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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16

[펌] 홍준표, '정책 토론' 대선으로 가야 한다, 주장. 네거티브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잘못된 돌파 방법 입니다. 네거티브를 돌파하는 유일한 길은 정책대선으로 전환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속히 대선 토론회를 개최 해야 합니다. 경선때도 10여차례 이상 토론회를 했는데 본선때는 그 이상의 토론회도 감당 해야지요. 회피하지 말고 토론에 즉각 응하십시오. 그게 네거티브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 입니다. 2021. 12. 21.
윤석열 대선 출마 목적이 '사과'의 '일상화', 전국민의 '사과하기 대회' 개최'인가? 국민의힘 조수진과 이준석이 서로 사과해라. 이준석 당대표, 윤석열 대선 운동 다시 중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여러가지 이유들에 대해 사과하기 바쁘다. 윤석열 후보는 민주당 문재인 정부와 조국 전 법무장관이 '공정'과 '상식'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김건희 학력,경력 허위 기재와 과장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실수했다'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중잣대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윤석열 후보의 대선 출마 목표가, 자기 발언에 대한 사과, 자기 가족과 측근의 '불공정'과 '비상식'에 대한 사과인가? 이와 별개로, 당내 분란자들에게도, 서로 잘 사과하라고 발언하고 있다. 보수당으로서 정책적 비젼, 보수당의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 등은 부차적 것으로 밀려났고, 김건희 검증, 당내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측근 캠프와의 갈등 등이 국민의.. 2021. 12. 21.
신지예. 왜 국민의힘 윤석열 합류했나? 윤석열이 '페미니즘' '탈원전' 정책을 확약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안전 약속했다. 제 3지대 '안심(안철수+심상정)연대' 성과없어, 정권교체하러 윤석열 .. 1. 여자 정치가, 여자 혁명가의 노선 전환. 신지예의 적극적인 자기 정치이해관계 표현임. 신지예씨는 어리고 젊은 여성정치인이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보수정당과 차이가 없어지고 있지만, 민주당 내 유은혜 의원도 20대 초반에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었다. 정의당 이정미 전대표,심상정 후보도 20대 초반에 혁명한다고 공장노동자가 되었다. 20살, 21살, 22살 당시 유은혜, 심상정, 이정미 등을 가리켜 어리고 젊은 여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학 1학년때부터 그들은 정치가였다. 만으로 18세,19세부터. 심지어 신지예는 올해 32세다. 유은혜 의원은 과거 20대에 비해 현재 오른쪽으로 많이 노선전환을 했고, 심상정 이정미는 자본주의적 사회복지 국가를 뛰어넘는 '노선'을 취하고 있긴 하.. 2021. 12. 21.
[dec 20 언론보도] 신지예. "윤석열 당선 실패하면 정치를 관둔다." 윤석열 캠프로 간 ‘페미’ 정치인의 자기부정 한겨레 중앙일보 경향 윤석열 캠프로 간 ‘페미’ 정치인의 자기부정 등록 :2021-12-20 17:59 신지예 여성정치네트워크, 올해 국힘쪽 비판성명만 8차례 깜짝합류에 여성계 “정당성 없고 바다 위 손톱만한 기름될 것” 한편선 여성정치 백래시 조짐도 …2030 정치적 회의 커지나 지난 2018년 신지예 당시 녹색당 후보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세워 8만표 이상을 받았다. 페미니즘 자체를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적 시도로 2030대 여성이 중심이 되어 기성정당 대신 ‘제3지대’를 지지한 결과였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직속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에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합류(수석부위원장)한 소식에 여성계 및 지지자들의 비판이 거칠게 제기되는 이유다. 당장 신지예 부위원장이 전날까지 몸담.. 2021. 12. 21.
노무현 의원 2차 국회의원직 사퇴서 제출 . 1990년.7월 13일. 민자당 3당 합당 거부. 통법부로 전락한 국회 비판. 노무현 당시 민주당 의원이 89년에 이어 두번째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노무현 사직서 전문. " 5공 청산과 민주개혁의 책무를 부여받고 출범한 13대 국회가 3당 합당의 산물인 민자당 창당 이후, 본래의 임무를 저버리고 반민주악법만을 불법하게 양산하는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하였습니다. 이에 본의원은 이 국회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코저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90년 7월 13일. 국회의원 노무현. (의안과 접수 번호 2592) 통법부(通法府) 의미?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행정부 (대통령)가 만들어 준 법을 통과시켜주는 허수아비로 전락했음을 비난하는 단어임. 2021. 12. 21.
1989.03.21. 노무현 국회의원직 1차 사퇴 제출. 노동자 대중 투쟁이 민주주의 발전의 길. 4월 4일자. 사퇴 철회 후, 의원 복귀까지.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거리 시위를 하는 농민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 하에서는 구속된 노동자들을 변론하는 변호사였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가로서 노무현은 노동자 주체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일관성있는 태도를 견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와 오류가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1989년 3월 21일 제 1차 의원직 사퇴 결정. 노무현 민주당 의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노동자 대중투쟁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천명했다. 국회의 정치적 무능 1) 민정당은 광주 5공청산 특위 불참과 국회무시 2) 국회 상임위 태만. 오히려 노동자 탄압 방조. 3) 서울지하철 파업, 30명 노..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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