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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

언론이 보는 '정의당' - 경향신문. 2030여성 표, ‘심상정’ 벗어나 ‘이재명’으로 이동

by 원시 2022. 3. 12.

양대 정당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김지환 기자입력 : 2022.03.12 11:08


2030여성 표, ‘심상정’ 벗어나 ‘이재명’으로 이동


지난 3월 10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열린 20대 대선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상정 후보가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서로 위로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성소수자 인권은 다음에, 성적자기결정권은 다음에,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다음에, 과로공화국 해결은 다음에, 비상한 기후위기 대응은 다음에, 심상정 지지는 다음에. 다음에 유보되는 것은 여러분의 삶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미래와 소신을 유보하지 말아주십시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선 투표일 하루 전인 3월 8일 페이스북에 이같이 적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마지막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 만큼 ‘사표 심리’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불리한 선거 구도


절박한 호소에도 심 후보는 20대 대선에서 2.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심 후보가 얻은 6.2%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 권영길 후보가 16대, 17대 대선에서 각각 얻은 3.9%, 3.0%보다 낮은 득표율이다.


심 후보가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결정적 원인은 불리한 선거 구도였다. 지난 대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변수 때문에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다. 이 때문에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소신 투표’를 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번 대선에선 선거 직전까지 양강 후보가 접전을 펼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줄을 이었다.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3번’에서 ‘1번’으로 표심을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에도 표심은 제3지대 후보로 쏠리기는커녕 양강 후보로 되레 더 강하게 결집했다.


이는 전통적인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아온 2030여성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대선 당시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애칭까지 얻은 심 후보는 상대적으로 2030여성 유권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유세장에서 심 후보를 만난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종종 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심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2030여성 유권자들을 적극 공략했다.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앞세워 반페미니즘 전선을 구축하면서 ‘이대남(20대 남성)’을 파고들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한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바람에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반해 심 후보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뚜렷이 했다.


‘양강 결집’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다. ‘여가부가 폐지되고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면 여성 인권은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심 후보로 향하던 2030여성 표심의 일부를 이재명 후보 쪽으로 돌려세웠다. 지난 2월 심 후보가 20대 여성들로부터 두 자릿수 지지율을 얻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지만 최종 성적표는 한 자릿수였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심 후보는 20대 여성 6.9%, 30대 여성 5.5%의 지지를 받았다.


‘n번방(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 박지현씨를 민주당이 선대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난 1월 영입한 것도 2030여성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 박씨는 젊은 여성들이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불법촬영 근절 이슈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만큼 상징성이 큰 인물이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준석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노골적인 여성혐오 정치를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민주당을 활용한 2030여성의 절박한 표심이 있었다”고 적었다. 심 후보는 지난 3월 10일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밤새 정의당에 12억원의 후원금을 쏟아주신 ‘지못미’ 시민들의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며 “이번에 심상정을 꼭 찍고 싶었지만 박빙의 선거에 눈물을 삼키면서 번호를 바꿔야 했던 수많은 시민이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과제는


구도와 함께 선거 3대 요소로 꼽는 인물, 이슈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진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진보정당이 배출한 1세대 스타 정치인인 심 후보는 인지도 면에서 정의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높은 인지도는 거꾸로 보면 기성 정치인 이미지가 강하고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슈 부분에선 민주노동당 시절의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등 무상 시리즈,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같은 민생·서민 정책 브랜드 발굴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내부 평가도 나온다. 심 후보의 지지율이 한때 허경영 후보보다 낮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갔다. 칩거 뒤 모습을 드러낸 심 후보의 일성은 “이번 대선에서 지워진 이름들을 대변하는 마이크가 되겠다”였다. 반지하에 사는 청년, 산재 유가족, 쿠팡 밤샘 노동자, 여성 경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 등 ‘지워진 사람들’을 만나는 행보를 이어갔다. 거대 양당이 찾지 않는 곳을 방문해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알렸다. 하지만 정의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민주당 이중대’라는 평가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것도 정의당의 과제로 남았다. 심 후보가 지난 1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대표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민주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침묵한 것을 두고 “뼈아픈 오판”이라며 사과한 것도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중 하나였다.


대선 이후 당내에선 당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 일각에선 민생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되고,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상징하는 페미니즘 정체성이 부각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페미니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면 정치적 확장성 측면에서 제약이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정의당의 중심축을 페미니즘으로 설정하고 민생, 기후위기 대응 등을 결합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영역은 여성 인권이며 이번 대선에서 강력한 파워그룹으로 떠오른 2030여성을 진보정당의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운동을 포함한 전통적인 좌파운동에선 ‘젊은 활동가 재생산’이 되지 않아 위기라는 진단이 나오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그 에너지가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근본적으로 정의당은 ‘계급을 배반한 투표’를 어떻게 진보정당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라는, 해묵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정치철학자인 샹탈 무페는 2019년 국내에 출간된 저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에서 유럽의 일부 좌파 정당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파 포퓰리즘 정당 지지 유권자들을 충동적인 욕정으로 움직이고, 그 욕정에 영원히 사로잡힌 자들로 몰아세우면서 이들을 미리 배제하는 대신, 이들의 수많은 요구 한가운데 있는 민주적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좌파 포퓰리즘 접근은 이러한 요구들이 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목표로 향할 수 있도록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중략) 나는 다른 언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진보적 투쟁에 함께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