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철학/자유(freedom)

윤석열의 '자유' 개념 불분명하다. '누구의'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소수의 '자유'만을 말하는 윤석열의 자유 개념.

by 원시 2021. 6. 29.

정치적 좌파는 ‘평등 equality’만 외치고, ‘자유 freedom’는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진보정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념은 ‘자유’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윤추구의 ‘자유’가 아니라, 8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 집터, 놀이터, 쉼터 등 자기 삶의 공간에서 공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력하며 실천하는 ‘독립적 자율적 의식’이 자유다. 이것이 정치적 좌파가 추구하는 자유이다.

 

윤석열 대선 후보가 말한 ‘자유 민주주의’는 리버럴 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이다. 한국 헌법에서 ‘자유 민주주의’ 개념은 ‘리버럴 민주주의’가 아니다. 헌법의 ‘자유’ 개념은 국힘 보수파, 민주당 리버럴 이외에도 사회주의 지향의 ‘자유’ 개념, 다시 말해서 생산수단과 기술혁명의 소유권에 대해 노동자와 공동체구성원의 목적의식적인 권한을 현존체제보다 더 강화하자는 맥락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의미할 수도 있다.

 

윤석열의 자유 개념은 불명료하다. 다만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 자유의 역할이자 개념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의 ‘자유’ 개념은 민주당도 한국 진보정당도 다 동의하는 ‘정치적 자유’ 개념을 포함하고, 더 특징적인 것은 ‘개인 소유권’에 대한 강조로도 보인다. 윤석열은 자유 개념을 모호하게 말한 셈이다.

 

한국의 ‘자유’개념들 중에 가장 잘 알려진 단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쟁취된 ‘정치적 자유’ 개념이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은 ‘경제 생산수단,유통, 소비수단’에 대한 소유권의 민주화’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그 경제민주화는 좌초되었고, 수많은 핑계를 대며, 결국 선거용으로 퇴락했다. 서울 등 도시 공간에서 ‘주택’의 소유권 중심 정책은 보수당과 차별성도 거의 없었다.

 

윤석열은 1)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2)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다. 정치학 좌우파 교과서들에 따르면, 윤석열의 위와 같은 자유와 정부 역할은, 사회복지국가 개념이나 사회주의 이전에 나온 고전적인 리버럴리스트의 ‘야경 국가 nightwatchman state’ 개념에 가깝다. 윤석열의 ‘자유’는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뜻하고, 국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리버럴리스트의 신조라고 해석된다.

 

역설적이게도 ‘야경 국가 - 나핫베히터슈탓트 (Nachtwächterstaat)’ 단어는 칼 마르크스의 경쟁자이자 협력자이기도 했던 독일 사회주의자 라살레가 썼던 표현이었다. 라살레는 부르주아 리버럴리스트의 ‘적은 정부, 제한된 역할만 하는 정부’, 즉 부르주아 정부가 경찰,군대,법원과 같은 사유재산 지킴이 역할 정도에 그친다는 것을 비판했다.

 

물론 윤석열은 성장과 복지 두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개념을 주창하면서, 고전적 리버럴리스트나 신자유주의주의자의 ‘적은 정부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빠져나갈’ 통로는 만들어놨다.

 

윤석열은 ‘자유’ 개념은 앞으로도 모호함의 벽에 부딪힐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오류와 자기모순은 명확하지만, 그리고 조국-윤석열-추미애 드라마의 실패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의 ‘자유’ 개념이나 ‘민주주의’ 개념의 모호함이 면책되지 않는다.

 

윤석열은 ‘나의 자유’개념은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 개념과 같다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누구의 ‘자유’인지, 명료하게 밝히지도 않았고, ‘자유’ 실현을 위한 정책의 기초적인 뼈대도 설명하지 않았다.

 

예를들어서, 노동자의 ‘자유’, 비정규직 청년 여성의 자유, 성소수자의 자유, 한국에서 피부색깔이 다른 외국 노동자와 이주 결혼자의 자유, 사투리 쓴다고 차별받는 지역주민의 자유 등,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 개념을 윤석열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1970년대 박정희의 ‘자유 수호’와 차이점도 없어 보인다. 윤석열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인정하고, 사실상 윤석열의 주장은 김대중 대통령 정치노선과 유사해보이기 때문에, 아마 윤석열은 ‘반공 자유’ 개념이 자기 자유개념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윤석열은 노동자와 여성의 자유보다는 사장님 회장님의 ‘이윤추구’ 보장에 혼신의 힘을 다 해온 국민의힘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가 유사하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윤석열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했을 때는, 윤석열의 자유 개념은 앞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오락가락 애매모함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1890년. 월터 크레인. 노동자 메이 데이. 세계의 노동자에게 헌정. 맨 위 중앙에 '자유 Freedom',

우애 Fraternity, 그리고 평등 equality 단어가 보인다. 세계 노동자의 자유, 우애와 연대, 평등을 위한

노동자 메이 데이다) 

 

 

 

 

 

 

1926년 메이 데이. 월터 크레인의 그림이 사용되었다. 제목을 직역하면, "협력하는 다같이 잘 사는 나라"이다.  노동자를 위한 세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