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모

힘껏 달리다 (1) 종각에서 옥수역까지,

by 원시 2014. 9. 11.

힘껏 달리기 (1) 살아오면서 등에 땀이 나도록 달린 적을 되돌아보다. 오늘 구월의 따뜻한 비가 내리다. 초가을에 여름 소나기 비처럼 따뜻한 비다. 건즈-앤-로우지스의 '십일월의 비'처럼 싸늘하지 않고 맞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따스한 물결이다. 이 젖은 비는 과거로 잠시 이끈다. 그 날은 참 열심히도 뛰었다. 채림과 내가 지하철 일호선을 타고 종로 근처에 노니러 갔다. 늦은 점심을 먹을 겸 둘이서 분식점에 들어갔다. 우동이나 짬뽕 같은 탕류 면을 두 그릇을 시켜놓고, 외할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 밥을 둘이서 나눠먹곤 했다. 열여덟 열아홉 데이트 밥상이었다. '림'은 밥을 먹고 난 후에 늘 하던 버릇이 있었다. 식사를 다 한 후에 물 한 모금으로 두 볼이 약간 부풀어오르게 그러나 소리가 안 나게 그렇게 마신 다음에, 한 손으로 앞니를 가리고 이를 자동차 유리 닦듯이 청소를 하곤 했다. 난 '림'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물은 적은 없었다.


둘이 그렇게 밥과 면국물을 다 말아먹은 후, 지갑을 펼쳤다. 순간 오싹해졌다. 지갑에 천원짜리 지폐가 하나도 없었다. '림'에게 황급히 말했다. "림아, 돈을 집에 두고 왔어. 너 혹시 가져왔냐?"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날 따라 림도 지하철 월권 패스만 들고 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분식점 주인을 생각하니 땀이 등 뒤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삐삐도 없던 그 때에 옴싹달싹 못하고 주저앉게 생겼다.


'이를 어쩌나?' 몇 십초가 흘렀다. 생각나는 사람이 떠올랐다. 지하철 3호선 옥수 역에 막내삼촌이 근무하고 계셨다. 여기가 종로니까 잘만 하면 1시간 이내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였다. "림아,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가방만 림에게 맡기고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 오르막 계단들은 평지가 되고 내리막 계단들은 미끄럼틀이 되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종로에서 3호선 옥수역으로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지. '삼촌이 있어야 할텐데...'


3호선 옥수역 그 강변 바람은 땀으로 범벅된 등에게는 은인이었다. 옥수역 매표소를 찾아갔다. 어린시절 방패연을 신호대로 만들어주시던 막내 삼촌이었다. 그가 그 표파는 투명 유리 안에 있었다. "삼촌, 나 3천원만 주세요. 친구랑 식당에 왔다가 점심 먹었는데, 집에서 돈을 가져오지 않았네이~" 삼촌이 웃으면서 "삼천 원이면 되냐?"그러면서 사천 원을 주셨다. 인사만 하고 다시 부리나케 뛰었다. 혼자 그 분식점을 지키고 있을 '림'에게 일초라도 빨리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종로로 다시 돌아왔다. 둘이 먹던 그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림'의 표정이 가장 관건이었다. 태연자약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삼촌에게서 사천 원을 받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림'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고 분식점에서 내 가방을 지키며 평온하게 앉아 있어서 그랬을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조각 남은 냅킨 휴지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한 숨을 몰아쉬었다. "삼촌이 계셔?" '림'이 물었다. "림아, 가자 이제. 오래 기다렸지?" '응 삼촌이 사천 원을 주셨어'라는 말보다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우리가 쓰는 밥값, 아이스크림 값, 차 값 비용이란 몇 천원 이내였다. 내가 늘 다 내는 것도 아니고, 둘이서 용돈 아껴서 나눠 내곤 했다. 내가 다시 그 분식점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그 사십분 시간들, '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는 내가 그걸 묻지 않았다. 분식점으로 되돌아 왔을 때, 림의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내가 삼촌을 찾아 옥수역으로 떠났을 때 모습이랑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사십분 기다림. 그리고 되돌아 왔을 때, 반갑게 맞아 주던 게 고맙게 느껴졌다.


살면서 또 그렇게 절실하게 일심으로 매진하면서 달릴 날이 또 올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