가 현대의 백과사전처럼 알파벳 순서로 지식을 나열하
거나 지식의 총합을 보여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다양한 학문[百學]
의 연관성[連環]’을 논하는 데 있었다. 근대적인 학문의 체계를 아는 것은 강력
한 서구를 형성한 힘을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
을 토대로 근대적인 서양 학문의 연원을 번역, 전파한 시도에는 지식의 권위를
해체하여 앎의 해방을 추구한 겹겹의 역사적 맥락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
다.

 

 

 

서평자 소개.

 

김미연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문학을 공부하며 최근의 관심 주제는 세계문학의
한국적 수용이다. 대표논저로는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1920년대 과학소설 번역과 수용사』, 「번역
가 오천석과 세계문학 앤솔러지―『세계문학걸작집』(1925)을 중심으로」, 「풍자소설과 세계문학―식민지 시기 올
더스 헉슬리의 수용 양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